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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에 관련된 감상을 쓰는 곳입니다.



작성자
Lv.99 가류운
작성
03.09.09 01:34
조회
1,779

편의상 평어체로 씁니다.

http://mars.murimpia.com/

진산의 날아가는 칼은 2001년9월11일 연재를 시작해서 2003년9월8일 완결한

12개의 장으로 이루어진 단편 무협이다. 주인공으로 비검취국과 설노인 두사람

이 등장하고 조연으로 설노인의 딸 설국과 풍적회의 회주가 나온다.

우리는 수많은 무협소설에서 신검합일을 봐왔다. 그러나 진산의 날아가는

칼은 우리가 그동안 많이 봐왔던 그런 신검합일의 궤적에서 상당히 많이

떨어져 있다.

그러나 눈으로 봤던 그 껍질은 다를지라도 그 본질은 전혀 다르지 않다.

칼과 마음을 일치시킨다는 점에서..... 다만 진산은 그 신검합일에서 인

간의 근원적이고 어쩌면은 노력하기에 따라 바뀔 수도 있었던 숙명적인

외로움을 이야기 하고 싶었던 것이 아닌가 한다.

1장은 이렇게 시작된다.

날이 추웠다. 오지게 추웠다. 눈을 헤치며 그는 걸었다. 걷다가 멈춰서 술

을 마시고, 또 걷다가 멈춰서 술을 마셨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외롭다. 옆에 친구가 있어도 그러하고 아내가 있어도

그러하다. 단지 그들이 같이 할 때에는 잠시지간 외로움이 물러갈뿐이다.

그 외로움은 허무를 뜻하며 구멍뚫린 채 식어 차가워져 버린 인간의 가슴

을 이야기 한다. 그러기에 진산은 구멍뚫린 마음이 메워질까 외로운 마음

이 잠시라도 채워질까 해서 취국을 통해 술을 마시고 또 마시는 것이다.

풍적회 회주대신 온 취국이, 설노인에게 단전을 파괴당하고 근육과 신경

을 끊어진 후 앞마당으로 옮겨지는 느낌을 진산은 이렇게 묘사한다.

'한기는 두터운 이불 위로 여자의 살을 만질 때처럼, 거기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데도 그 살냄새를 느낄 수 없을 만큼의 거리를 두고 다가왔다.'

외로움을 오지게 추웠다는 말로 나타내고, 한기를 두터운 이불위로 만지는

여자의 살로 표현하는 것에서 진산은 해소할 수 없는 안타까운 외로움을

처절히 이야기한다.

여기서 이불위의 여자의 살냄새는 사람과 사람사이의 정이리라. 그 정을

살 냄새를 느낄 수 없을 만큼의 거리로 표현한 것은 그만큼 사람과 사람

사이의 정이 좁힐 수 없는 간격이 있다는 외로움의 역설적 표현이고 앞으

로 설노인의 딸과 취국의 관계가 한계점이 있다는 것을 예시하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진산은 취국과 설국의 대화에서 이미 사랑과 미움이 모두 허무

라는 것을 깨달아서 절망한 남자에게 사랑을 느끼고 사랑에 미련을 가지는

여자의 속성에 대해 취국의 입을 빌려 독자들에게 이렇게 말을 한다.

"사랑한다고 생각했었어, 그러니까 절망하고 분노해야......(중간 생략)..

.... 사랑와 미움이 모두 허무라서...술을 마신 건, 실연의 상처 때문이

아니라 그것 때문이었어."

이야기를 마쳤을 때, 취국은 설국의 눈에 그렁그렁한 눈물이 고인 것을 발

견했다. 그는 쓴 웃음을 지었다. 꼭 이렇다니까.울어야할 일이 아닌데도

여자들은 이 이야기를 들으면 울어, 허무는 눈물과 무관한 것인데도.

한참 건너뛰어서.

취국은 인간 극한의 한계를 시험하는 온갖 관문을 넘어 드디어 신검합일을

이루기 직전까지 도달한다. 그러나 여기서 진산은 취국이 마지막으로 인간

으로의 회귀를 선택할 수 있는 한 장면을 더 넣는다. 설국의 마지막 기대를

같이 싣고서......

