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명 : 나민채
작품명 : 마검왕
출판사 : 드림북스
미리니름 조금 있습니다.
<마검왕>, 진부한 소재에서 이끌어낸 신선함
필력(筆力). 필자는 그것을 글을 부드럽게 쓰는 능력이라 정의하겠다. ‘부드럽게’란 ‘독자가 글을 막힘없이, 술술 읽을 수 있게’ 라고 할 수 있다. 필력에 대한 생각은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정의도 다를 수 있고, 중요도도 다를 수 있다. 필자는 필력을 매우 중요시 하는 사람 중 하나이다. 언뜻 보면 필력이 소재나 설정보다 덜 중요할 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것도 맞는 말이다. 소재나 설정은 책의 기둥이니까. 하지만 기둥이 아무리 견고하고 튼튼한들 뼈대가 부실하면 무너질 수밖에 없다는 것 또한 사실. 다른 무엇들이 아무리 뛰어나도, 필력이 따르지 않는다면 그 책을 읽는 독자들은 난독증 환자가 되어버린다.
필력의 차이를 보여주는 예를 하나 들어보겠다. ‘美, 11세 소년 아버지 임신 여자친구 사살 충격’, 오늘 본 인터넷 기사의 제목이다. 이게 도대체 무슨 뜻인가? 아버지가 임신했다? 아버지의 임신한 여자친구? 이건 참 중의적인 문장이라고 하기도 뭐하다. 조사조차 다 생략해버린 해괴한 문장이다. 어쨌든 한번 읽어서는 도저히 이해를 할 수가 없다. 그에 반해, ‘美, 11세 소년, 임신한 '아버지의 여자친구' 사살 충격’, 한 네티즌이 정정해준 제목이다. 한번만 읽어도 이해할 수 있는 문장이다.
위의 예는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황당한 차이였지만, 대충 필력이 뛰어난 작가와 필력이 떨어지는 작가의 차이를 과장했다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
이렇듯 필력 하나가 이렇게 큰 차이를 불러올 수 있다.
필자는 <마검왕>의 나민채 작가의 필력이 뛰어나다고 생각한다. 중의적인 문장이나 어색한 문장이 없었고, 문단 나눔 또한 적절해서 읽기에 불편함도 없었다.
<마검왕>은 현대와 무림을 오가는 퓨전 판타지 소설이다. 현대와 무림의 차원이동. 몇 년 전이라면 몰라도 요즘엔 참으로 진부하고도 진부한 설정이다. 보통 필자는 현대에서 무림으로 가는 퓨전 판타지 소설을 보면 만족하지 못하고 책을 덮은 게 대부분이었다. 초보 작가들이 많이 써서 그런 건지, 그러한 설정 자체가 문제인 건지는 몰라도 대부분 필력과 개연성 등의 부족함을 느끼고 실망을 했다. 하지만 <마검왕>은 소위 ‘이고깽(이계 고딩 깽판물)’으로 불리는 현대(리얼 월드)-무림(판타지 월드) 차원이동(또는 환생) 소설에 대한 필자의 인식을 송두리째 바꿔놓기에 충분했다. 퓨전 판타지 소설이 모두 불만족스러운 소설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우선 위에 언급했듯이 작가의 필력이 뛰어나 읽는 데에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다.
또, 차원이동이란 설정은 진부하지만 세세한 설정이 신선하다. 보통 차원이동 소설 하면 미지의 힘에 의해 타계로 날아가 살아간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마검왕>의 주인공, 정진욱은 처음엔 타의로 끌려갔지만, 나중엔 본인이 원할 때마다 현대와 무림을 오갈 수 있게 된다. 지금껏 보지 못한 새로운 설정이라 할 수 있다. 또, 무림에서 몇 날 며칠을 있어도 현대의 시간은 그대로이다. 반대로 현대에서 몇 날 며칠을 있어도 무림의 시간은 그대로이다. 이 때문에 진욱은 급박한 상황에 타계로 가서 힘을 축적하고 돌아와서 위기를 헤쳐 나간다.
무림과 현대의 매개체인 ‘흑천마검’이라는 소재도 흥미롭다. ‘흑천마검’은 차원이동을 가능하게 하면서 의지도 갖고 있는 검이다. 그러면서 검의 주인인 진욱을 잡아먹으려 한다. 그런 검이 아이러니하게도 진욱의 진보를 돕는다. 사람이 가축을 키워서 먹듯이 ‘흑천마검’도 진욱을 강하게 해 잡아먹으려는 속셈인 것이다. 이 마검, ‘흑천마검’이 어떤 역할을 할지 기대된다.
