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명 : 다자이 오사무
작품명 : 인간 실격 - 세계문학전집 103
출판사 : 민음사
발행일 : 2004년 5월 15일
고전이니 따로 표지글을 적지 않고 바로 감상글로 들어가겠습니다.
대학교 도서관을 구경하다가 뽑아서 읽게 되었습니다. 예전부터 읽으려고 찾고는 있었는데, '일본 소설' 서가에는 죄다 낡은 옛날 판본밖에 없어서 읽지 않고 있다가 '문학 전집' 서가에 세계문학전집으로 떡 하니 꽂혀있는것을 발견, 살짝 허탈했습니다.
왜 읽고 싶었느냐고 한다면 그야 뭐 당연하달까 '문학소녀와 죽고 싶은 광대'의 원작이란 것 때문이고, 왜 굳이 다른 권의 원작들은 찾아 읽지 않았으면서 이것은 읽게 되었느냐 하면 두깨도 얇거니와, 잠깐 훑어 볼 목적으로 펼쳐서 읽은 이 책의 '서문'이 너무나도 인상적으로 사람을 끌어당겼기 때문이라고 하겠습니다.
널리 인정받은 고전이기도 하거니와, 다자이의 문체 자체가 끊임없이 말을 늘어놓으며 사람을 끌어당기는 특성이 있고, 무엇보다 번역가가 고려대 일문과 교수이자 국문학 박사라는, 상상할 수 있는 거의 최고 권위의 손으로 이루어진 자연스러운 번역이 그야말로 '문장'을 읽는 맛이 나게 해 주었습니다.
생각해보면 내용과 상관 없이 '문장을 읽어나간다'라는 것 자체에서 이정도의 재미를 느껴 본 것이 얼마만인지 모르겠습니다. 진정 잘 쓴 문장이라면 그 내용이 무엇이든지 그것을 눈으로 쫒고, 뇌로 되세기는 것 자체가 즐거운 법인데, 제가 평소에 읽는 것들은 대게는 그런것은 별로 신경쓰지 않는 류이고, 서양권의 책은 아무리 번역을 잘 했다 하더라도 언어의 체계 자체가 다르다 보니 그런 '문장의 맛'을 느끼기에는 무리가 있을 수 밖에 없지요.
일단 읽은게 있기 때문에 '인간 실격'을 읽을때는 문학소녀 1권의 영향이 있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기에, 문학소녀의 '치아'가 그 '평범하지 않음'에 주목하여 개인의 고뇌를 극단화 시킨 캐릭터인 반면, 이 인간 실격이 다루는 주제는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며 섞이지 못하기에 인지할 수 있는 가식과 기만으로 가득찬 '세상'에 향해있다는 것이 살짝 당황스럽게 다가오기도 했습니다.
그보다 첫번째 수기의 첫머리, '부끄럼 많은 생애를 보냈습니다.'부터 이어지는 그의 진솔한 고백속에 담긴 굴곡 많은 인생과 그 속의 고뇌가 자연스레 다가와 그의 이야기에 절로 몰입하게 됩니다.
작품 해설에서 '이 작품이 다자이의 자가 해석적인 작품인 것은 맞지만, 이 작품의 모든것을 그의 진실로 받아들이는 것은 위험하다'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만, 적어도 이 책은 다자이 자신이 인식하고 있던 자신의 인생에 대해, 할 수 있는 한 진솔하게 써내려간 책이라 생각됩니다. 사실이야 어쨌든 그의 머리 속에서 그리고 있던 자신은 '요조'였을 것이고, 그가 입었던 상처와 했던 고뇌를 투영하는 과정에서, 요조의 결말은 작가 그 자신이 '이렇게 될 것이다'라고 쓸쓸이 되네이는 듯 해서 씁쓸한 감정이 남았습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절절한 장면이라 생각되는 것은 넙치가 요조를 불러내어 식사를 할때의 장면입니다. 그 장면은 거의 유일하다시피 요조가 '자신이 원하는 것'을 독백으로나마 명확하게 서술하는 장면입니다만, 그 원하는 것이 진솔하고 직설적인 몇 마디 말, 도무지 자신에 대해, 세상에 대해 생각할 수 없는 자신을 억지로라도 앞으로 떠밀어주는 그런 솔직한, 위선 없는 '질책'이란 것이, 그의 무력감이 어떤 종류의 것인지 알게 해주는 듯 했습니다.
'인간 실격' 외에 다자이 오사무의 '직소(원제는 '달려들어가 호소함'.. 이었을 겁니다.)'도 실려 있습니다. 옛 일본 문인이 썼다기에는 살짝 갸우뚱 할, 가롯 유다와 예수에 대한 작품입니다.
유다는 최근에 와서 오히려 조명을 받는 인물입니다만, 60년도 전에 다자이는 유다와 예수에 대한 재해석을 합니다. 너무나도 인간적으로 예수의 '아름다움'을 사랑하여 따랐기에, '천국'따윈 아무래도 좋았기에 인간의 질투와 시셈에 미쳐 예수를 팔아넘기고, 자신을 장사꾼으로 비하하며 예수를 팔아넘기게 되는 그 유다의 모습은 지금 와서도 꽤나 파격적이고 재밌는 해석이라 할 수 있습니다.
기실 종교적 재구성이 아닌, '인간 실격'과 공유하는 면이 있는 '순수에 대한 갈망'이 어떻게 망가지는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만...
그런데 이게 웃겼어요.
애증으로 들끓고, 종교적으로 과감한 이야기에 인간적 연민이 느껴집니다만, 문장이 너무나 웃기고 그의 몰골이 웃기고, 그의 행동 짓거리와 시선이 웃겨서 이 이야기를 읽는 내내 미소가 떠나지 않았습니다. 이거 진지한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다시 생각해도 웃겨서 글이 안나오네요.
하여간, 무겁고 진지하고 미칠것 같은 고뇌가 가득 들어찬 작품을 읽었고, 생각할 것도, 가슴에 와닿는 것도 많았습니다만, 그것과는 별개로 정말이지 이 책 한권이 '재밌었습니다'. 애초에 고전을 읽을때도 제가 사회적, 시대적 성격이 강한 한국쪽의 것들 보다는 일본쪽 사소설이 맞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긴 했는데, 그 외에도 다자이의 문장 자체가 마음에 들었다고 해야겠습니다.
그나저나 문학소녀 3권의 원작인 무샤노코지 사네아츠의 '우정'은 도무지 읽을 방법이 없군요. 아무리 검색해 봐도 한국에 번역된건 일본어 교재용으로 나온 한 권 뿐인 것 같고, 그것도 구하기가 애매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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