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명 : 단그리
작품명 : 남궁지사
출판사 : 영상노트
남궁지사 - 퓨전은 어디로 가는 가
남궁지사를 읽었습니다. 이리저리 고민하다가 감상에서 추천하는 글을 읽고 한번 읽어보자는 결심을 하게 되었지요. 감상은? 다음과 같습니다.
퓨전 - 새로움과 합쳐짐.
언제부턴가 퓨전이라는 단어를 자주 듣게 되었다. 식상한 장르에 지친 독자들을 위해 차원이동, 환생물, 회귀물 등의 새로운 시도를 한 장르가 어느새 주변을 가득 채우고 있다. 남궁지사 역시 환생이라는 요소를 통해 독자를 사로잡으려 하고 있다.
환생물.
전생의 기억을 가지고 다시 태어난 인물을 통해서 무협(장르)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환생은 무척 흥미로운 요소다. 특히 현대에 살던 사람이 환생을 통해 무협으로 넘어간다는 설정은 나 즉 독자의 감정이입을 배가 시켜서 좀 더 쉽게 작품에 빠져들게 해 준다.
전생의 기억은 당대인이 알지 못하는 지식을 알게 해 주고 특정한 조건을 충족시킨다면 어린 시절 남들보다 앞선 수련에 파고들 수 있게 해 주는 효과가 있다. 즉 기연과 천재라는 설정에서 벗어나서 남들보다 빠르게 강해질 수 있게 해 주는 개연성을 낳을 수 있다.
남궁지사 역시 이러한 공식에 적절히 스스로를 맞추고 있다. 전생의 지식으로 주인공을 빠르게 강해져 나가고 적당한 귀차니즘으로 치열한 무림인의 삶을 지켜볼 수는 있어도 공감할 수는 없는 일반 독자들의 공감을 얻어낸다. 더구나 작가는 주인공의 전생을 까발려주는 과잉친절을 베풀지 않음으로써 독자가 좀 더 쉽게 주인공에게 이입을 할 수 있도록 배려해 준다.
여기까지만 본다면 남궁지사는 장르의 흥행원칙을 충실히 따르면서 공부라는 독특한 요소를 첨가한 수작일 수 있다.
그러나 안타까운 점은 남궁지사 역시 아직은 퓨전의 법칙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이다.
환생과 이계진입, 회귀. 이러한 퓨전의 공통점은 주인공에게 남들이 알 수 없는 지식을 부여해 주면서 남들보다 한발 빠르게 치고 나갈 수 있는 토대를 제공해 준다는 것이다. 이러한 요소들이 가장 빛을 발할 수 있는 것은 단연 판타지의 영지물이라고 할 수 있다.
남궁지사의 작가 스스로도 그러한 점을 알고 있었는지 남궁지사는 무협임에도 남궁세가라는 곳을 발전시켜 나가는 독특한 형태를 취하고 있다. 개인의 무공의 발전을 요소로 잡는 무협에서 집단의 무력강화 특히 자신에게 종속되지 않은 집단의 강화를 꾀하는 부분은 아직 많이 보지 못했던 요소이다. 그런 점이 남궁지사의 흥미를 배가 시킬 수는 있지만 안타깝게도 한계를 동시에 가져오고 말았다.
주인공은 과거의 지식을 알고 있다. 그래서 주변과 자신을 더욱 효율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다. 지켜보는 독자는 이러한 과정에 흥미를 가지게 되지만 역설적으로 앞서 걸어가는 주인공의 수련에 어떠한 몰입을 하기는 힘들어진다.
무슨 말이냐면
우리는 미래의 지식을 알고 있기에 과거로 돌아간 주인공이 취하는 행동과 수련에 수긍한다. 그리고 그의 수련에 흥미를 가진다.
하지만 그렇기에 주인공을 좀 더 좋아하게 되고 그를 지켜보는 것을 즐거워하는 것은 아니다. 감정이입은 쉬워지는 대신 주인공이 필수적으로 갖추어야할 독자성은 떨어지게 되는 것이다.
