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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타, 영혼의 걸음으로 걷다.

작성자
Lv.6 박상준1
작성
09.09.19 07:09
조회
1,138

작가명 : 정도상

작품명 : 낙타

출판사 :

저는 이 글을 ‘일종’의 판타지로 읽었는데, 다른 분들은 이의가 있을 것 같아서 감상란에 씁니다. 비평란에는 연재중이거나 출간된 개별 장르소설에 대한 비평을 쓰게 되어 있더군요. 전에 이 규정을 어겨 글이 삭제되거나 핫이슈 게시판으로 간 적이 있습니다.^^ 문학적 장치로 환상 이라는 요소가 다분하지만, 장르소설이라고 하기에는 좀 아닐 것 같아서요.

뭐, 개인적 감상의 성격이 강하긴 하지만, 딴에는 비평을 쓴다고 쓰는 글입니다.

얼마 전 표류공주에 대한 비평글을 비평란에 올렸는데, 진가소사를 기다리는 독자들을 위해서 여기서 이러면 안 됩니다, 하는 리플에 조금 뜨끔했습니다. 이런 말이 어떨지 모르겠지만, 글이 막혀서 또 안 나옵니다. 그래서 좀 다른 글을 쓰면서 저를 환기 시키는 겸해서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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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정도상 그리고 판타지

정도상이란 이름을 알게 된 것은 한참 전이다.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학생 때, 어느 대학 교지에 실린 그의 소설을 보았다. 오래 되서 제목도 내용도 하나도 기억이 안 나고, 정말 글 잘 쓰는 구나, 했던 느낌이 남아있다.

소설가 정도상은 그 뒤에 문예지에서 단편으로 몇 번 본 것 같기도 하고, 무슨 문학상 수상 같은 기사를 본 적이 있는 것 같다. 창비에서 나온 찔레꽃은 아직 못 읽어 봤다.

우연히 기사로 알게 된, 김훈의 신작 소설 공무도하 연재를 보러 갔다가 낯설지 않은 이름, 정도상을 발견했다. 낙타. 정도상이 여름부터 연재하기 시작한 신작이다.

시작부터가 심상치 않았다. 당혹스러웠다. 그 정도상이 아니었다. 내 기억에 정도상은 소위 운동권 소설가였다. 참여문학이라고 넓게 부르지만 그 중에서도 허리를 꽃꽂이 세우고 또, 눈에 핏발을 돋우고 세상을 바라보는 소설가였다. 세월이 그 만큼이구나 싶었다. 예전에 읽었던 박상우의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 같은 스산하고 냉소 가득한 분위기의 글하고도 달랐다. 하기야 90년대를 뒤덮었던 80년대 후일담 소설을 쓰지 않겠다던 인터뷰를 본 것 같은데(“그래도 80년대 소설은 정직했다”, 오마이뉴스, ’01.7.14, ) 그 후로도 거의 10년 가까이가 지났으니.

소설은 아들을 잃은 흉노족 화가의 이야기를 프롤로그로 시작한다. 무려 삼천년 전 이야기. 화가는 사막에 아들을 묻고 새끼 낙타의 목을 잘라 그 위에 피를 뿌린다. 나중에 어미가 새끼의 피를 기억하고 찾아오리라.

“옆구리에 절벽 하나가 만들어진” 나는 “옆구리에 바람처럼 흐르는”(2회) 삼천년 전 낙타 울음소리를 따라 몽골을 찾아온다. 황무지에서 길을 잃은 나는 “암각화는 어디에 있어?”(3회) 하고 부르는 아들 규를 만난다. 그리고 나는 규의 손을 잡고 바람 속으로 걸어간다.

서두부터 몽환적인 분위기가 가득한 이 글은 나와 아들 규가 범상치 않게 만나고, 또 여행하면서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한다.

“우리는 언제나 불안한 시간 속에서 살지. 죽음은 삶처럼 흔하니까. 그게 자연이지.”(9회)

규는 양과 대화를 한다. 양은 규에게 배워서 아는 것이 아니라 저절로 알게 된 것을 이야기 한다. 양에 의하면 사람을 기르는 것은 양이다. 초원에서 얻은 풀을 먹고 사람에게 주어서 사람을 기른다는 것이다. 양은 제 말대로 사람을 기르기 위해 유목민의 익숙한 손에 해체되고 심장이 꺼내진다. 규는 저 양은 방금 나와 이야기하던 양인데, 하고 담담하게 말한다. 가젤이 순식간에 늑대에게 물어뜯기는 “찰나에 벌어진 생과 사의 치명적인 순간(6회)”을 목격했던, “나보다 몽골초원에 적응하는 것이 빠르(10회)”면서도 “그림자가 짧은 규의 발길은(18회)” 그래서 나보다 더 가볍게 황무지를 나아간다.

