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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Lv.50 퇴근빌런
작성
08.06.28 02:04
조회
3,307

작가명 : 전윤식

작품명 : 기연사냥꾼

출판사 : 중앙books

역시 미리니름이 상당하니, 아직 안 읽으신 분들은 가급적 백스페이스를 살짝 눌러주시길 권합니다.

0.

<기연사냥꾼(작중 표현으로는 기연유렵사)>라는 책이 나왔다. 조금은 아리송한 제목이 아닐 수 없다. 무협에서 말하는 '기연(기이한 인연)'이라는 것은 전혀 의도하지 않았는데 우연히 이어진 인연이라 기이하다 말할 수 있는 것인데, 기연을 사냥한다는 것은 능동적으로 기연을 찾아간다는 뜻이니, 사냥당한 기연은 더 이상 기이하다 할 수 없다는 점에서 제목에 담긴 모순이 보였다.

제목부터가 모순인, 가볍게 생각하면 제목부터 어이가 없는 책. 그러나 제목에서 느껴지는 위화감이 오히려 잊히지 않아 결국 집어들고 말았다.

인상적인 제목을 가진 이 책을 뜯어보아야겠다.

1.

<기연사냥꾼>은 '기연 유렵사'라고 하는, 기연을 찾아내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부류의 사람을 가리킴과 동시에 작중의 주인공의 역할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기연사냥꾼>이라는 단어가 참 인상적이다. 기연이라는 것은 본래 기이한 인연을 뜻하는 단어다. 무협에서는 기연에서 말하는 인연이 인물이 될 수도 있고, 비급이나 영약이 될 수도 있으며, 우연히 찾아온 깨달음의 기회로도 일컬어진다. 그런데 이 모든 것들을 뭉뚱그려 '기연'이라 표현할 수 있는 것은 그 모두가 뜬금없이 찾아오지는 않기 때문이다. 모종의 사건을 거쳐 우연하게 조우한 인연의 끝자락이다. 결국 '누군가와 연결되어 이루어진 기이한 사건'이라는 의미가 된다.

그러나 그러한 기연을 '사냥'한다는 것은 오히려 모순이 된다. 기연이 기이한 이유는 우연성을 동반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연을 '사냥'한다는 것은 목적을 이룬다는 뜻이니, 결국 필연성을 내포할 수밖에 없다. 필연적으로 찾아오는 인연은 전혀 기이하지 않다.

게다가 '사냥꾼'은 본래 사냥이 목적인 사람들이다. 기연사냥꾼 역시 기연을 찾아내는 그 자체가 목적이며, 기연을 자신과 연결시키지 않는다. 즉, 인연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 역시 모순이라 아니 할 수 없다.

기연의 '기(奇)'와 '연(緣)' 모두 충족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저자인 전윤식은 당당하게 <기연사냥꾼>이라는 제목을 정했다.

2.

제목인 <기연사냥꾼>이 가진 모순은 내용에서 해결된다.

기연사냥꾼이 얻은 기연이 온전히 기연 그대로의 의미이기 위해서는 세 가지 방법이 존재한다.

첫 번째는 기연사냥꾼에게 있어서도 우연히 주어진 기연이며, 그것을 기연사냥꾼 본인이 받아들여 인연을 잇는 방법이다. 그러나 이 방법에는 문제가 있다. 기연사냥꾼이 우연히 얻은 기연만이 온전한 기연일 뿐이며, 기연사냥꾼이 사냥한 기연은 모순인 채로 남는다는 점이다.

두 번째는 기연사냥꾼을 표방만 할 뿐, 실제로 기연 사냥에 성공한 적이 없다는 설정을 하는 방법이다. 이 경우, 기연 사냥이 일생일대의 목적이 되거나, 또는 항상 시도는 해도 실패만 할 뿐인 인물을 코믹하게 그려내는 수단이 될 수 있다.

세 번째는 기연사냥꾼이 얻은 기연이 기연사냥꾼이 아닌 타인에게 우연히 이어지는 방법이다. 이 경우에는 기연사냥꾼 본인에게는 전혀 기이하지도 인연이지도 않으나 타인에게는 엄연한 기이한 인연이 된다는 점에서 그럴싸하다.

<기연사냥꾼>에서 선택한 것은 세 번째 방법이다. 주인공은 기연을 사냥하여 본래의 주인이라 할 만한 세력에게 대가를 받고 판다. 그야말로 기연을 사냥하여 돈을 버는, '기연 사냥꾼'이라는 제목이 모순이 아니게 하는 온전한 방법이다.

제목 참 잘 지었다, 감탄스러울 정도로. 제목만으로도 시선을 끌 수 있으며, 제목만으로도 깊은 생각을 할 수 있으니, 굉장히 훌륭한 제목이다.

3.

<기연사냥꾼>은 이제 갓 2권이 나온 시점임에도 불구하고 인물, 사건, 배경이 뚜렷하게 구성되어 있다. 게다가 그 모두가 하나의 현상을 두고 연동하고 있다는 점에서 후하게 평할 수 있다.

초반부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은 아버지의 생존에 대한 확인이다. 바로 이 사건을 기점으로 전후의 양상이 크게 바뀐다.

우선 배경이 바뀌었다. 파천삼신기 중 하나인 수라굉천검을 노리는 세력이 정과 사 전체가 되었건만, 정작 주인공은 아버지와의 유일한 연결고리인 그것을 빼앗겨서는 안 될 상황이 되었다. 아버지와의 연결고리를 빼앗으려는 현실, 그리고 그것을 빼앗기지 않게 개혁해야 하는 주인공, 이전까지는 현실에 불만을 품지 않았던 주인공에게 드디어 개혁의 필요성이 주어졌다.