부는 눈보라 사이로 그녀의 존재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여전히 눈에는 보

이지 않았다. 하지만 느껴졌다. 온기, 눈물, 따뜻함. 그녀는 설국의 정령

이라고 거짓말을 했었다... 뜨거웠다. 그녀는 인간이었다. 감정으로 상대

의 발목을 잡는, 눈물로 사람을 죽이는.... "어서 올라와! 이 손 잡아!"

그녀가 울부짖었다..... 취국은 손을 놓았다. 그동안 술은 충분히 마셨어.

그러나 취국은 인간으로 돌아갈 수 있는 마지막 손조차 놓아버렸다.

애끓는 여자의 손을 뒤로하고서...... 절벽밑으로 떨어져 버렸다.

그리고 드디어 칼과 한 몸이 되었다. 진산은 여기서 신검합일을 이루는

장면을 이렇게 표현했다. 어떤 말을 독자에게 하고 싶었을까......?

독특한 칼울음이...제주인의 어깨를 함께 꿰고서. 눈위에 피가 뚝뚝 떨어

졌다. 아플 것이다... 하지만 자신의 칼에 어깨를 꿰뚫린 남자는 화를 내

기는 커녕 그 몹쓸 칼의 몸을 쓰다듬어주었다.... 뭔가 속삭이는 것을

그녀는 보았다... 그녀는 절대로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다.

취국이 설국의 손을 놓아버린 것은 인간의 감정까지 완전히 버린 것과

세상과의 단절이 다가오는 것을 의미한다. 어깨에 박힌 칼과 땅에 흘린

피도 마찬가지로 취국의 앞날을 간접적으로 예시하는 것이다.

결국 취국은 설노인의 천하제일무공을 전수 받는데 성공한다. 그리고 두

사람은 허무의 끝에서 공전절후의 대결을 한다.

취국과 설노인은 이미 인간의 한계를 넘어버렸다. 인간의 감정도 메말라

버려 핏줄도 동료도 그들의 눈엔 보이지 않는다. 다만 서로의 대결에 온

신경을 집중할 뿐이다. 삼일간의 치열한 대결 끝에 취국은 설노인을 이기

고 천하제일인의 위치에 올라선다. 그리고 풍적회의 회주에게 담담하게

이야기한다.

"너무 오래 기다렸기 때문에, 마지막 순간 제 칼을 깰 수 있었을 때, 기억

해 버리신 겁니다. 함께 어울려 칼을 날아오르게 할 수 있는 사람을 기다

리던 시간동안 느꼈던 외로움을."

잠깐 침묵했다가 눈을 뜨고, 취국은 말했다.

"저는 외로움을 몰랐고, 그래서 제가 이겼습니다."

진산은 일관되게 칼과 한몸이 되는 신검합일을 통해서 외로움을 이야기한다.

신검합일을 통해서 인간의 감정을 버리고, 신검합일을 이룬 사람이 같은

신검합일을 이룬 사람을 너무 오래 기다리다, 그 긴 시간에 그만 외로움을

기억해버린다. 그리고 그로 인해 절대 깨질 수 없는 칼의 완벽성에 흠집이

생기고, 그 외로움으로 순간 죽음을 선택하고서야 인간으로의 회귀가 가능

하다는 것으로 신검합일은 이율배반적인 두 양면을 동시에 암시한다.

취국은 긴세월 설노인이 살았던 설산 한 자락에서, 결코 무너지지 않을 줄

알았던 풍적회가 무너지고, 풍적회를 무너뜨린 세력 또한 먼지속으로 흩어

져 돌아가고 칼이 날 수 있다는 전설과 꿈이 다시 전설이 되어버릴 만큼

오랜 세월이 흐른 후 한자루 칼을 날린다. 그 칼이 날아올라 허공과 구름

을 뚫고 날아오르다 다시 떨어져 끝없는 추락끝에 눈밭에 누운 한남자의

심장에 박힌 칼은 마지막으로 흐느껴 울다가 한자루의 쇠붙이로 돌아간다.

그 후에 어떤 칼도 날지 않는다.

진산은 마지막 장면에서 왜 칼이 흐느껴 운다고 묘사했고, 그 후에 어떤 칼

도 다시 날지 않는다고 했을까?

마지막 물음은 직접가서 읽어보시면 해답이 나올 겁니다.^^ 그걸 댓글로

달아주시면서 이야기하면 재미 있을 듯 합니다.