독자성이 떨어진 주인공은 힘을 가지기 어렵다. 기억에 남기도 어렵다. 이야기가 조금 겉돌더라도 독자성을 가진 주인공은 독자들의 시선을 끌 수 있지만 독자성이 없는 주인공은 지루함을 낳는다. 독자와의 공감을 위해 치열함과 독특함을 포기한 주인공은 스스로의 독자성 성립에 실패하고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인물이 되어 버린다.
또한 주인공이 다른 관계를 적립해 나아가는 순간 우리는 주인공이 ‘내’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 버릴 수밖에 없다. 그곳에 환생한 이는 현대인일 뿐 ‘내’가 아니다. 독자와의 이입이 깨지는 순간 주인공은 추락한다.
그리고 이런 주인공 몰입의 한계는 주인공이 스스로가 속한 단체를 벗어나는 순간에 급격히 드러난다. 남궁지사를 지켜보며 마교와 관련된 이야기가 전개되는 시점에 흥미를 잃은 독자가 나뿐은 아닐 것이다.
스스로 속한 단체와 자신을 발전시키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환생물의 특성상 발전이 끝나고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리는 순간에 독자들은 그동안 그들이 가져왔던 주인공과의 동일시, 대리만족을 잃어버린다. 동시에 흥미의 반감이 이루어지게 된다.
그동안 지켜보았던 발전이 재미있었기에 아니 재미있으면 있을수록 더욱 발전을 멈추고 관계를 정립해 나가려는 주인공의 움직임은 공허해진다.
또한 주인공이 발전을 시켜나가는 모습을 강조하기 위해 글의 서술은 1인칭과 주인공 집중적 3인칭을 취하게 된다. 이러한 서술방식은 초반의 흥미를 끄는데는 성공할 수 있지만 필연적으로 단체를 벗어난 인간관계, 갈등간계의 피상성을 낳게 되고 단체를 벗어나는 순간 주인공은 갈 곳을 잃은 채 방황하게 된다.
어쩌면 마교와의 표면적인 갈등만을 남긴 채 남궁세가로 돌아와야 했던 주인공 남궁상현의 선택은 작품의 흥미를 끌어가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 아니었을까.
작품의 흥미를 배가시키기 위한 서술이 종래에는 작품의 흥미를 떨어뜨린 다는 점은 작가입장에서는 슬픈 역설이다.
작가는 이러한 점을 알았을까?
작품이 5권에 이르기까지 주인공은 남궁세가를 벗어나지 못한다. 한번 씩 밖으로 들릴 때마다 이야기를 끌어가지는 못하고 독자층의 이탈만을 낳은 채 다시 남궁세가로 돌아온다. 필연적인 회귀이자 슬픈 회귀이다.
덕분에 5권이 진행되었음에도 우리가 볼 수 있었던 인물은 남궁세가와 남궁상현 주변의 몇몇 인물. 그리고 적이라고 볼 수 있는 마교의 몇몇 인물뿐이다. 더구나 마교의 인물들 역시 단편적으로 그려질 수밖에 없기에 캐릭터의 입체성 구축에는 실패하고 만다.
더 이상 문파 발전의 요소는 시간 끌기 밖에 되지 않는 상황에서 갈등관계를 이끌어 가야할 마교의 대적들은 단면적 캐릭터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기에 마교와 어떻게 싸울 지에는 크게 관심이 가지 않는다. 글을 이끌어가기는 더더욱 어려워진다.
이제 6권에서 주인공 남궁상현은 세가 밖으로 나가야 한다. 그리고 세상에 맞서야 한다. 그러나 어쩌면 남궁상현이 진정으로 맞서야 할 것은 세가라는 방패막이를 벗어난 그에게 쏟아지는 독자들의 차가운 눈일지도 모른다.
퓨전은 장르가 새로이 개척한 신대륙이다. 그렇기에 아직 더 탐구해야 하고 탐험 할 곳도 많이 남아있다.
그렇기에 나는 남궁지사 6권을 기다린다. 작가가 얼마나 퓨전이라는 장르에 대해 고민했고 탐구했는지는 6권에서 드러날 것이다. 그리고 남궁지사 뿐 아니라 모든 퓨전 작가들 역시 지금 이순간 고민하고 있을 것이다.
퓨전이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가에 대해서.
- 글이 안 써져서 그냥 감상이나 해보자 했는데 장문이 되었네요. 6권을 기다리며 한 한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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