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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하는 소설

작성자
Lv.87 루루랄라라
작성
09.07.11 00:28
조회
4,877

일반 소설에 대한 감상글을 써도 되는 것 같군요. 요즈음 몇년 사이에 읽은 소설, 특히 추리소설 중심으로 괜찮았던 것들을 생각나는대로 두서 없이 쓰려고 합니다.

1)

작가명 : 메튜 펄

작품명 : 단테 클럽

출판사 : 황금가지

그 옛날 다빈치코드의 열풍으로 역사 관련된 소설들이 잘 나가던 시기에 나온 책이었던 것으로 어렴풋이 기억합니다. 당시에 그런 류의 책이 많이 번역됐고, 단테를 주제로 삼은 것만 해도 여러 종류 있었던 것 같은 희미한 기억이...

그때 구입한 대부분의 소설들은 친구에게 선물(?)해줘버리거나 중고서점에 팔아버렸는데, 이것은 앞으로도 아무에게도 주지 않을 겁니다. 저에게 선택받은 책이란 거죠.

등장인물들의 캐릭터가 각기 개성적이고 당시 분위기가 잘 살아있습니다.  아주 흥미진진하게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다빈치코드보다 훨씬 낫다고 자신합니다. 으음, 하지만 애당초 전 다빈치코드를 재미있다고 생각한 적이 없기 때문에... 이 방면의 베스트셀러를 선택하는 많은 사람들의 취향과 어긋나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아무튼 내용은 대략 이러합니다.

19세기 중엽의 미국, 남북전쟁이 끝난지 얼마 안 된 시기가 배경입니다. 단테의 [신곡]을 영어로 번역하기 위해 당대 유명 문학가들과 출판업자가 클럽을 결성하는데... 이즈음 보스턴에서 연쇄살인사건이 일어나고 클럽에서는 살해수법이 단테의 신곡 지옥편에 나오는 벌과 유사하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 뒤는 직접 읽어보시길^^

2)

작가명 : 덴도 신

작품명 : 대유괴

출판사 : media 2.0

이 책은 일본에서 옛날에 출판됐고 몇년 전에 한국에서도 영화화 됐기 때문에... 아는 사람은 다 아는 그런 책입니다.

부유한 노부인이 어설픈 유괴범들에게 유괴를 당하는데... 보살처럼 조그맣고 연약하고 상냥하게 생긴 팔십 넘은 할머니가 유괴범들을 자기 마음대로 휘두르는 게 상당히 유머러스합니다. 영화에서는 욕쟁이에 드센 할머니로 나온 것 같던데... 소설에선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여차할 땐 카리스마와 기백이 있긴 합니다만, 전반적으로 상냥하고 교양넘치는 우아한 할머니입니다.

악당(?)이랄만한 사람이 없고 폭력이나 살인이 나오지 않기 때문에 추리소설치고 드물게도 마음이 훈훈해집니다. 마지막 결말에 할머니의 진짜 마음이 드러나는데 아주 놀랍습니다.

3)

작가명 : 앤소니 버클리 콕스

작품명 : 독초콜릿 사건

출판사 : 동서문화사

이것도 옛날 고전에 속하므로, 아는 사람은 다 알 것입니다. 옛날옛적에 동서문화사에서 낸 추리소설 시리즈 중 하나입니다. 이건 대략 5~6년 전에 산 책인데... 요즘 인터넷 서점에서 35%나 할인해서 파네요. 본래도 라이트노벨 정도 가격이었는데.

