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작가 백준을 너무 좋아한다. 그를 알게 된 것은 아주 우연이었
다. 신독님이 한창 집탐 광고로 각 게시판을 도배하고 다닐 때, 나는
우연히 집탐 광고를 봤다. 집탐 게시판은 무척이나 흥미로웠지만 인터
넷으로 글을 못 읽는 나는 글만 읽어볼 뿐, 참여할 생각은 들지 않았
다. 그러다 건곤권 집탐이 열릴 때, 건곤권 분량이 워낙 적어, 모니터로
글을 읽고 집탐에 참여하기로 결심했다. '다 읽을 수 있을까...?'라는 걱
정이 앞섰지만 몇 편을 읽다보니 그러한 생각은 사라졌다. 그리고 나는
건곤권에 반해서 초일 전질을 주문했다.
읽었다.
재밌었다.
하지만 그것뿐이다.
조금이라도 오해의 소지를 없애기 위해서 내가 쓰는 "재미"라는 단
어의 뜻을 설명하겠다. 내가 말하는 재미는 책을 읽을 때 느끼는 행복
감이다. 그리고 나는 재미와 작품성을 구별한다. 작품성은 책을 다 읽
고난 후에 느끼는 "재미"다. 책을 손에서 놓은 후에도 그 재미를 느낄
수 있는 것. 그래서 다시 그 놓았던 책을 붙잡는 것. 내가 생각하는 '
작품성'이다.
어찌 됐든 나는 초일을 두 번 읽었다. 하지만 그 이상은 읽을 수 없
었다.
무협이 두 번 읽히는 것만으로도 상당히 성공한 글 축에 속한다고
생각한다. 한 번 읽고는 도저히 손이 안가는 책들도 있으니까...
조용히 지나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앞으로 백준 작가가 "재미"에
치우치는 작가가 되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에 이 글을 쓴다. 다시 말하
면, 그의 작품이 한 번 읽히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두 번 그리고
세 번, 정말 두고두고 읽힐 수 있는 그런 소설이 되길 바랄 뿐이다.
초일은 1권부터 8권으로 이루어진 소설인데, 처녀작이라서 그런지 글
이 일관성을 유지하지 못했다. 내가 말하는 일관성은 글의 내용이 아니
라 글의 색깔이다.
초일은 용두사미다.
초반에 나오는 멋진 무론, 세밀한 묘사 없이도 초일의 강렬한 인상.
거기에 초반의 평범한 서술형 문장은 묘한 흡입력이 있다. 쓸데없는 묘
사를 늘어놓으면서 주인공을 부각시키려는 신인 작가들의 의도가 깃든
작품들이 난무하는 요즘, 초일은 분명 신선하다.
하지만 2권을 넘어서면서 초일은 그 매력을 잃기 시작했다.
작가는 이야기를 재밌게 풀어간다. 지루하도록 묘사가 많은 것도 아
니고, 대화나 행동 위주로 꽤 스피디하게 진행된다. 하지만 말 그대로
"이야기" 밖에 없다. 만약, 그가 작가 서문에서 밝혔듯이, 이 책이 독자
의 기억 속에 오래 남았으면 하는 바램이 있다면, 그는 변해야 한다.
주제가 필요하다. 작가의 개입으로 어느 정도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독자에게 인식시켜줬으면 좋겠다.
생사박에 보면 흑저가 어딜 가던 그 길이 소림사로 가는 길이었다.
라는 대충 그런 식의 문장이 있는데... 이 문장은 나름데로 심오하고,
작가의 개입으로 인해 이 소설의 의도를 알 수 있다는 것이다.
도대체 초일에서는 무엇을 얘기하고 싶은가? 강호 후기지수들의 사
랑과 우정? 여러 사람들을 만나며 불행한 과거로부터 해방되는 초일?
둘 다?
둘 다 소설을 읽다보면 쉽게 느낄 수 있는 것이지만, 그 다음이 중요
하다. 더 깊이 있게 들어갔어야 했다. 유운비의 죽음, 그리고 개방 차기
방주의 죽음,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들 중 하나지만, 감정에 호소하는
신파극 성향이 강하다.
잠시 다른 얘기를 하자면, 과연 독자는 어디서 감동을 느끼는 것일
까? 책을 두 번이고, 세 번이고 읽게 만드는 요소는 작품을 통해 드러
난 작가의 깊이다.
