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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부족한 大作.... 설봉의 '사신'

작성자
Lv.8 김휘현
작성
03.11.26 22:38
조회
2,845

  조정래의 '한강'을 읽어본 이후로 대하소설이 주는 매력에 흠뻑 빠져있던 내게 설봉의 12권짜리 장편무협 '사신'은 새로운 기대를 안겨주기에 충분했다.

  소설을 읽기도 전에 이미 고무협 게시판 등을 통해 그 위명을 쟁쟁하게 들어왔던 터였기에 더더욱 그러했다.

  설봉의 '사신'... 결론부터 말하자면 글의 짜임새와 방대한 자료, 그리고 긴장감 넘치는 사건 전개 등 '역시 설봉' 이라는 감탄을 불러오기에 충분한 대작임이 분명한 듯 하다.

  특히 치밀한 자료수집을 통해 마치 백과사전을 보는 듯 눈 앞에 펼쳐지는 무공이론이라든지 상·중·하단전에 따라 다르게 발휘되는 무공, 십방, 살수들의 혈배 등 그만의 독특한 무협관을 새롭게 창조한 부분에 이르러서는 적지않은 감탄과 찬사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부지런한 작가는 언제나 독자에게 기대와 뿌듯함을 안겨준다는 점에서 설봉이라는 작가를 발견한 것은 분명 내게 큰 기쁨이다.

  그러나 나름대로 큰 기대를 갖고 본 작품이기 때문에 작품 곳곳에서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드는 부분을 발견할 때면 적지않은 아쉬움을 느껴야 했다.

  내가 '사신'을 대작이라고 말하면서도 굳이 '2% 부족하다'고 토를 다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무공수위의 부조화 & 절대고수의 인플레이션

  - 작품 초반 적지인살과 종리추가 십방으로 쫓기는 과정에서 드러난 개방의 무위는 다른 무협에서 볼 수 없는 신선한 감동을 불러왔다. 3~4결 제자만 해도 주인공을  죽음으로 몰아넣을 정도로 숨막히는 추격전을 펼치니... 구파일방이 왜 '구파일방'인지를 피부에 와닿게 만드는 현실감 넘치는 설정이었다.

  그러나 작품 중·후반부에 들어서면서는 주인공급들도 감히 어찌해보지 못할 초고수들이 구름과 같이 등장, 현실감이 서서히 떨어지더니 결정적으로 '천객'이 등장하면서부터는 마치 먼치킨 소설을 읽는 듯 작품에 대한 몰입감이 공중으로 분산돼 버렸다.

  종리추와 맞서 싸우며 부상을 입힌 소림 5선사의 무위는 실로 놀라운 것이었지만 이들이 소림 72단승중 5명일 뿐이라는 설정에서 그랬고, 살무령에 가장 근접한 것으로 묘사되던 절세기재 소고가 작품 중후반부로 가서는 이리저리 깨지고 보호받아야 할 정도의 나약한 무공수위로 전락해버린 것도 이 작품이 초반에 탄탄하게 쌓아올렸던 무공수위의 현실감을 현저히 떨어뜨렸다.

  특히 천객의 설정은 이 작품의 완성도를 30% 정도 후퇴시킨 주범으로 손꼽고 싶다. 온갖 독물에 의해 심신을 단련하는 구진법을 통과했다는 이유만으로 불과 1~2년 사이에 7~8명의 청년들이 무림제일고수가 됐다는 설정도 황당하지만 명문정파의 후기지수들이 악을 미워한다는 이유만으로 사문을 배신하고 사문의 존장을 해칠 정도로 막나간다는 것도 도무지 현실감이 없다.

  이는 주인공에 필적할만한 고수를 등장시키기 위해 시도한 작가의 무리수로 보여지며, 결과적으로 작품 전체의 개연성에 치명적인 오류로 이어졌다.

2. 늘어지는 스토리 & 지나친 상황·내면 묘사.

  - 장장 12권짜리 장편소설에서 스토리가 단편소설처럼 물흐르듯 자연스럽게 이어지기를 기대하는 것부터가 욕심이겠지만, '비뢰도'의 악몽만큼은 떠올리게 해서는 안된다고 본다.

  종리추가 소고를 위해 살문을 희생한 뒤 가족들이 있는 천부로 탈출하는 과정까지는 전혀 나무랄데 없는 완성도를 선보였지만 그 이후의 사건진행은 무척 더디고 무미건조하다.