아무튼, 아가사 크리스티의 추리소설에 나오는 어떤 추리소설작가가 하는 이야기 중에, 소설 속에서 사람을 한명 죽이고 추리가 그럭저럭 풀려 결말을 향해가는데 단어 개수를 세어보니 한참 모자라서 한명 더 죽여야했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그래서 그런지 대체로 추리소설에는 연쇄 살인범이 나오거나, 아니면 살인 수법이나 동기를 들키지 않으려고 증인을 뒤늦게 또 살해하거나 하는 식으로 2~4번의 살인이 나오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 소설은 특이하게도 소설 속의 시간 진행 동안에는 아무도 죽은 사람이 없습니다. 이미 벌어진 살인사건(독초콜릿을 먹고 죽은 부인)에 대해 추리클럽의 사람들이 매주 돌아가며 본인의 추리를 발표하는 내용입니다.

각 추리마다 새로운 사실이나 관점이 제시되고, 그것들 각각 다 가능성이 있는 추리입니다. 각 장마다 작은 반전이 이어지는 느낌이죠. 마지막 대단원은 놀랍습니다.

결말에 나오는 등장인물이 한 말로 미루어 짐작컨대, 작가는 어떤 하나의 물건에 대해 명탐정이 한가지 추리만 하는(그것도 그 추리가 꼭 들어맞는) 대부분의 추리소설에 의구심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런 형식으로 글을 쓴 것 같은데... 흥미진진합니다.

4)

작가명 : 마이 슈발, 펠 바르

작품명 : 웃는 경감

출판사 : 동서문화사

아! 이건 제가 정말 좋아하는 경찰 추리소설입니다. 경찰 추리소설 시리즈 중 가장 유명한 미국의 87분서 시리즈였던가요? 그것은 영 재미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마르틴 베크 시리즈는 정말 재미있습니다. 불행히도 그 후편들은 한국에 출판이 안 되고 있네요. 단권으로도 즐기기엔 무리 없습니다만...

스톡홀름의 비 내리는 밤, 시체가 가득 실린 버스.... 연락을 받고 나타난 살인과 주임 마르틴 베크가 그 안에서 부하 경찰을 발견하는 것으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추리과정이 흥미진진합니다. 진짜 경찰들이 하듯이 단서 하나하나를 열심히 쫓습니다.

주인공 마르틴 베크를 포함하여 등장하는 경찰들이 다들 캐릭터가 뚜렷하고 인간적인 매력이 있습니다. 글은 전체적으로 담백하면서도 따스한 느낌이 듭니다. 특히 기억나는 에피소드로는 중간에 마르틴 베크가 크리스마스 이브에 딸에게서 '웃는 경감'이라는 레코드 판을 선물로 받는데... 유쾌한 코믹송인데도 그는 그걸 듣고 웃지 못합니다. 아, 애환이 느껴지는 장면이죠.

5)

작가명 : 미야베 미유키

작품명 : 화차

출판사 : 시아출판사

미야베 미유키 여사의 책은 한국에도 꽤 많이 출판되었습니다. 가장 유명한 모방범은 개인적인 생각으론, 글이 뒤로가면갈수록 너무 질질 늘어지는 데다가 결말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아... 그다지 좋아하지 않구요.

제가 이 작가의 소설 중 가장 좋아하는 건 [화차]입니다. 미야베 미유키의 장기랄까... 사회 문제를 르포 기사처럼 담담하게 서술하면서 날카롭게 파고드는 사회파 추리소설입니다.

휴직한 형사가 조카의 실종된 약혼녀를 찾기 위해 조사를 하는데... 하나 둘 그녀의 과거가 밝혀지고 모순이 드러나면서 무서운 추리를 하게 됩니다. 사채, 신용불량, 개인정보 누출 등... 너무나 실생활과 가까운 소재라서 더 무시무시한 소설입니다.

6)

작가명 : 요코야마 히데오

작품명 : 제3의 시효

출판사 : 노블마인

요코야마 히데오는 주로 단편소설을 많이 쓰는 모양인지... 한국에 몇개 출판된 소설들 대부분이 단편집입니다. 그것도 경찰 소설 계열이죠. 작가가 경찰서에 출입하던 기자 출신이라고 합니다.

