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명 : 백승후
작품명 : 60억 분의 1
출판사 : 도서출판 동아
일단 재밌다. 그리고 정말 이런 말 하면 안 되지만, 참신하다. 그리고 아쉽고 부족한 점도 많다.
우연히 힘을 얻은 주인공은 선행을 하는 데 그 힘을 쓴다. 아픈 이들을 치료하고,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다.
주인공은 열심히 살려 하나 사사건건 방해를 받는다. 주인공의 반대쪽에있는 이들이 갖가지 방법으로 훼방을 놓는다.
사람 사는 세상이라는 게 눈에 확 보인다. 함께 살아야 한다고 끊임없이 말하는 주인공, 그리고 그런 주인공을 방해하는 개인. 작중에서 일어나는 사건은 정말 소소하고 사람 냄새를 풀풀 풍긴다.
주인공에게 '실패'를 이렇게 여러 번 안겨주는 현대 판타지가 있던가?
주인공은 실패한다. 그러나 좌절하지 않는다. 오히려 더욱 허세를 부린다. 실패하고 배신을 당해도 호기롭게 다시 일어설 의지를 보인다. 실패해도 대리만족에 악영향이 없는 건 그런 이유 때문이 아닌가 싶다.
아쉬운 점은 두 가지다.
하나는 연출이 많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장면 하나하나의 섬세함이 떨어지기 때문에 이중적인 의미를 가질 수 있는 장면에 대해 독자가 구분을 지을 수가 없다.
연인이 미국으로 떠날 때 정작 그것을 권한 주인공이 실망했다 말하는 것을 보고 나서야 권했을 때의 감정을 짐작할 수 있다는 점이나, 가든의 사장으로 향락을 즐길 때의 실망스런 모습을 장제목인 '실수'에 미루어 짐작해야 한다는 점 등이 그렇다. 최소한의 서술로 글을 전개하려는 노력이 글 전체에 드러나나 하한선 밑으로 내려갈 때가 잦다는 점은 매우 아쉽다.
다른 하나는 개연성이 많이 떨어진다는 점이다. 이건 치명적이다. 이 소설을 계속 읽어도 되는지 신뢰할 수 없게 만든다.
100년의 노력 끝에 간신히 이계의 사람과 통신할 수 있게 된 현자는 고작 일주일밖에 없는 시간 동안 자신의 지식욕을 채우기는커녕 챠크라의 수련법만 알려주고 끝났다. 수련법을 널리 퍼트리라는 전제가 붙긴 하지만, 정작 100년의 노력은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했다. 그 마법을 다시 사용할 수도 없다 하니, 처음부터 주인공에게 힘을 주기 위한 저자의 손길이 너무 심하게 드러난다.
챠크라의 수련을 통해 암환자를 호전시킨 점은 어떠한가? 전세계가 깜짝 놀랄 일을 벌이고도 하산한 이후에는 아무런 언급이 없다. 이럴 수 있는가? 전세계의 암환자들이 다 몰려들어도 시원찮을 판에, 아무리 더는 소문을 내지 않기로 했다고는 하나 이렇게까지 언급이 없을 수 있나? 나와야 할 이야기가 안 나오니 개연성에 문제가 있다 할 수밖에. 사실 암세포를 그렇게까지 줄여놓으면 그다음엔 수술로 완치가 가능할 정도지만 이 점 역시 작중에는 언급이 없다.
그 이후에도 마찬가지다. 과일가게를 하다 접었지만 역시 그 이후엔 아무런 언급이 없다. 납치당한 여대생을 구출했지만 그 역시 거기서 끝났다. 고깃집은 그렇게까지 거창하게 일을 벌여놓고는 역시 아무런 미련 없이 접은 뒤 조폭이 찾아와 동업하자고 했다가 쫓겨난 게 전부다. 후원금을 전해주며 키다리 아저씨 노릇을 했지만, 고깃집 망하고 나서 그 일을 못하게 됐는데도 역시 언급이 없다.
나와야 할 이야기가 안 나온다. 주인공은 성공과 실패를 반복하지만, 새로운 장사를 시작할 뿐 개선하려는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 몇 개월씩 없어졌다 다시 나타나기를 반복하지만 주위에서는 그저 믿는다고만 한다. 정말 많은 사람들을 도왔지만, 돕는 주인공은 사람의 모습을하고 있되 도움을 받는 사람은 마네킹의 모습을 하고 있다. '도왔다'는 사실만이 중요했다면 그걸로는 독자에게 감동을 줄 수 없다.
다이어트가 너무 심했다. 사건과 사건 사이에 뭐가 있어야 하는데 치워버렸다. 암시와 복선마저 잘라버렸다. 현대라는 복잡한 사회를 배경으로 하면서 절차적이고 지루할 수 있는 내용을 없애버린 건 생략 기법이라 생각하고 넘어갈 수 있겠지만, 나와야 할 사람과 나와야 할 내용이 안 나오는 건 생략이 아니라 누락으로밖에 안 보인다.
재미는 있다. 소소한 감동도 있다. 그러나 저자가 미숙하다. 이 점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 아니면 극복하지 못하고 휩쓸릴 것인지, 그 귀추를 주목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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