  천부 이후 작품은 살문의 재등장과 또다시 내려진 십망, 그리고 팔부령에서의 접전, 비객·천객의 등장, 소고의 합류, 개방과 하오문의 협력, 모자도에서의 위기, 천외천의 붕괴 등 일련의 사건들이 단순나열식으로 반복되고 이같은 전개가 소설책 5~6권 분량에 이르는 것은 독자에게 상당한 지루함을 안겨줄 수 밖에 없다.

  사신이 늘어진다는 느낌을 주는 결정적인 요인 중 하나는 주변정세와 등장인물들의 내면 묘사에 지나치게 많은 면이 할애됐다는 점이다.

  이것이 작가 설봉의 본래 글쓰는 스타일인지는 모르겠으나 경우에 따라 장점이 될 수도 있을 이 요소가 사신 후반부에서는 썩 달갑지 않은 작가의 참견으로 느껴진다.

  본인의 경우, 작품 후반부로 가서는 대화 이외의 장면묘사는 대충대충 건너뛰게 될 정도로 읽기에 지쳐 있었다.

  

3. 지나치게 많은 오타 & 오류

  - 사람이 하는 일에 실수가 없을순 없겠지만 사신에서는 유독 오타와 오류가 많이 눈에 띄었다. 이는 작가와 출판사의 성실성 문제와도 상통한다.

   맞춤법에 안맞는 부분은 일일이 나열할 수 없을 정도고, 팔부령에서 천외천 고수에게 죽은 살문 살수가 유구에서 유희로 뒤바뀐다거나 구진법을 통과한 천객 수가 7명과 8명 사이를 오락가락 하는 부분에서는 할 말을 잃게 만든다.

  아무리 정성들여 지어 올린 밥이더라도 밥 먹다 돌씹으면 결코 칭찬받을 수 없다.

4. 벌여놓은 사건에 비해 너무 단조로운 종결

  - 이 소설을 읽으며 그 비중을 종잡을 수 없는 캐릭터가 두 명 있었는데... 바로 '야이간'과 '여숙상'이다.

  소설 중간 중간 이 인물들의 이야기가 자주 나오길래 뭔가 결말에 있어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겠거니 생각했다. 그러나 이런 예상은 보기좋게 빗나갔다. 못된 짓만 일삼던 야이간은 어디론가 사라지더니 맨 마지막에 다리병신 주루 주인으로 잠깐 등장하고, 모자도에서 한을 품고 도망간 여숙상은 그 뒤 아예 등장하지 않는다.

  이 정도의 역할을 할 캐릭터였다면 굳이 작품 중간중간에 작가가 이들의 행적을 공들여 조명할 필요가 있었을까?

  작품 중·후반부에 걸쳐 이야기 구조의 뼈대를 이루고 있는 천객과 천외천의 결말도 허무하기 그지없다.

  모자도에서 종리추의 궤변 몇마디(우리가 살수라는 증거 대봐! 없지? 까불지마)에 우왕좌왕하다 결국 스스로 붕괴되고 그 우두머리인 백천의는 작품 말미에 잠깐 등장해 주인공과 싸우다 죽는다는 단조로운 스토리 구조는 작가의 성실성마저 의심스럽게 만든다.

  작품 마무리 단계에서 작가의 건강이 좋지 않았다는 말도 들리지만 그것은 정말 하지 않음만 못한 변명이다.

  미완성된 도자기를 깨 없애는 도공의 정신까지는 아닐지라도, 적어도 독자는 출판을 조금 늦추더라도 완성된 작품을 독자에게 선보이고 싶어하는 작가를 원한다.

  몰아치기식으로 대충 종결지어서라도 책을 하루빨리 찍어낼 수 밖에 없는 것이 우리네 무협 시장의 현실임을 인정하기는 더더욱 싫다.  설봉의 작가적 역량을 인정하기에 사신의 허술한 결말을 더더욱 꾸짖을 수 밖에 없다.

  여러 말을 했지만 작가 '설봉'과 작품 '사신'에 대한 내 평가는 변함이 없다.

  '훌륭한 작가'가 쓴 '썩 잘 만든 작품'이라는 점이다.

  실력있는 작가에 대한 독자의 욕심은 아무리 과해도 지나친 것이 아니다.

  그것이 사신에 대한 이 긴긴 비평을 올리는 이유이기도 하고 그에 대한 나만의 애정표현이기도 하다.

  작가 '설봉'.. 그의 새로운 작품이 무척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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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바람꿈


Comment ' 8

  • 작성자
    外在
    작성일
    03.11.27 02:44
    No. 1

    최대의 히트작이었으니, 많이 분이 맘에 들어 하셨다는 거겠지만 ...