작가는 ‘나’라는 화자를 내세우면서도 그 영역 밖에서는 규의 시선으로 이야기를 들려준다. 규는 양과 말, 나무, 그리고 낙타, 바람과 대화를 한다. 그러면서 황무지에서 어렵게 찾아간 유목민의 게르에서는 제일 먼저 mp3 충전을 위해 전기 콘세트를 찾는다. 작가는 이처럼 환상과 현실을 뒤섞고 버물려서 이야기를 진행한다. 초원과 사막이라는 이국적인 배경과 몽환적인 묘사를 통해 그 경계를 더욱 모호하게 만들고, 환상은 오히려 구체적인 현실로 위치시킨다. 신기루는 호롱불을 보여주지만, 그 호롱불 안에는 딸 숙자를 서울 식모살이 보낸 벙어리 부부가 살고 있는 것처럼.

글의 도처에서 환상과 현실의 혼재와 불분명한 경계를 발견할 수 있다. 규를 향해 “바람 속에 손을 내밀고 기다리는(3)” 나는, 그러나 “언어의 바깥, 마음의 바깥에서 오로지 몸을 움직여 황무지를 건널 수 있기를 소망(17)”하기도 한다. 소금을 먹으러 찾아간다는 흑마와 말들의 수군거림을 뒤로하고 찾아 간 마을에서 만난 유목민은 안산 가죽공장에서 오년 동안 일하다 손가락이 잘린 적 있는 몽골인이다.

이쯤 되면 환상은 현실과 대별되는 상징적 장치가 아니라, 현실과 혼재하며, 동치관계를 이루는 문학적 장치가 된다. 정도상이라는 리얼리즘 소설가를 다시 보게 된다. 그러나 이것은

“나의 모든 도덕적·지적 존재를 관통하는 불굴의 소신은, 우리네 감각의 영역에 들어오는 것들은 무엇이건 다 자연에 속하며 아무리 예외적이라 해도 우리가 그 자의식을 가진 일부를 이루는 이 눈에 보이고 손에 만져지는 세계의 다른 모든 효과들과 본질에서는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 살아 있는 자들의 세계는 그 자체만으로도 진기하고 신비로운 일들로 가득하다. 그리고 이들 진기하고 신비로운 것들이 우리의 감정과 지성에 작용하는 방식들 또한 정녕 불가사의해서, 인생을 마술에 홀린 상태로 파악하더라도 크게 탓할 수 없을 정도다. 그렇다, 단순히 초자연적인 것에 매력을 느끼기에는 진기함에 대한 나의 의식이 너무나 확고하다. 초자연적인 것이란 (누가 어떻게 받아들이건) 결국은 제조된 품목이며,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죽은 자 및 산 자와 우리의 관계가 지닌 내밀한 섬세함에 대해 무감각한 정신들이 만들어낸 인공물이다. 그것은 우리의 가장 다정한 기억들에 대한 모독이요, 우리의 존엄을 해치는 일인 것이다."

는 조셉 콘래드를 인용하며

“콘래드를 인용하는 나의 의도 또한 작금의 팬터지 문학을 통째로 깎아내리려는 것이 아님은 더 말할 나위 없다. 더구나 오늘의 한국문학에서도 황석영의 [손님]에서부터 박민규의 [핑퐁]에 이르기까지 환상이나 초자연적 사건을 활용하여 도리어 콘래드가 말하는 "살아 있고 고통 받는 인간들의 세계"로 독자를 이끌어주는 훌륭한 소설들이 써지고 있는 터이다. 다만 팬터지 문학을 하건 다른 무엇을 하건 현실세계 자체의 진기함과 신비로움에 대한 콘래드의 도저한 존중심을 공유하는 작가들이 많이 나오기를 바란다.”

라고 말하는(백낙청, 소설속의 환상과 콘래드의 다짐, 창비주간논평, 2006.5) 백낙청의 고언에 닿아 있다.  

  

2. 리셋 그리고 리얼리즘

“단테의 신곡을 따라 여행하고 싶다. 다만 제13곡 겨울나무 숲은 피하고 싶다. 생을 리셋하련다.”

