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명 : 오도엽
작품명 : 지겹도록 고마운 사람들아 (이소선, 여든의 기억)
출판사 : 후마니타스
전태일(全泰壹). 필자의 나이쯤 된다면 누구나 한번쯤은 고등학교 역사수업을 통해 배웠을 인물이다. 독재정권시절 속에서 경제성장을 위해 희생하던, 아니 희생되고 있던 노동자들의 인권을 위해 스스로 분신(焚身)한 인물이 전태일이었다. 교과서 속에서 설명하고 있는 그는 당시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불러 일으켰고, 1970년대 이후의 노동운동에 발화의 역할을 한 인물이었다. 하지만 그 뿐이었다. 그의 성장환경과 신념, 그리고 절망을 알기엔 당시의 필자는 너무나도 무관심했다. 지금도 전태일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그의 어머니가 들고 있는 영정사진 속의 그였다.
하지만 이 책, <지겹도록 고마운 사람들아>는 전태일에 대해 자세하게 알려주는 책이다. 아니 정확히는 그의 어머니, 사진 속 아들의 영정을 들고 오열하고 있는 어머니, 이소선의 이야기이다. 작가 ‘오도엽’은 우연히 전태일 기념사업회에 갔다가 주저앉아 꼬박 두 해 동안 이소선의 이야기를 받아 적었다고 한다. 그는 ‘전태일의 어머니’라는 이름으로 한 평생을 산 이소선의 일생을 기록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독자가 이 책을 읽는 동안만이라도 누구의 어머니나 투사가 아닌, 그저 ‘이소선’으로 그녀를 기억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이소선’은 어떤 사람일까? 그가 말하는 ‘이소선’은 책 속에서 수필과 같이 다가온다. 책을 펴서 처음 접하는 서장Prologue에서 필자를 맨 처음 반긴 것은 구어체였다. 편안하면서도 따뜻한 느낌이 나는 스토리텔링 형식의 이야기진행은 필자뿐만 아니라 다른 어떤 독자들에게도 책 속의 이야기에 집중할 수 있게 만드는 충분한 흡입력을 갖고 있다.
서장을 지나 이야기의 본문으로 들어가면 재미난 구성을 접할 수 있게 된다. 이 <지겹도록 고마운 사람들아>는 책 속의 이야기를 6부로 나누어 ‘이소선’의 일생을 말해주고 있다. 또한 각 부마다 제목을 붙여놓았는데 그 제목들은 그녀가 겪었던 삶의 모습과 놀랍게도 잘 맞아떨어진다. 각 부의 제목만을 보고도 그녀의 삶을 짐작할 수 있도록 독자를 위한 세심한 배려가 아닌가 싶다. 그리고 각 부 속에는 그녀가 겪은 삶들이 에피소드 형식으로 말해지고 있다. 그러나 이 에피소드에 해당하는 이야기들은 각기 독립적으로 포석되기보다는 전체의 구조를 이루는 하나의 유기적 요소일 뿐이다. 하나의 에피소드들이 여러 개 모여 커다란 기둥이 되어 그녀의 ‘삶’이라는 집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재미난 구성에 이어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책의 매력을 살펴볼 수 있다. 분명 글쓴이는 한명이건만 책 속에서는 4명의 인물이 이야기를 진행하고 있다.
첫 번째는 ‘이소선’ 본인이다. 그녀의 대화를 녹취해 쓴 글이고 그녀의 삶을 이야기하고 있는 만큼 그녀의 존재는 절대적이다. 그녀의 입을 통해 나온 이야기는 작가의 판단에 따라 재구성되기도 하고 여과 없이 글에 반영되기도 한다. 여과 없이 반영되어 구어체로 써진 그녀의 말들은 할머니가 옛이야기를 해주듯 편안하기만 하다. 이 글의 가장 큰 매력은 이 부분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두 번째는 작가가 제 3자의 입장에서 전체적인 글을 써내려가는 것이다. 작가인 ‘오도엽’은 역사가로서 ‘이소선’의 삶을 보려고 한 것이 아니다. 그저 할머니가 들려주는 옛이야기처럼 아늑하고 편안한 이야기를 글로 옮기려 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써내려간 글들은 깔끔하면서도 읽기 편하게 글을 전개해나가고 있다. 필요한 부분에서는 소설적 묘사도 감행했지만 담담하면서도 깔끔한 ‘소설가’로서의 그의 문체는 사실성과 가독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았다고 평가하고 싶다.