    개인적으로는 8권인가 10권인가 쯤에서 보다가 덮은 소설입니다. 저는 오히려 신인작가들 것이 낫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사신에서는 참신한 시도 등이 거의 보이지 않아서요. 그저 보이는 것은 기교적인 익숙함 뿐이랄까.

    그래도 8권을 넘어서까지 읽었으니, 재미 없다고 할 수는 없겠네요. 왠만해서는 1,2권보다가 접곤 하는데.

    찬성: 0 | 반대: 0 삭제

  • 작성자
    이동주
    작성일
    03.11.27 05:46
    No. 2

    나 역시 설봉의 초기작에 비해 날이 갈수록, 책이 나오는 수만큼 그에 정비례해서 "성의"가 없어진다는 점을 확연히 느끼게 된다. 남해삼십육검에서 느꼈던 그 팽팽한 긴장감과 치밀한 설정을, 새로운 차원의 비장미를 더이상 느낄수 없게 된 것이다.

    그런데 더 심각한 문제는 설봉의 최근작들에서 과거 공장무협의 유령을 감지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다 설봉이라는 이름이 와르르 무너지는건 순식간이다. 설봉이 설봉으로 내내 우뚝 서 있기를 진심으로 바라는 마음에서 쓴소리라도 적어본다.

    찬성: 0 | 반대: 0 삭제

  • 작성자
    Lv.53 醉夢
    작성일
    03.11.27 11:37
    No. 3

    개인적으로 설봉의 무협은 묵직한 맛이 있어서 좋아하지만
    글쎄, 사신이 늘어진다는 느낌은 별로 없었고
    (거의 하루이틀에 다 읽었다는^^;;)

    다만 해피엔딩이 아닌 작품들에 있어서는 야설록의 비장미라고 할까,
    그런 부분이 좀 떨어진다는 느낌..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4 현악사중주
    작성일
    03.11.27 23:38
    No. 4

    대여점에서 빌려서 전부 읽어보았는데 그런대로 읽을만은 하더군요. 그런데 어느 부분들은 너무 흐느적거려 짜증이 나기도 합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 타반테무르
    작성일
    03.11.28 13:07
    No. 5

    제 생각에 사신은 설봉이란 작가의 모든 장점과 그 한계를 드러냈다고 생각합니다. 설봉작품의 장점이 어찌보면 묘사와 설명으로 대변되는 글빨에 있다는 생각인데 그것이 많이 오버했습니다.
    사신이후의 작품들에도 계속 같은 문제점을 보입니다.
    아무리 훌륭한 강속구 투수래도 계속 165킬로의 직구만 던지면 넘어갑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 날으는도끼
    작성일
    03.11.29 01:12
    No. 6

    저는 개인적으로 사신을 가장 재밌게 본 무협소설이라 생각하기에 사신이 무슨 문제점이 있을까 하고 이 글을 봤습니다. 생각외로 많은 문제점이 있더군요. 흠.....
    저는 이 소설의 긴장감과 흡입력이 너무 좋았습니다. 흡입력이 너무 강해서 소설이 질질 끈다는 점은 전혀 느끼질 못 했는데 다른 분들은 저랑 다르기도 하군요. 그리고 천객 같은 경우도 저는 납득이 잘 되던데.. 역시 사람마다 보는 관점이 다르군요. 흠.....
    어쨌든 설봉님이 좋은 작품 만드시길 기대합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 구치
    작성일
    03.11.29 04:02
    No. 7

    저도 암천명조에 반해서 계속 읽고있는데 사신은 넘 황당함이 느껴지더군요 친구들에게 별로 재미없다고 말했더니 저만 이상한넘 되더라구요.. ㅎㅎ 요기 저랑 같은 생각을 하는님이 많아서 다행이군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 광혼록
    작성일
    03.12.01 02:09
    No. 8

    저두 사신 8권인가 9권에서 덮었습니다
    초반의 강력한 흡입력이 뒤로 갈수록 점점 떨어지더니..나중에는 긴 설명문을 읽는것 같은 느낌을 주더군요
    설봉님의 다른 작품들은 흥미있게 봤는데 말이죠
    다음작품은 조금 낫겠지 싶어서..다시 조심스러운 기대감을 가지고 본 작품이 추혈객이었는데..
    역시..(역시?) 초반에는 잘나가더니..끝은 흐지부지...
    읽는 사람 황당하게 하더군요
    그래서 요즘은 설봉님 다음 작품(대형 설서린인가?) 안 읽습니다
    세번째 마져 실망하게 되면 다시는 설봉님 작품 안보게될까봐 ..두려워서요 ㅠ.ㅠ.ㅠ.ㅠ.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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