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명 : 밀란 쿤데라
작품명 :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출판사 : 민음사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1년 전쯤에 읽고 영 읽혀지지 않기에 쉬었다가 이번에 다 읽었다. 어째서 존재가 참을 수 없이 가벼운가? 네 사랑은 무거운가? 가벼운가? 글쎄다…….
삶에 대한 무수한 무게를 수많은 여성들과의 관계에서 흘려버리려 하는 토마스. 그리고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고, 토마스와 이어진 썩어버린 동아줄이 끊어지지 않게 힘겹게 자신을 옭아매고 있는 테레사. 자신을 이어주는 속박의 고리를 배반함으로써 한없이 가벼워지려 하는 사비나. 주변의 관계에서 줄 곳 올곧은 삶을 살았던 프란츠가 원하던 사비나. 이들은 그 삶과 관계에서 자신을 가볍게 정의하고 또, 무겁게 만든다.
투쟁의 역사 속에 놓인 인간처럼 서로를 속박하고, 옭아매고 열쇠고리로 만들어 옆구리에 달아 놓지 않으면 안심 할 수 없다. 그리고 무수한 관계들 또한 그들의 육체를 지상의 흙바닥에 딱 달라붙게 만든다. 하지만 그 꽉 막힌 속박으로 인한 고통은 어찌 할 것인가? 인간에게 균등히 놓인 단 한 번의 삶을 위해 우리가 선택한 것은, 육중한 관계에서 오는 사랑인가? 깃털처럼 자유로운 삶인가? 다시 말해 이 속박으로 인한 무거움과 거대한 지평선 너머로, 저 우주, 대기권 위로 솟아오르게 만드는 일탈된 자유로움이 ‘얼마만큼’ 우리의 삶에 균등히 내려앉아, 생이 끝날 때 까지 함께 행진을 하는가가 이 글의 요지중 하나라고 볼 수가 있다.
‘테레사는 머리를 그의 어깨 위에 얹었다. 그들을 태우고 안개 속을 날았던 비행기에서 그들이 함께 나란히 앉아 있던 그 때처럼, 지금 그녀는 그때와 똑같은 독특한 행복을, 독특한 슬픔을 체험했다. 이 슬픔은 <우리는 종착역에 도착했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 행복은 <우리는 함께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슬픔은 형식이었고 행복은 내용이었다. 행복은 슬픔의 공간을 채웠다.‘
글의 마지막에서 자신들이 삶의 끝에 도착해 있음을. 그것이 테레사가 그토록 갈구하던 사랑이고 행복이었음을 알 수가 있다.
이것의 명칭은 모르지만. 일본식 정원에 보면 수로에서 ‘쪼르르르!‘하며 물줄기가 내려오고, 대나무로 된 통에 물줄기를 받는 장치가 있다. 그 물이 다 차면 ‘통!’ 하고 대나무가 기울어지고, 밑의 개울로 가득 담아 있던 물이 모두 쏟아지게 된다. 그리고 대나무는 처음부터 다시 물줄기를 받고 점점 차오른다. 쿤데라가 말하고자 하는바는 바로 ‘쪼르르르르! 통!’ 이라고 볼 수가 있다.
인간의 삶은 시간에 의해 겹겹이 쌓여 점. 점. 점! 쪼. 르 .르. 르!하고 무거워 진다. 사랑은 서로의 관계에 의해서, 육체의 속박에 의해서 그렇게 쌓여가고만 있다. 그 사랑과 삶이 시간이 지나가고 거대한 통 안에 가득 차 그 끝을 알릴 때. 동시에 그것들을 모두 바닥으로 쏟아 부어야 할 때. 그들은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자 이제 끝나고 시작할 시간이야.’ 하고 말이다. 그렇게 테레사와 토마스는 모든 무거움을 벋어 던지고 생에 최고의 순간에, 조금은 갑작스럽게 행진을 멈추게 된다. 어떻게 말한다고 해도 이것은 행복한 결말이었다, 라고 결론을 내려야 할 것이다. 바로 ‘쪼르르르르르! 통!’ 하고 말이다.
ps. 이러니저러니 해도 이 책의 본질을 알려면 몇 번은 더 읽어 봐야겠다.
한줄 말 - 그렇게 할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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