규의 유서는 리셋을 이야기 한다. 리셋. 신비로운 단추이다. 손가락 하나면 관계를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오바마 행정부 출범 후 미국 국무장관이 러시아 외무장관에게 리셋이라고 이름 붙인 버튼을 선물한 것이 화제에 오른 적이 있다. 그러나 둘이 함께 리셋버튼을 누른다고 미러 관계가 마술처럼 리셋되지 않는다는 것은 누구나가 알고 있다. ‘리셋 증후군’이란 말도 있다. 90년대 초, 일본에서 만들어졌다는 이 조어는 이처럼 현실생활에서 어려운 상황에 부딪혔을 때 모두 없애버리고 다시 시작하는 리셋이 가능하다고 착각하는 현상을 말한다.

나는 리셋을 원하는 “어두운 숲속에 갇힌 기분”(4)을 느끼는 규와 함께 초원으로, 사막으로, 환상 속으로 온다. “미술학원에서 석고 데생하고 있으면 그만 망치로 부숴버리고 싶은 마음이 꾸역꾸역 올라오는(26)” 규에게 “넘어지는 방법을 가르치지 않은 것을 후회하는(66)” ‘나’는 “사막에 있는 암각화를 삼천년 전 흉노의 암각화를 보고 세월을 견디는 그림을 느끼게 해주고(16)” 싶었던 것이다. 결국 리셋은 규가 아니라 ‘나’가 하고 있는 것이다. 그 리셋의 욕망이 환상과 현실을 동치율의 모습으로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많은 판타지 소설에서는 쉽게 리셋이 가능하고 그리고 성취한다. 개인사뿐 아니라 역사마저도 그렇게 하곤 한다. 그러나 정도상의 리셋은 그리 녹록하거나 간단하지가 않다. “소멸하는 아름다움(58)”을 생각하며, “시간이 내 기억을 모두 지워버리기를 간절히 원했다. 그리하여 백치 상태에서 새로 시작하기를(70)” 원했지만, 그와 동치율로 “총각과 연애한 과부”가 빼앗긴 핏덩이를 생각하며 매주 가족 찾기 프로그램에서 눈을 떼지 못 하는 여든 노모가 ‘나’에게는 있다. “꿈결같이 이루어진 규와의 여행”이었지만, 나는 “이 길의 끝에는 집이 있는 것(4)”을 잘 알고 있다. 나는 “어쩔 수 없는 것은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 왜 그랬는지 “나도 모르게 그 말이 떠오르고(45)” 만다. 환상과 현실의 경계는 사막에서 죽음과 삶의 경계처럼 모호하고 불명확하지만 결국 그 끝에는 어쩔 수 없는 것은 어쩔 수 없다는 잠재의식을 ‘나’는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이다.

나 돌아갈래, 라고 외치는 “이창동 형 만든 박하사탕의 세계관에 동의할 수 없다(앞의 인터뷰, 오마이뉴스)”던 소설가는 왜 환상을 통한 리셋을 시도하려고 했을까?        

그 아픔을 감히 짐작이나 할 수 있을 것 같지도 않다. 만약 내 자식이, 라는 상상의 단서만으로도 몸서리치게 끔찍하다. 연필로 눌러 썼으면 연필이나 제대로 잡을 수 있었을 것인가. 컴퓨터 자판을 두드려 썼으면 손가락에 경련이 나서 자판이 제대로 두드려졌을 것인가.

나는 어두운 숲을 찾아 밤하늘을 샅샅이 뒤진다. 그것은 규가, 그리고 ‘나’가 리셋을 시도하기 전의 시공간이다. 결국 ‘나’가 샅샅이 뒤지는 곳은 규가 들어간 신곡이기도 하지만, “겨우 열다섯 짜리의 입에서 나온 말”에 갈피를 못 잡고 허둥거렸던, “어두운 숲속에 갇힌 기분이야.”라는 말을 하고 들었을 때의 고통스런 현실이기도 하다. 그러나 생의 고비에서 고비를 건넌 이후에 그 숲속에는 별이 뜬다.