이 작가의 그런 비슷비슷해보이는 단편집 중에서 [제3의 시효]를 가장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경찰들이 하는 일을 보자면, 긴장감, 압박,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현대 직장인의 애환과도 통하는 데가 있기도 하고... 이 단편집에 실린 형사들의 추리가 극적인 데가 있어 읽으면서 즐겁기도 합니다.

인터넷 서점에서 책 내용 일부를 따오자면....

======================================

“우자키가 모든 걸 자백했다는군.”

갑자기 기요미의 몸이 오므라들었다. 그렇게 보였다.

얼굴에 경련이 일어난다. 눈도 깜박거리지 않는다. 몸이 덜덜 떨리기 시작한다.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는 듯 양팔로 자신의 몸을 꼭 감쌌다. 우자키에 대한 믿음과 의심. 그 두 가지 마음이 서로 충돌하고 있는 것이다.

죄수의 딜레마. 공범자가 있는 피의자에게 자백을 받아내기 위해 종종 사용되는 테크닉이다. 물론 이것은 정상적인 조사방법이 아니다. 구스미는 허위사실로 기요미를 딜레마에 빠뜨렸다.

자신은 공범자를 배신하지 않겠다고 굳게 마음먹고 있다. 그래서 상대도 결코 자신을 배신하지 않으리라 믿고 있다. 하지만 상대와 의사소통을 할 수 없다. 각자 다른 장소에 갇혀 있기 때문이다. 그러자 상대에 대한 의심이 생긴다. 아무리 지워버리려고 해도 의심은 점점 커진다. 혹시 하는 마음이 생기면 그것으로 끝이다. 의심은 한없이 증폭되어 모든 감정과 이성을 마비시킨다. 인간은 막다른 골목에 몰리면 자신 이외에는 믿을 수 없게 된다.

기요미의 상반신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눈과 눈썹을 끌어올리는가 싶더니 반듯했던 얼굴이 삽시간에 일그러졌다. 관자놀이에 퍼런 심줄이 드러났다. 콧방울이 벌름거렸다. 입술이 튀어나왔다. 잇몸이 드러났다.

다음 순간, 짐승의 신음소리가 흘러나왔다.

“제기랄…….”

두 손으로 책상을 내리쳤다. 두 번, 세 번, 네 번. 밤색 머리가 흐트러지면서 얼굴을 뒤덮었다.

“그 멍청한 녀석이……!”

구스미는 무표정한 얼굴로 기요미를 쳐다보고 있다. 자기 작품의 완성도를 확인하고 있는 눈빛이었다. 기요미가 벌겋게 상기된 얼굴을 들어올렸다. - p. 150~151

“자, 여기부터 읽어봐.”

사내가 손가락으로 글자를 가리켰다. 어른이라고는 아버지 이외에 동네 아저씨나 학교의 선생님밖에 몰랐기 때문에 눈앞에 있는 사내가 나쁜 짓을 강요하고 있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순순히 사내가 가리키는 곳을 읽었다.

“내, 일, 까, 지, 이, 천, 만, 엔, 을, 준, 비, 하, 라.”

글자를 읽는 데 바빠 무슨 뜻인지도 몰랐다. 이제 겨우 글자를 깨친 어린애다. 사내는 일부러 초등학교 1학년 어린이를 골랐던 게 분명하다. 1학년은 어린이 교통안전을 위해 노란 모자를 쓰고 있으므로 ‘도구’를 물색하는 데는 어려움이 없었을 것이다.

“잘 읽는구나. 다음은 여기야.”

이번에는 다른 종이를 내밀었다.

“노, 란, 리, 본, 이, 있, 는, 벤, 치, 에, 올, 려, 놔, 라.”

그 뒤로 열 장 정도의 종이를 읽었다. 녹음테이프가 돌아가고 있다는 것은 의식하지 못했다. 종이를 다 읽고 나자 사내는 야시로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고맙다. 정확히 10년 뒤에 여기로 오렴. 굉장한 선물을 줄 테니까. 그때까진 오늘 있었던 일을 아무한테도 얘기하면 안 돼.”

