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소재의 무협소설들이 많이 나왔습니다.
이들 중에는 기존의 장중함을 벗어나려는 글도 꽤 많습니다.
무협이 무거워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아쉽게도 저는 무거움을 벗어난 글들이 성공적으로 끝난 걸 거의 본적이 없습니다.
정말 재밌는 코미디를 하기가 어렵듯이 가벼운 무협을 쓰기도 무거운 무협을 쓰는 것 이상으로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요즘 나온 몇몇 가벼운 무협을 보면서, 웃길려고 자꾸 망가져가는데 망가짐에 리듬이 없어서 처음엔 '허허'하고 웃다가 나중엔 불쾌감이 이는, 못만들어진 슬랩스틱 코미디를 보는 듯한 느낌을 많이 받습니다. 가끔씩 재치는 번뜩이지만 그뿐입니다.
인터넷을 돌아다니다 보면 유머를 꽤 많이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세권이 넘는 분량의 책에서 이런 번뜩이는 기지만으로 내용을 이끌어갈수는 없습니다. 아쉽게도 그런 글들이 몇 개 보이더군요.
그런 면에서 비류도검은 보기 드문 수작이라고 생각합니다.
한번밖에 안 읽었고 그것도 정독을 한 게 아니어서 다시 한 번 읽으면 아쉬운 점을 볼 수도 있겠지만 제가 한 번 본 비류도검은 가벼움에 성공한 무협이었습니다.
먼저, 캐릭터들은 특징이 극대화 되었습니다. 비류도검에서는 캐릭터의 삶에대한 포괄적인 고민이나 전체 배경이 나오진 않습니다. 그러면서도 작가는 보여줄 부분만 정확히 재단해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캐릭터들은 허공에 둥둥 뜨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무협 속의 현실에 정확히 안착해 있습니다. 배경없는 영웅놀음에 빠지지도 않고, 말장난에 인생을 허비하지도 않습니다. 예를들어 주인공의 하나인 유필은 수만마리의 메추리(?)를 키워 부자가 되겠다는 삶의 목표가 있지만, 작가는 이 명제 하나만 가지고 유필을 이끌어가지 않습니다.
비류도검의 또 하나의 매력은 규모가 작다는 것입니다. 규모가 작다는 것 자체가 무협의 매력이 되지는 않죠. 하지만 대책없이 커진 규모가, 그 규모를 통제할 수 있는 구심점을 만들어주지 않으면 산만하다는 느낌을 줍니다. 비류도검의 사건들은 다양한 곳에서 벌어지지만 작은 공간에 응집되어 일어납니다. 그래서 사건의 세세함을 잃지 않습니다. 작품에 따라 이런 세세함은 득보다는 실이 될 수 있지만, 적어도 비류도검에서는 이런 세세함에 스며있는 작가의 유머가, 웃음을 주는 힘이 됩니다. (필력이 딸려서 설명이 잘 안되니 예를 들겠습니다. 비류도검의 작가는 마치 연극의 연출자처럼 작은 무대위에 판을 벌여놉니다. 이로인해 관객들은 집중력을 갖고 캐릭터와 호흡을 같이할수 있습니다. 여전히 뭔가 미진하지만... ㅡㅡ;;)
한가지 아쉬운 점이라면 주요 등장인물이 많아져서 뒤로갈수록 중심이 흐트러지는 느낌을 준다는 겁니다. 아직은 작가님의 능력으로 그럭저럭 잘 버티고 계신 것 같지만요.
신간안내를 보니 비류도검의 완결편이 나왔더군요. 아직 보지 않아서 비류도검이 또하나의 용두사미가 되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모조록 좋은 마무리를 지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Comment '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