강호정담에서 혈영님이 소개해준 이 사이트에 들어가서 진산님의 글을 읽었

을 때, 그 순간 그만 글 속에 빠져버렸다. 온몸에 뼈가 울릴만큼의 충격이

와버렸다. 내내 그 글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얼마 안되는 분량이라

금새 읽었는데, 마치 긴 시간이 지난 것 처럼, 글을 읽는 내게서 시간이 길게

늘어져 있음을 알았다. 정신을 차리고 감상을 적고나니, 이번엔 짧았다고

느껴졌던 시간이, 너무 빨리 지나가버려서 어느새 한시반이 넘어버렸다.

http://mars.murimpia.com/


Comment ' 7

  • 작성자
    Lv.14 박현(朴晛)
    작성일
    03.09.09 04:09
    No. 1

    근래에 보기드문 좋은 감평이었습니다.
    이런 감평을 들은 진산님은 행복하시겠어요...^^*
    칭찬, 비난을 떠나 작가의 마음을 읽으려고 노력하신 모습이 참 좋네요.
    저도 읽고 싶어졌다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50 삼절서생
    작성일
    03.09.09 08:52
    No. 2

    박현님의 말씀에 한표!
    오늘 퇴근하면 맥주 한박스 사들고 가서
    날아가는 칼과 함께 그동안 쌓아 두었던
    책들을 모두 소화 하렵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정팔
    작성일
    03.09.09 14:04
    No. 3

    꽤오래된 글인데도 아직도 기억이 선연합니다.
    이렇게 글을 잘 쓰는 작가도 있었구나.
    단편이지만, 무협최고의 걸작이 틀림없습니다.
    아마도 더는 진산 같이 글을 쓸수있는 사람이 나오지 못할듯

    찬성: 0 | 반대: 0 삭제

  • 작성자
    Lv.15 소이비도
    작성일
    03.09.09 14:33
    No. 4

    옛날에 읽다가 완결을 못 보고 잊고 있었는데,,, 결국 그렇게 되었군요. 흑흑 ㅠ.ㅠ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 홍이
    작성일
    03.09.09 19:24
    No. 5

    확실히 쉬시는 동안 글이 늘었다는 생각이...^^

    그러기에 오랜간만에 보는 날아가는 칼은 더욱 인상깊었습니다.

    글이 더욱 섬세하고 감성적으로 흐르더군요

    한가지 궁금한 것은 마지막으로 인간으로 회귀할 기회에 손을 놓지 않았다면

    과연 그는 살아갈 수 있었을까요?

    그리고 작가로서의 진산님이 인간으로 회귀한다는 의미를 자기자신에게는 어떤 의미로써 부여하고 있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외로이 글을 쓰다 외로이 저물다...라는 것이 하고 싶은 말이셨는지...

    아쉽네요...

    넋두리였습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정팔
    작성일
    03.09.10 03:22
    No. 6

    진산님은 역시 단편이라는생각이 드는 글이더군요. 다시 한번 읽으니
    예전에 홀딱 빠져 있던 그 글에서 어떤 약점도 느낍니다.
    -최고의 단편을 쓴 작가가 왜 최고의 장편은 남기지 못했을까?
    하는 의문-
    진산님은 역시 용대운님과 함께 고룡에게서 가장큰 영향을 받은 작가같습니다. 너무 섬세하기에 장편을 쓰기에는 너무 빨리지쳐 버린다 라는
    체질적인 약점이죠. 예를 들어 장경님은 투박한 문체여도 장편을 쓰면
    역작을 만들어 냅니다. 물론 진산님의 장편이 다른 작가들보다 못하다는
    말은 절대 아닙니다. 진산님의 장편도 재미있습니다. 그러나 진산님의 단편 보다는 못하다는 느낌을 받지요.
    그러나 진산의 단편 하나를 읽고나면 장편 열권을 읽은것 보다 더한 감동을 받습니다.언젠가는 근사한 장편도반드시 쓰낼것이라고 기대를 합니다. 반드시 그리 될겁니다.

    찬성: 0 | 반대: 0 삭제

  • 작성자
    Lv.1 呂洞賓
    작성일
    03.09.10 14:02
    No. 7

    좋네요.... 윗 글을 읽다보니 언젠가 읽었던 '홍엽만리'라는 작품이 생각나네요.. 내용도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제목만으로도 붉은낙엽가득 날리는 가을하늘이 떠오르는... 재미두 있었던것 같구요....^^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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