고비를 건너면서 드러나는 정도상의 자전적 이력들은 고통스럽기 그지없다. 그러면서도 그의 리얼리즘은 디스토피아에 경도되거나, 판타스틱에 온전히 잠식되지 않는다. 고통 속에서도 끈질기게 놓치지 않는 것, ‘희망’이 정도상의 세계에는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그것은 ‘나’의 입을 빌어 말하자면, “절망보다 더 나쁜 것은 터무니없는 희망이다.” 그래서 정도상의 희망은 낙타의 걸음으로 생의 고비를 넘어가는, 놓을 수 없는 희망이다. 결국 정도상이 리셋을 시도했다는 것은 내 착각이었다. 그는 부정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극복.    

형섭이 멀어지자 다시 어두운 숲을 찾아 밤하늘을 샅샅이 뒤졌다. 그러다 문득, 하늘의 서쪽에서 깊은 어둠의 공간을 발견했다. 그곳이 어두운 숲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어두운 숲을 한참 동안 응시하는데 불쑥 춤추는 별 하나가 나타났다.

규의 별이었다.    

3. 낙타 그리고 문학

나는 “짐을 가득지고 사막을 건너려는 낙타처럼 생을 건너려(19)” 한다. 무엇이 그토록 고집스레 “삶의 그림자는 짙고 짙어 발길이 무거운” 다리를 끌고 초원과 황무지를 건너게 하려는 걸까? 소설가에 의하면 그것은 별다른 것이 아니다. 실존이다. 그리고 실존은 결국 작가에게는 문학이다.

‘나’가 건너려는 황무지는 “어제와 다르지 않은 풍경이 지루하게 이어지는”, “자세히 보면 다르지만 크게 다르지 않은” 곳이다. 소설가는 “삶도 그와 마찬가지이다.”라고 단언한다. 그에게 삶이란 “크게 다르지 않은 날들의 풍경과 시간들로 채워져(18)”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곳은 “지루할 정도로 푸르게 펼쳐져 권태를 느끼게도 하지만 자세히 보면 온갖 살아있는 것들이 끊임없이 실존을 드러내며” “문명에 대해 어딴 풍자와 은유를 보여주는 곳”이다.

그 지루하고 권태로운 황무지에 갑자기 함박눈이 내린다. “기적처럼 느껴지는” 사막의 눈은, 그러나 역시 ‘자세히 보면 실존을 드러내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숨이 막혀 죽을 것 같다가도 그 순간이 지나면 또 살아지는 것이 아닌가.(7)”하고 소설가는 말한다.

소설가는 그곳에서 자신을 대면하기를 바라지 않으면서도 또한 대면하고 극복하기를 바란다. “나는, 행복해지고 싶어서” “낮에는 아파트 공사장에서 질통에다 벽돌이며 시멘트를 날랐고 밤에는 다락방에 엎드려 읽고 썼다.(46)” 그리고 “아비가 재미없는 소설을 쓰면서 빈과 천을 견뎌낸 것은 너와 수가 살아갈 세상이 지금보다는 조금이라도 나은 세상이기를 바랐기 때문이었다.(56)”라고 ‘나’는 말한다. 그러나 ‘나’는 옆구리에 절벽을 만들고 있었다.

‘나’와 규는 삼천년 전 흉노의 화가를 만난다. 그림을 완성하기 위해 화가는 언 바위를 자신의 체온으로 녹이다 뒤를 아들에게 부탁하고 식어간다. 꼭 그렇게 해야 했어, 규의 물음에 ‘나’는 “그게 작품을 대하는 작가의 자세”, “삼천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삶을 대하는 인간의 자세”라고 대답한다. 규에게 보여주려고 했던 “세월을 견디는 그림.” 그것은 동시에 ‘나’에 대한 극복, 자기 부정이기도 하다.        

“끊임없이 자신의 현재를 부정하면서 새로운 상상력으로 세계와 직면하지 못하면 상투성의 늪에 빠지기 마련(62)”이라는 ‘나’는 “생활과 작품과 상상력의 상투성에 사로잡혀” 높이기만 했던 “옆구리의 절벽”을 기어오른다.

문학이 구원이 되어야 할지, 혹은 그렇지 않아도 상관없는지는 논외로 하더라도, 상투성이 작가의 늪이 되고 만다는 말만은 장르문학이든 그렇지 않든, 리얼리즘이든 환상문학이든 새겨들을 만하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엄숙주의가 아니다. 혹시라도 리얼리즘을 대중문학이 아니라고는 못 할 것이다. 민중과 대중, 혹은 즉자 대자 존재를 가르는 점에 있어서는 몰라도, 최소한 엘리트주의, 순수문학이 아닌 점에서 만큼은 대중문학이다.