설정과 소재 말고도 무공을 익힌 채 학교에 다니며 소위 ‘일진’이라 불리는 불량 학생을 처리하는 장면도 다른 퓨전 소설보다 훨씬 흥미롭고 재밌다. 불량학생들이 진욱의 가족에게 보복을 하고 진욱이 분노하는 장면, 필자 또한 진욱과 같이 분노했고, 진욱이 그 불량 학생들을 모두 쓰러뜨렸을 땐 필자도 통쾌했다. 운기를 한 후 집중력을 높여서 공부를 해서 성적이 오른 것도 흥미로웠다. 필자가 소설을 읽는 이유인 ‘재미’를 확실히 얻은 것이다.
필자는 결코 장점만 보고 평가하지 않는다. 이제 단점을 살펴볼 차례.
우선 필자가 꽤 많이 중시하는 ‘개연성’, 이것이 부족하다. 무림에서 1년 동안 수련해 강해지고 현대로 돌아온 주인공, 진욱. 키가 10cm나 더 크고 머리도 장발이 됐는데 가족들은 눈치 채지 못한다. 10cm가 컸으면 겉보기도 겉보기지만 옷부터가 안 맞을 거 같은데, 어물쩍 넘어가버린다. 그리고 ‘부모님이 걱정할까봐’ 라는 이유로 무림에 가서 있었던 일을 밝히지 않는다. 물론 무공을 익힌 사실을 주변 인물에게 밝히면 재미가 없어질 수도 있다. 아니 웬만해서는 재미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밝히지 않는 이유가 ‘걱정할까봐’ 이것일 바에는 차라리 밝히는 게 나을 것 같다. 이것이 자꾸 신경 쓰여서 초반에 책에 집중을 하지 못했다. 또, 진욱은 부모님한테는 밝히지 않아놓고 친구에게는 그 사실을 말하려고 한다. “나 1년 간 다른 세계에 가서 얻어맞으면서 무공을 익혔어. 거울을 보는데 갑자기……” 이렇게 친구에게 미주알고주알 다 말한다. 그런데 친구 왈(曰), “너, 약하냐?” 이 말을 들은 진욱은 그냥 밝히지 않기로 결심한다. 이럴 거면 도대체 왜 말하려고 ‘시도’한 건지 궁금하다. 백문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 무공 한번 보여주면 끝날 일이다. 근데 그걸 굳이 말로 설명하려 하고 믿지 않자 포기한다. 이것 말고도 불량 학생들이 얻어맞고 큰 길로 도망가자 진욱이 잡아와서 다시 구타한 장면이 있다. 이때 그 장면을 본 사람들이 많을 텐데 아무도 경찰에 알리지 않은 것이 참 의아하다.
또 하나, 무림에 있는 인물들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다. 진욱은 무림에서 어떤 단체에게 쫓기고 어떤 단체에게 도움을 받는다. 그런데 그 단체들의 싸움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다. 그냥 ‘도망갔다. 진욱을 돕던 단체, 귀영친위대는 전멸했다.’ 끝. 그러니까, 진욱과 관계된 주변 인물이 몇 명에 한정된 것 같다는 것이다. 마을에 가도 마을의 청년, 중년, 노인 이렇게 묘사될 뿐 진욱과 깊은 관계를 가지진 않는다. 현대에서는 불량학생 수십 명에게도 이름을 붙여주고, 진욱과 같은 반 친구들에게도 이름을 부여해서 다양함을 느꼈는데, 무림에서는 지금까지 진욱과 관계가 있는 인물이 검마, 흑웅혈마, 색목도왕, 설아 등이다. 진욱의 적도 무슨무슨 단체라고 나올 뿐 구체적인 설명은 없다. 즉, 현대에서는 다양한 인물과 관계를 가져 흥미로운데, 무림에서는 관계를 가진 인물이 적어 재미가 떨어진다는 것이다.
<마검왕>은 장점도 있지만 단점도 많이 보인다. 하지만 소재나 설정, 필력 등이 마음에 드는 것 또한 사실. 필자는 <마검왕>이 앞으로 더 재밌어질 것이라고 믿는다. 처음에 부족했던 개연성은 2권에서는 부족함을 별로 찾아볼 수 없었고, 무림에서의 관계 또한 차차 늘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또 필자를 분노하게 하고 통쾌하게 하는 작가의 유도(誘導) 능력. 이것은 필자의 감정을 이리저리 뒤흔들어, 흥미를 잃지 않게 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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