그리하여 인물이 바뀌었다. 수라굉천검을 아무에게나 떠넘기고 소란에서 벗어날 수 있었는데, 현실이 바뀌면서 주인공에게 동기가 부여되었다. 그것을 끝까지 지켜내어 아버지와 조우하는 목표가 설정된 것이다. 이것을 기점으로 아버지의 업을 잇는다는 수동적인 태도에서 아버지를 구속에서 풀어내기 위한 적극적인 태도로 변화하였다.

뜬구름 잡는 식의 목적의식 없는 소설이 단 하나의 사건을 통해 지극히 소설적인 구조로 변모하였다. 아니, 변화 자체가 소설적으로 바람직했다.

4.

<기연사냥꾼>의 저자 전윤식은 분명 작위성에 대해 많은 신경을 썼다. 본래 우연성에 의존하는 사건이 일어날수록 작위성의 문제가 불거져 나오게 마련이건만, <기연사냥꾼>은 인과에 충실하게 짜여 있다.

주인공이 수라굉천검을 획득하게 된 연유, 그리고 현실이 변화 및 주인공의 동기 부여 과정 모두가 '어째서'라는 질문을 만족시킨다. 그 인과의 한 편에 실체를 알 수 없는 음모의 세력이 존재한다는 것은 인과 관계에 영향이 없으니 충실하다고 간주하여도 전혀 문제가 없다.

다만 한 가지, 숭무창천관에서 파천삼신기의 정당한 소유권을 주장했으나 그에 대한 사유는 밝히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으니, 이 부분에서는 아무래도 저자의 손길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옳음을 주장하는 정파의 세력이 존재했음에도 전원이 침묵한 이유가 '저자가 서술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점은 틀림이 없을 것이다.

5.

<기연사냥꾼>의 뒷표지는 '기연은 돈이 된다'라면서 코믹한 소개를 하고 있다. 그러나 이에 속으면 곤란하다. 이 글은 가벼운 듯하면서도 진중한 소재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재미있느냐를 따지면 아직은 그렇다고도 아니라고도 답하기 모호하다. 이제 갓 발단을 거쳐 전개에 이른 소설에 대해 감상을 논하기에는 이르기 때문이다. 게다가 소설적으로 바람직한 것과 재미가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을 한 것은 소설적인 요소와 저자의 성향이 이미 확립되어 있기 때문이다. 물론 완결된 이후에는 얼마든지 평가가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저자 스스로 정진을 잊지 않는 한, 이 평가는 별달리 수정될 필요가 없을 듯하다.

덧. 격려 쪽지 보내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평론가의 그것에 감히 비할 수 없는 졸문을 끄적이고 있는데도 분에 넘치는 격려를 받은 듯 하여 송구합니다.

덧덧. 제 평이 지적투인 것은 아무래도 삼룡넷과 라니안 시절의 잔재가 아닌가 합니다. 당시에는 요청을 받아가며 저자의 발전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버그 리포트 식의 평을 했는데, 그게 고쳐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어쩐지 잘 고쳐지지 않네요. 더 노력하겠습니다.


Comment ' 12

  • 작성자
    Lv.1 인위
    작성일
    08.06.28 02:33
    No. 1

    이 야밤에 저만 고생하고 있던게 아니었군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30 현도(玄盜)
    작성일
    08.06.28 03:38
    No. 2

    요새 까망군님 비평글 재밌게 보고 있습니다.
    산산님의 비평글 이후로 나름 좋은 자극을 받는 비평글은 간만이네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윤하늘아래
    작성일
    08.06.28 08:44
    No. 3

    재밌겠네요~^^ 비평가로서 아쉬웠던 점도 좀 있으면 책을 선택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겠습니다. 잘읽었습니다.

    찬성: 0 | 반대: 0 삭제

  • 작성자
    Lv.5 유현오
    작성일
    08.06.28 09:38
    No. 4

    격려글 많이 보내드리지요, 형님. 역시 개인적으로 쪽지 할 때의 말투가 부드러워 좋군요. 뭐, 비평글이니 어쩔 수는 없지만. 잘 보았습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50 머저리
    작성일
    08.06.28 09:47
    No. 5

    비평글은 이런 말투로 봐야 제맛이죠!
    오늘도 좋은비평글 잘읽고 갑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50 퇴근빌런
    작성일
    08.06.28 12:32
    No. 6

    아아... 자고 일어나니 2번 항목의 기연이 그대로 기연일 수 있는 방법이 두 가지가 아니라 세 가지라는 걸 깨달아버렸어요... 앞서 읽은 230여 분들께 사죄를......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22 asdfg111
    작성일
    08.06.28 18:48
    No. 7

    공감합니다.

    근래 새로운 시도라 해봤자, 전부 가벼운 쪽이니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no*****
    작성일
    08.06.28 19:22
    No. 8

    기연사냥꾼이라기 보다는 기연해결사 정도가 더 맞는것 같더군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 魔師
    작성일
    08.06.28 20:49
    No. 9

    까망님의 글 재미나게 읽고 있습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27 슈레딩고
    작성일
    08.06.29 13:11
    No. 10

    잘 봤습니다. 더욱 정진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아, 전윤식=갈색미소입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78 아쿠마님
    작성일
    08.06.30 13:06
    No. 11

    까망님께//

    다른 의견에 대하여는 흠잡을곳없으나..기연사냥꾼이란 제목에 아주 후한 점수를 주셨네요...아마도 기연=행운이란 공식..혹은 기연=절벽에서 떨어져서 영약줍기 식의 공식이 성립된 저로써는 저 제목이 주는 역설적 매력을 느끼지 못하겠네요...비슷한 류의 운명 개척이란 말에 익숙해진탓도 크네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7 투렌바크
    작성일
    08.07.10 15:45
    No. 12

    잘읽었습니다.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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