세 번째는 오도엽 자신의 감정을 모두 드러내며 이야기를 보여준 방식이다. 주로 ‘사랑방 야담’이라는 번외 편의 글들 속에서 이런 방식을 보여주었다. 그는 ‘이소선’의 일생을 알기 위해 2년 동안 그녀와 지내며 ‘엄마’라고 부를 정도로 가까워졌다. 그렇기 때문에 냉정하게 글을 쓰기 위한 자신의 머리와 이야기를 들을수록 그녀의 삶에 취해가는 가슴속에서 방황하고 걱정했다. 그런 자신의 머리와 가슴의 싸움을 통해 나온 것이 ‘사랑방 야담’이다. 작가는 ‘제 3자’의 입장으로 담담하게 전체적인 이야기를 진행하고 <사랑방 야담>을 통해 자신의 감정을 숨김없이 말하기로 타협을 한다. 그야말로 야담(野談)이라는 말과 어울리는 코너이고 또한 책의 저술에 있어서 ‘오도엽’의 진실성에 대해서 더 깊이 신뢰하게 되는 계기라 할 수 있겠다.
마지막으로는 그녀의 첫째 아들, 전태일의 입이다. <지겹도록 고마운 사람들아>의 전체적인 분량에서 전태일이 차지하는 분량은 고작 1/6 정도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는 이소선의 삶에 있어서 아주 큰 영향을 끼쳤고, 그녀의 삶에 방향을 정했으며, 그녀의 가슴에 한(恨)을 남긴 인물이기도 하다. 그는 본문을 통해서 혹은 <전태일 평전> <내 죽음을 헛되이 말라>등의 책에서 발췌된 글을 통해 자신의 생각과 신념, 당시 처절했던 노동현실 등을 말하고 있다. 필요한 상황에서 적절히 발췌된 글들은 그 상황이 독자에게 더 생생하게 다가오도록 만들어주고 잠시 생각할 시간을 갖게 한다.
“네 가슴으로 해를 쪼개어 세상으로 퍼지게 했다. 저 조각난 불꽃들이 온 고을을 밝힐 것이다.”
가난과의 싸움, 군부독재 정권과의 싸움, 배고픔과의 싸움....... ‘이소선’은 일생을 싸워오며 살았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그런 그녀의 일생이 담긴 <지겹도록 고마운 사람들아>에서는 ‘그녀의 투쟁은 싸움이 아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아들의 마지막 앞에서 아들에게 맹세한 어머니. 어릴 적부터 유달리 영민했고 마음씨 착했던 아들을 떠나보내며 어머니는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그녀가 군부독재에 맞서 싸우고 경찰을 보면 악착같이 달려들고 노동 시위에는 앞장 서 구호를 외친 이유는 다 전태일의 유지에 있음을 우리는 책에서 살펴볼 수 있다.
필자 또한 학교를 졸업하고 기업에 취직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필자가 기업에 취직하여 편하게 일을 할 수 있음은 모두 앞선 사람들의 투쟁과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책은 독자로 하여금 그들의 피와 노력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점을 주지시켜준다. 그렇지만 어떤 독자는 이 책이 투쟁과 관련된 내용을 담고 있다고 해서, 또 두께가 만만치 않다는 점에서 읽기 어렵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책은 소설이나 수필처럼 담담하고 읽기 쉬운 문체로 구성되어 있으며 두껍다고 느껴질 수 있는 책의 두께는 강력한 흡입력과 가독성으로 인해 큰 장애가 될 수 없을 것이다.
그녀는 말한다. 고맙다는 말, 다 못하고 헤어지고 떠나보낸 사람들 너무 많다. 그들 모두가 내 인생의 주인공들이다. 고맙다. 지겹도록 고맙고 또 고맙다. 한 사람의 일생이 담긴 책, <지겹도록 고마운 사람들아 (이소선, 여든의 기억)>. 우리는 남을 사랑할 줄 알고, 남에게 고마워하는 그녀의 일생을 들으면서 삶의 교훈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p.s
노동문제에 관해서는 알면서도 외면해온 경우가 많았는데...
제 자신이 약간 부끄러워졌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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