집까지 뛰어갔다. 신사에서 멀어지면서 두려움도 점차 희미해졌다. 칭찬을 받았을 때는 기분이 좋았던 것 같다. 낯선 어른과 이야기를 나누었다는 생각에 약간 흥분하기도 했다. 약속에 대한 기대감. 혼자만의 비밀을 지닌 것에 대한 설렘. 어린 가슴속에는 그런 감정들이 마구 뒤섞여 있었다. 다음날부터 신사 옆의 지름길은 피해 다녔다. 그곳을 지나가고 싶은 마음은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역시 마음 한구석에 뭔가 불길한 예감이 자리하고 있었던 것 같다. 백중날이 지났을 무렵이었다. 거실에서 방학숙제인 그림일기를 쓰고 있었다. 그때 텔레비전에서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내, 일, 까, 지, 이, 천, 만, 엔, 을, 준, 비, 하, 라.’- p. 242~244

==============================================

7)

작가명 : 제롬 K. 제롬

작품명 : 보트 위의 세 남자

출판사 : 문예출판사

옛날옛적 고리쩍 시절에... 빅토리아 여왕 시절에 나온 기행문입니다. 친한 친구 둘, 그리고 폭스테리어 한마리와 함께 템즈강을 보트를 타고 여행하면서 겪은 여러가지 사건들, 그리고 그와 관련 있는 일화들이 이어집니다.

유머러스한 책이지요. 제가 본 여행서적 중 가장 재미있었습니다. 그 옛날 책이... 교훈과 예술혼이 서린 고전도 아니면서 지금까지도 이 머나먼 한국에서까지 팔릴 정도라니 말이에요.

원문 일부를 발췌해보자면 이렇습니다.

========================================

나 역시 한때 상류 쪽에서 당황스러운 상황에 처했던 기억이 있다. 나는 젊은 숙녀 분(외가쪽으로 사촌)과 함께였고, 우리는 노를 저으며 고링 쪽으로 내려갔다. 좀 늦은 시각이었기 때문에 어서 빨리 가서 실내로 들어가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중략-

가지고 있던 지도를 꺼냈다. 다음 갑문인 월링포드까지는 1.5마일, 거기서 클리브까지는 5마일이 남아 있었다.

"됐습니다!"

나는 말했다.

"일곱시 전까지는 다음 갑문을 통과할 수 있을 거고, 그러고 나서 하나만 더 지나면 되니까요."

나는 자리에 앉아 열심히 노를 저었다.

우리는 다리를 지났다.  곧이어 나는 그녀에게 갑문이 보이는지 물었다. 그녀는 아니라고, 갑문은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나는 "오!"라고 말하고 다시 노를 저었다. 오분쯤 지나서 나는 그녀에게 다시 한번 보라고 했다.

"안 보여요."

그녀가 말했다.

"갑문은 나타날 기미도 안 보이는 걸요."

"당신, 그러니까 갑문이 뭔지는 아는 거죠?"

나는 조급한 마음에 이렇게 물었다. 그녀의 심기를 상하게 할 요량은 아니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그렇게 됐고 그녀는 나보고 직접 보라고 했다. 그래서 나는 노를 내려놓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황혼에 잠긴 강물이 우리 앞에 1마일 정도 쭉 펼쳐져 있었고, 갑문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길을 잃었다고 생각하시는 것은 아니죠, 설마?"

그녀가 물었다.

나는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한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녀에게 넌지시 암시한 바와 같이, 우리는 어쩌면 길을 잘못 들어 폭포 쪽으로 가고 있을지도 몰랐다.

