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칭은 생략하겠습니다.
근 10년 가까이 좌백은 신무협의 기수로 자리 매김 해 왔습니다.
반골기질이 다분한 필명에서 알 수 있듯이 정통무협의 매너리즘에 일침을 가하면서 등장했습니다.
"대도오"는 신무협의 고전이 되었고, "혈기린외전"은 신무협의 결정판이 되었습니다.
"생사박" "금강불괴" "야광충" "독행표" 등등. 엘리트와 절세 미남-미녀만 난무하던 강호에 보통사람도 살고 있음을 보여 주었습니다.
무림일통만을 꿈꾸던 거시적 관점의 무협이 대다수를 이루던 한국무협에 개인의 소소한 일상사를 표현하는 미시적 관점의 무협을 선보였습니다.
그래서 정통무협의 매너리즘에 식상해 있던 무협독자들에게 "신무협"이라는 새로운 바람을 불러 일으켰고, 하나 둘씩 좌백의 추종자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강산도 변한다는 10년 가까운 세월이 흘러습니다.
오랜만에 좌백의 신작이 나왔습니다. "천마군림"입니다.
기대감속에 1권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페이지가 넘어갈수록 이게 아닌데 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기존 좌백을 스타일을 떠나서(작가의 스타일은 고정 될 수 없습니다. 자신만의 스타일을 고집하는 작가는 퇴보하기 쉽습니다. 물론 작가만의 독창적인 개성 또는 스타일이 밑바탕에 깔려 있어야 되겠죠?) 무협소설을 읽는다는 기분이 별로 들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판타지류의 책을 읽는다는 기분이 강하게 들었다면 지나친 생각일까요?
그동안 논란이 되어 왔던 지나친 성애묘사는 논외로 두고서라도 무협적 요소가 지나치게 배제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무협적 요소가 무엇인가? 라고 묻는다면 필설로 형언하기 쉽지는 않습니다 만, 가령 예를 들자면,
임준욱의 "촌검무인" 장경의 "성라대연" 운곡의 "등선협로" 같은 작품들을 읽다 보면 절로 눈앞에 강호세계가 펼쳐져 보입니다. 그리고 칼 한 자루를 들고 강호를 주유하는 주인공이 그려지고, 가끔은 스스로도 주인공이 되어 강호를 거닐게 됩니다.
그렇다면 "천마군림"은 어떻습니까?
솔직히 지금까지 제가 읽은 좌백의 작품 중 "천마군림"이 가장 재미있습니다.
치밀한 구성, 방대한 스케일, 생생하고 박진감 넘치는 전투씬 묘사 등등..
좌백의 글 솜씨에 다시 한번 감탄을 금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아쉬운 소리를 하는 것은 무협소설 같지 않다는 것입니다.
무협의 고전적인 향취를 느끼기보다는 대규모 전투씬에서 볼 수 있듯이 무협의 형식을 빌린 판타지를 보는 것 같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현재 대다수 한국무협의 경향이기도 합니다.
특히 최근에 등장한 신인작가들의 주된 경향이기도 합니다.
무협의 껍데기만 둘러쓴 체 판타지류의 내용을 보이는 소설, "먼치킨"이라 부르는 무협소설 말입니다.
저는 아직까지 "먼치킨"의 정확한 어원을 모릅니다. 모 작가가 자신의 글 서문에서 "먼치킨"류의 글만 쓰고 싶다는 표현을 보고 "먼치킨"이라는 단어를 알았고, 그러한 책이 "먼치킨"이구나 생각합니다.
가볍고 말장난과 유머러스한 글이 모두 "먼치킨"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습니다.
운곡의 "표변도" 풍종호의 "광혼록"을 보면서 가볍게, 유쾌하게 읽을 수 있지만 결코 먼치킨이라 생각해 보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최근 일부 신인작가들의 글을 보면서 자연스레 "먼치킨"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왜일까요? 생각해 볼 문제입니다.
예. 글이 조금 엉뚱한 데로 튀었군요?
그래서 아쉽습니다.
무협작가 좌백의 의도가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그의 작품에서 무협적 향기가 나지 않는 것이....
저는 "무협"이라는 단어를 떠올릴 적이면, "소오강호" "금강" 그리고 도서출판 "뫼"로 등단한 일련의 작가군(장경, 좌백, 조철산, 한수오 등등)을 떠올립니다.
"소오강호"는 무협적 세계관을 가장 보편화하여 표현한 작품이라 생각하고, "금강"은 한국무협의 대부이자, 개인적으로 무협을 알게 해준 작가입니다.
그리고 "장경" 등은 이른바 예전에 제가 언급했던 "한국무협의 황금세대"입니다.
그들이야말로 무협소설을 무협지가 아닌 무협소설로 써내는 분들이라 생각합니다.
무협의 대한 관점은 다양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천마군림"이나 "먼치킨"에 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위 글은 개인적인 생각일 뿐이지 100% 옳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Comment '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