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명 : 마늘맨
작품명 : 칠성전기 외전 대륙사
출판사 : 無
칠성전기 외전 대륙사 감상.
평소에 감상문을 자주 보는 편이기 때문에, 어떤 때는 감상에서 본 책을 직접 읽어 보기도 한다. 『칠성전기 외전 대륙사(이하 ’대륙사‘ 로 호칭)』도 그러한 책들 중 하나이다. 많은 분들의 칭찬 일색의 글에 흥미를 느끼게 되었고, 전술과 전략이 실감나게 묘사되어 있다기에 나도 읽어 보게 되었다. 이 글을 읽으며 내가 내린 한 가지 결론은 “재미있다. 그러나 불편하다.” 라는 것이다.
내가 느낀 이 책의 재미는 다나카 요시키의 『은하영웅전설』을 볼 때의 재미와 유사하고, 이 책을 보면서 계속적으로 느낀 불편함 역시 『은하영웅전설』의 불편함과 비슷하다. 요컨대, 소설의 내용을 설명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분명 살이 떨리고 장면 하나하나에 몰입하는 재미를 느낄 수 있지만, 그러나 소설의 내용을 그대로 받아들이기엔 거부감이 너무 크다는 것이다. 내가 대륙사를 보며 시종일관 느낀 불편함은 팬터지 세상 속 현실의 기묘한 괴리감이었다.
대륙사는 그 이름처럼 하나의 역사(歷史)이다. 때문에 수많은 서사(敍事)들이, 그러나 단편적으로 제시되어야 할 터인데 사실상 그것은 외전(外傳)이라는 이름답게 하나의 서사에만 집중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라는 서술을 취하면서도 실상 하나의 서사에 집중하는 모순적인 구조는 자연스럽게 글의 긴장감을 떨어트리고, 지루함을 주게 된다. 특히 소설 초반의 그 난무하는 수많은 이름들과 신(神)들, 요정들과 용들의 등장은 비록 나중에 엘프들의 여왕과 용족의 왕의 등장에 약간의 개연성을 부여하기는 하나, 전혀 쓸데없이 나타나 글의 집중도를 크게 떨어트리고 전체적인 글의 구성을 산만하게 만드는 요소라고 할 수 있다. 굳이 그럴 필요가 있었을까? 초반의 그 모습은 마치 공들여 써놓은 설정집을 한 자씩 천천히 읽어주고 있는 모양새였다. 그런 필요가 존재했을까? 그저 나중에 “이 무구(武具)는 과거…를 벤 그 검이었다…….” 라는 식의 서술로 한 자락 신화의 발자취를 보여 주는 것으로 충분했을 텐데 말이다. 굳이 작가를 위한 변(辯)을 해보자면, 대륙사(大陸史)라는 그 이름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나의 서사와 역사라는 총체적 모순 앞에 존재하는 그 이름 때문에.
이 소설은 처음부터 결말을 말해놓고 시작한 이야기다. 때문에 이 소설의 카타르시스는 그 내용의 흥미진진함, 즉 ‘나중에 어떻게 될까?’ 라는 짜여진 맛에서보다는 장면의 미학적 카타르시스, 즉 얼마나 장렬한 최후를 어떤 모습으로 맞이하는가-‘에서 나온다. 이 점은 내가 위에서 잠깐 비교했던 『은하영웅전설』과는 약간 다른데, 『은하영웅전설』이 그 끝을 알 수 없는 흥미진진한 서사 속에서 수많은 인물들의 쟁투를 그려내는 데에서 재미가 나온다면, 대륙사는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대륙사는 처음부터, 정해진 각본을 향해 숨가쁘게 달려온 글이고 때문에 그 땀방울이 얼마나 멋있느냐에 독자의 시선은 집중되어있다.
이 글은 남성적인 글이다. 남자들의 장렬한 전투와 대결, 전술과 전략의 거미줄에 매달려 이 서사는 고치처럼 매달려 있다. 마지막의 장렬한 최후는 그러한 남성의 아름다움을 보여주기에 충분하다. 중과부적(衆寡不敵)의 상황 속에서 정면으로 돌파해나가는 아군, 수많은 강자들과의 일기토의 연속, 이제 갈라지고 잘린 만신창이의 몸으로 왕과 마지막 결투를 벌이다 스러지는 장렬한 최후는 그런 독자들의 시선을 집중시키기에 부족함이 없다.
그러나 이런 장렬함을 만들어 내기 위해 작가가 만들어내는 서술은 불편함을 만들어낸다. 이 소설의 국제정치와 전술은 거의 은하영웅전설을 방불케한다. 말로만 하면 다 이루어지는 것이다. 도대체 어떻게 2만 명의 기마병이 거의 십만에 가까운 병력의 종심을 만들어내는지 설명은 나오지 않는다. 기마병을 산개(散開)시켰는데 어떻게 그 충격력이 그대로 유지된 채, 그 넓이만큼의 힘을 발휘하는지, 설명은 나오지 않는 것이다. 단지 그럴 뿐이다.
그렇게 믿기지 않는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며 인물들은 팔이 잘리거나, 검이 부러질지라도, 마지막의 최후의 한 대사는 내뱉은 채 장렬하게 죽어간다. 어떻게 보면 대단히 멋있어 보일지도 모르지만, 너무 과도할 정도로 비장한 서술의 연속은 오히려 보는 사람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또한 인물도 서술도 너무 많다. 그렇게 많은 인물들의 향연을 보여주기보다는, 같은 서술의 반복을 계속해서 해나가기보다는, 차라리 내용을 줄이고 핵심 부분의 내용을 좀 더 섬세하게 표현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이 소설의 내용을 접어두더라도, 과도한 말줄임표(…)의 사용은 몰입되어 있다면 그렇게 어색하지 않은 부단한 내용의 서술이 될 것이나, 살짝만 글의 바깥에서 바라본다면 대단히 느슨한 글이 된다.
결국 전체적인 평은 이렇다. 이 소설은 분명히 주인공의 장렬한 최후를 강조하는 데에 주목하고 있으나, 그러한 장렬함을 너무 강조한 나머지 전체적 서사에서 어색함이 느껴지게 하는 글이다. 때문에 나는 이 글을 ‘재미는 있으나 불편함이 느껴지는’ 글이라고 하는 것이다.
p.s. 가장 내가 느끼는 비합리적인 모순은 자하르의 크로세스가 대륙통일을 해 나가면서 패권국으로 거듭나는 과정 속에서 전 대륙의 그들에 대항해 일어난 사실이다. 국제정치학의 지배적인 학파인 현실주의에서는, 예를 들어 힘이 50, 40, 10인 국가 A, B, C 가 있을 때, C는 B의 편에 서서 균형(balance)을 맞추기보다는 A와 같은 강대국의 편에 서서 강대국의 힘에 편승하려는 경향이 있다고 주장한다. 크로세스가 거대한 패권국이 아니라, 단지 지역적 패권국일 때에도 크로세스는 왜 전선을 두 개로 만드는 모험을 강행했는가? 그의 국가에 편승하려는 동맹국은 많은 것인데 말이다. 심지어 이차 세계대전에서 수차례의 삽질로 이름높은 히틀러마저도 독․소 불가침조약(몰로토프-리벤토로프 조약)을 통해 전선의 단일화를 꾀한 바가 있는데 말이다. 작가가 그렇게 띄워주는 자하르는 그러한 생각조차 못하고 있으니 어떤가, 이건 거의 다나카 옹의 ‘라인하르트 천재설’과 비견할 만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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