이런 생각은 그녀에게 아무런 위로가 되지 못했고, 그녀는 울기 시작했다. 그녀는 우리 둘 다 익사할 거라고 했고, 그것은 그녀가 나와 함께 외출한 벌이라고 했다. 나는 벌치고는 너무 심하다고 생각했지만 사촌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고, 어서 빨리 모든 일이 끝나기만을 바랐다.

나는 그녀를 안심시키고 모든 상황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려고 애썼다. 나는 그녀에게, 사실 나는 내가 생각한 것보다 그렇게 빨리 노를 저은 게 아니었으며, 그러니 갑문은 조금 있다 나타날 거라고 말했다. 그리고 열심히 노를 저었다.

그러다가 나 자신도 조바심이 나기 시작했다. 나는 다시 한번 지도를 보았다. 벤슨 록 아래쪽 1.5마일 지점에, 월링포드 록이 분명하게 표시되어 있었다. 지도는 믿을만한 것이었다. 나는 그 갑문의 모습을 회상해보았다. 두번 정도 지나간 기억도 났다. 우린 도대체 어디있는 거지?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차츰 이 모든 게 꿈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지금 침대에서 잠을 자고 있고, 금방 잠이 깰 테고, 열시가 지났다는 소리를 듣게 되겠지 하는 생각을 했다.

나는 사촌에게 이것이 꿈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물었다. 그녀는 자기도 나에게 똑같은 질문을 하려는 참이었다고 대답했다. 그러고 나자 우리는, 우리 둘 다 잠을 자고 있는 건지가 궁금해졌다. 만약 그렇다면 꿈을 꾸는 것은 누구며, 꿈 속에 있는 건 누구일까 하는 점이 굉장히 흥미롭게 여겨졌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노를 젓고 있었고, 갑문은 여전히 보이지 않았으며, 밤의 그림자가 모여듦에 따라 강은 점점 더 음울하게 알 수 없게 변해갔다. 꼬마 요정, 여자 요정, 도깨비불, 밤새 바위에 앉아 사람들을 소용돌이 속으로 유혹한다는 사악한 소녀들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더 선량하게 살 걸, 찬송가를 더 많이 알아둘걸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바로 그때, 엉성하게 연주되는 콘서티나(손풍금의 일종)의 축복받은 선율로 <모든 것이 그분의 뜻>이 들려왔고, 우리는 우리가 구조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콘서티나의 음조를 숭앙하는 편이 아니다. 하지만 오! 그때 그 음악은 우리 둘 다에게 얼마나 아름다웠던지! 오르페우스의 목소리도 아폴로의 류트도, 아니 그 무엇도 그보다 더 아름다울 수는 없었다. 그 당시 우리 마음에, 천상의 멜로디는 오히려 고통만 가중시켰을 것이다. 정확하게 연주된, 영혼을 움직이는 하모니는 우리에게 모든 희망을 포기하라는 경고의 메시지밖에 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씨근거리는 아코디언이, 비자발적인 변주와 함께 간헐적으로 찢어질 듯 내지르는 <모든 것이 그분의 뜻>의 선율에는 오직 인간적이라고 할 수 있는, 우리의 마음을 위로하는 뭔가가 있었다. (p.127)

몽모렌시가 고양이를 발견하는 경우엔, 거리 전체에 그 사실을 모르는 이가 없게 된다. 점잖은 보통 사람이 조심조심 평생 동안 사용하고도 남을 사악한 언어가 10초만에 퍼부어진다.

나는 이 개를 탓하지 않는다. (대개는 그 녀석 머리를 주먹으로 치거나 녀석에게 돌멩이를 던지는 것으로 만족한다.) 그건 녀석의 천성이기 때문이다. 폭스테리어들은 다른 개보다 네 배는 많은 원죄를 지니고 세상에 태어났다. 우리 기독교인들이 폭스테리어의 난폭함을 봐줄만하게 교화하는 데는 몇년에 걸친 끈기 있는 노력이 필요하다.  