그리고 무협을 통해 드러날 수 있는 작가의 깊이는 크게 두 가지다.
좌백이나 김석진 작가처럼 작가의 개입으로 미쳐 간과한 사실을 인지
시켜주는 스타일과 용대운의 군림천하나 설봉 작가처럼 인물에 작가의
깊이를 반영할 수 있는 스타일이다. 정말이지... 군림천하의 진산월의
말솜씨는 가히 무림에서 천하제일이다. 그것도 아니라면, 마지막으로
작가의 전개 자체가 창의력이 돋보이는 작품.
어쨌든, 독자가 같은 책을 몇 번이나 읽을 때는 작가의 깊이에 경의
감이 들었을 때이다. 그리고 그러한 경의감이 감동이고 우리가 말하는
소위 '작품성'이다. 그리고 초일은 그러한 점이 부족하다. 뭐, 그냥 그렇
다는 얘기다.
이 글이 사건 중심인지 인물 중심으로 쓰여진 글인지 전혀 모르겠
다는 것이 더 큰 문제다.
제목에서만 보면 인물을 중심으로 쓰인 소설 같다.(제목이 사람 이름
이니까...) 근데 막상 안을 열어보면 그렇지 않다. 마치 강호를 집어삼키
려는 음모가 진행중인 가운데, 그 속에 인물들이 움직인다. 인물들이
사건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건이 인물들을 움직이는 인상을 받았다.
사건이 더 강하게 다가온다는 말이다. 그나마 인물 중심이라고 느껴진
부분은 작가가 이 글의 이야기를 '완벽'하게 끝내지 않았다는 것이다.
가령 마지막에 나온 여자는 그냥 스쳐 지나가는 인연이다. 어떻게 보면
왜 나오는지 전혀 모르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점이 오히려 낫
다. 사람이 어떻게 만나는 사람마다 운명으로 이어졌단 말인가? 나에게
소중한 여자친구도 있고, 소개팅이나 미팅 한 번으로 끝나는 여자들도
있다. 이런 점은 충분히 칭찬받아 마땅하지만, 소설의 허리 부분에서는
사건만 보이지 초반에 보여줬던 인물의 인상들이 강하게 살아나지 않
는다. 유운비도, 그리고 마지막에 보라색 머리가 되는 놈... 그 놈도 마
지막하고 처음에만 그럴듯하게 나오고, 중간에 사건에 휘둘리는 느낌을
받았다. 그렇다고 음모를 꾸미는 놈이 위대하게 나온 것도 아니고... 뭐,
그냥 그렇다는 얘기다.
(너무나 좋은 인물 설정에도 불구하고 더 많은 매력을 이끌어낼 수 없었던 것이 정말 아쉬웠다.)
그리고 진짜 가장 큰 문제는...
건곤권이 초일과 너무 비슷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건곤권의
초반 분위기는 집탐에서 신독님이 밝힌 바 있듯이 독자에게 '아련한 향
수'를 가져다 준다. 이야기를 너무 익싸이팅하게 이끌어 가려고 하기
때문인가? 나는 건곤권을 읽으면서 초반의 그 아련한 느낌을 어떻게
무협에 적응시킬지 사뭇 기대를 했었다. 하지만 과거에 나눴던 대화를
다시 보여주는 등.... 단순히 감정에 호소하는 그런 글이다. 그는 아직
초일에서의 한계를 넘지 못했다. 물론, 초일과 건곤권 사이에 백준이
장족의 발전을 이루었다. 뭐, 그냥 그렇다는 얘기다.
작가가 당장 철학을 소설에 녹이고, 등장인물을 위대한 인물로 설정
하라는 것은 아니다. 그가 즐겁게 작품을 쓰고 있고, 독자가 재밌게 읽
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좋은 일이다.
밑에서 잠깐 얘기했지만, 백준 작가는 아직 이십대다. 그는 상당히
젊은 작가로서 그의 작품을 통해 젊은 독자층과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
다. 백준 작가가 재밌다고 생각하는 글은 젊은 독자들이 대부분 재밌게
볼 것이라는 말이다.
백준 작가가 앞으로 십 년 이십 년 후에도 무협 작가로서 활동할지
안할지는 본인의 마음이지만, 독자로서 그가 대가가 되는 것을 보고 싶
다. 뭐... 그냥 그렇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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