정도상에게 문학은 자기부정이다. 또한, “고비를 넘어서니 옆구리의 절벽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검은 손톱으로 기어올라 간신히 또 다른 고비에 도착했다. 생의 고비가 산맥처럼 깊고 길겠지만, 낙타의 걸음걸이로 머무르지 않고 가야만(70)” 하는 실존이다. 머무르지 않는 낙타는 유목민의 삶이기도 하다. ‘나’는 “결국 몸이든 마음이든 경계를 넘나들며 이동하는 게 유목민의 정신(68)”이라고 말한다. 들뢰즈 - 가리타가 말하는 노마디즘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탈영토성에서는 비슷한 내용을 보인다. 정도상은 “작가는 비체제적인 존재”라고 말한바 있다.(요산문학상 수상 인터뷰, 부산일보. ’08.10.16)

상투성에 대한 반성과 자기부정으로 나타나는 정도상의 유목민의 정신이 앞으로 어떻게 계속작품으로 발현될지가 기대된다.

4. 판타지와 리얼리즘

이 글을 읽으면서 많은 생각들이 스쳤다. 그 감동을 (나름대로는) 비평으로 추슬러보려고 이런 난삽한 글을 쓴다. 처음에는 마술적 리얼리즘, 혹은 환상적 리얼리즘이라고도 하는 일정 라틴아메리카 문학, 특히 ‘백년의 고독’의 가르시아 마르케스나 ‘죽음의 중지’의 주제 사라마구를 낙타의 텍스트에서 나타나는 ‘실체화된 환상’과 비교해보려고 했다. 하지만 이내 포기하고 말았다. 우선 역량이 안 되서 막연한 접점만 가지고 이야기하기에는 요령부득했다. 그리고 정도상의 소설을 텍스트 밖으로 끌고 나가기에도 너무 벅찼다. 어린나이에 자살한 장남의 이야기를, 자신 역시 가지고 있는 선천적인 부재를 문학적 극복으로 담아내는 절절함 앞에서 더는 어쩌고저쩌고 하기가 감당이 안 됐다.

다만, 글을 끝내면서 나를 비롯해서 다른 이들에게 문제를 하나 던져본다. 판타지, 혹은 환상이 ‘도피를 담당하는, 독립적인 미학적 구조’로만 있어야 할 것인가?

--------------------

정도상 선생의 낙타는 문학동네 네이버 카페에서 연재하고 있습니다. 연재 완결이 되었고요. 회원가입 없어도 읽으실 수 있습니다. 아마 곧 종이책으로 출간되면 읽기에 제한이 걸릴 것 같네요. 그리고 같은 데서 김훈 선생이 ‘공무도하’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가끔 질문답변 게시판에서 묘사가 잘 된 들이 어떤 게 있을까요, 같은 질문을 보곤 합니다. 김훈 선생의 글에서 다른 것은 몰라도(취향차라고 하더라도), 모국어를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에 대한 감탄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Comment ' 3

  • 작성자
    Lv.11 은걸
    작성일
    09.09.19 08:34
    No. 1

    감사히 읽었습니다!
    달려보겠습니다.

    모처럼 좋은 감상문이어서 행복~~~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1 은걸
    작성일
    09.09.19 08:35
    No. 2

    항몽이면 혹 그 항몽님^^

    건필하시길~~~~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56 댓잎소리
    작성일
    09.09.19 10:02
    No. 3

    그 항몽님 맞습니다.^^


    나이를 먹어갈수록, 피하고 싶은데서 도피하는 게 쉽지 않은 일이라 생각합니다. 그때 판타지가 독자를 부축해주는 것은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지거나 답답할 때에 잠깐 잊고 싶어서 무협소설을 떠올리면 책을 펴기도 전에 기분이 조금씩 풀리더라고요. 종교처럼 강력하지 않아서 금방 현실로 돌아오게 하지만요. 하여 판타지,혹은 환상이 '도피를 담당하는, 독립적인 미학적 구조'로만 있어서 독자를 따뜻하게 안아줘야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나를 잠깐이나마 도피하게 하는 황홀한 환상 소설도 찾는데 어렵습니다. 그래서 항몽님의 비평을 읽고 나서 정도상선생의 낙타가 좋은 작품일거라는, 그러나 손대기는 좀 거북스럽다는 생각입니다. 지금 쉬고 싶거든요.^^ 하여 항몽님의 차기작도 무협이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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