- 중략 -

앞서 말한 것처럼, 우리는 수영을 한판 해주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하이 스트리트 위쪽 반 정도 되는 지점에서 고양이 한마리가 저기 앞에 있는 집들 가운데 하나에서 뛰쳐나오더니 종종걸음으로 길을 건너기 시작했다. 몽모렌시는 기쁨의 환호성을 내지르고(자기 손에 넘겨진 적을 본 맹렬한 전사의 환호성, 스코틀랜드인들이 언덕 아래로 내려올 때 크롬웰이 내질렀을 것 같은 환호성이었다) 자신의 희생양을 향해 쏜살같이 달려갔다.

그에게 걸려든 것은 커다란 검은 수고양이였다.나는 그렇게 크고 흉하게 생긴 고양이는 본 적이 없다. 꼬리는 반쪽이 잘려나가고, 눈 한쪽은 상처를 입고, 코도 상당 부분 뭉개져 있었다. 하지만 몸집이 길고 근골이 다부졌으며 침착하고 여유로운 분위기를 풍겼다.

몽모렌시는 시속 20마일의 속도로 그 가엾은 고양이를 향해 달려갔지만 고양이는 서두르지 않았다. 아니 자신의 목숨이 위험하다는 생각도 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는 자신의 암살자가 될지도 모르는 녀석이 1마일 안에 접근할 때까지 조용히 자기 갈 길을 갈 뿐이었다. 그러더니 뒤를 돌아 도로 한가운데 앉아 "이런! 나에게 무슨 볼일이라도?" 하는 표정으로 조용히 몽모렌시를 쳐다보았다.

몽모렌시 배짱도 알아줄 만하다. 하지만 고양이의 표정에는 가장 대담한 개의 심장도 얼어붙게 할 만한 뭔가가 있었다. 그는 갑자기 제자리에 멈춰 서서 수고양이를 바라보았다.

아무도 말이 없었다. 하지만 상상할 수 있는 대화의 내용은 분명히 다음과 같았다.

그 고양이 : 뭘 좀 도와드릴까?

몽모렌시 : 아, 아니, 됐습니다.

그 고양이 : 뭐 원하는 게 있으면 주저하지 말고 얘기해보도록 하지.

몽모렌시 : (하이 스트리트 뒤로 물러나며) 아, 아니, 그런 거 없습니다. 신경쓰지 마세요. 호, 혹시, 제가 뭐 실수를 한 건 아니길 바랍니다. 아는 고양이인가 했거든요. 방해가 됐다면 죄송합니다.

그 고양이 : 그럴 리가 있나. 오히려 반가웠지. 정말 아무것도 원하는 게 없는 게 확실해?

몽모렌시 : (여전히 뒤로 물러나며) 네, 아무것도 없다니까요. 감사합니다. 아무것도 없어요. 정말 친절하시군요. 안녕히 가십시오.

그 고양이 : 그러지.

그리고 그 고양이는 일어나서 가던 길을 계속 갔다. 몽모렌시는 이른바 꼬리라고 부르는 것을 조심조심 살랑살랑 흔들면서 우리에게 되돌아오더니 중요하지 않은 저 뒤쪽에 자리를 잡았다.

당신이 만약 "고양이야!" 라고 몽모렌시에게 말하면, 그는 눈에 확 띄게 몸을 움츠리며 "제발 그러지 마세요"라고 말하는 듯한 애처로운 표정을 지어 보일 것이다. (p.183)


Comment ' 2

  • 작성자
    Lv.56 아자씨
    작성일
    09.07.11 01:11
    No. 1

    흠 단테클럽 보면서 졸았던 기억이 있군요. 다읽고 에베레스트 산을 정복한 기분이 들었죠.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예류향
    작성일
    09.07.11 18:05
    No. 2

    추리소설 좋아하는 편인데, 모두 재밌을 것 같네요. 읽어 봐야 겠네요. 추천 감사 ^^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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