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명 : 안현일
작품명 : 죽어야 번다
출판사 : 파피루스
이 글의 특징은 작가가 주인공에 대해서 직접적인 서술을 하지 않는다는데 있습니다. 독자는 주인공이 어떤 사람인가에 대한 실마리를 그의 행동이나 주변인들과의 질답이나 반응, 혹은 주변인 서로간의 대화를 통해서 얻게됩니다.
독자는 끊임없이 주인공이 왜 저런 비상식적인 행동을 했을까에 대한 의문을 놓지 않아야만 실마리를 얻을 수 있고, 집중력을 잃어버리는 순간 주인공의 행보에 대한 이해도는 떨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당장 빵을 사야하는 돈을 허무하게 도박으로 잃어버리는 주인공에다가 뜬금없는 드래곤의 등장과 제의는 뭐하는 짓인지 작가의 자질을 의심케 만듭니다. 드래곤은 자신이 왜 그런 제안을 하는지에 대해서 설명을 하지만, 독자는 주인공이 그런 제안을 받을만한 인물인지에 대해서 충분한 이유를 듣지 못한 상태에서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이러한 전개를 제대로 납득하기 위해서는 주인공을 이해하려는 독자의 배려 또한 요구되는 측면이 있습니다.
사실 이 작가의 서술 행태는 요즘의 양판작가와는 그 방식이 아주 다르고 무모해 보이기도 합니다. 천재로 태어나 어마무시한 기연을 만나서 영웅행을 하는것도 아니고, 미남이거나 어리지도 않기에, 그리고 좋은 아빠나 남편도 되지 못한 실패한 인간이 주인공이기 때문입니다.
독자는 포스를 잃어버리고, 마누라한테 버림 받았으며, 생활력도 없어서 어린 자식을 방치하는 졸렬한 인간이 제대로 죽어서 돈이라도 남기려는 그 자취를 따라가야 하는 겁니다. 사실 이러한 구도가 마음에 들지 않고, 짜증난다면 고마 이책 덮어야 합니다. 작가는 독자가 원하는 혹은 알기쉬운 주인공을 내세운 것이 아니기에 주인공에 공감하지 못하는 독자는 답답함을 느낄 수 밖에 없습니다.
최소한 이 책은 대리만족을 원하는 독자에게 맞는 책이 아닙니다. 그러한 욕망을 만족시켜줄 의지도 없어보입니다.
4권까지 일독 해보고서야 알게 되는 것은 그저 자신만 보고 자기 안에 갇혀서 살았던 한 남자가 극적 요소를 접하고서야 진정한 자신의 가치를 찾아가고 주변 사람과 가족의 가치를 찾아가는 성장 드라마가 펼쳐지는 소설이라는 겁니다.
같이 수학하며 지내던 친구들을 통해서 주인공은 자신이 다른사람과 소통하는 것을 거부하고, 자기 잘난맛에 살았다는걸 깨닫습니다. 자신과 비슷한 사연을 가지고 자살과도 같은 상황에 몸을 내던지는 전우를 통해서, 자신이 죽으러 전쟁터에 온 현실에 의문을 가지게 됩니다. 자신이 방치한 딸과 아들을 통해서 스스로 얼마나 무책임한 인간인지 인식하게 됩니다. 죽어서 벌게 되는 돈은 그나마 그가 가진 양심의 발현입니다.
주인공은 한 순간에 변하지 않습니다.
잘나가던 주인공은 포스를 잃고 배신을 당하면서 삶의 의욕을 잃고 방황하며 민폐를 끼쳤고, 드래곤과의 거래를 통해서 죽어도 되는 이유를 얻게 됩니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에게 살가운 도움을 받게 되고, 잊고 지내던 친구를 통해서 그가 가치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느끼게 됩니다. 그러다가 비슷한 사람도 만나게 되고, 과거 비범했던 재능을 펼쳐보이자 대단한 성과를 일구어 냅니다. 전장의 극한 상황속에 던져져 죽음이 지척인 상황에서 그는 애초에 목적이었던 극적인 죽음보다도, 다수를 살리는 일을 택하게 되고, 거기서 심적 변화를 경험하게 됩니다. 작가는 그의 죽음에 전제 조건을 걸어둠으로써 그가 죽음과 삶의 경계에 섰을때 간단하게 결정지어 버리지 못하게 만들었습니다. 또한 그것이 극적 긴장감을 떨어뜨리지 않도록 하는 완충제 역할을 해내고 있습니다.
전쟁에 관한 부분은 단순히 주인공의 능력을 확연히 드러내고 극적 긴장감을 높이는 장치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드래곤이 선택할만 했던 사람이라는 설정에 힘을 실어주는 장을 마련하는 사건이기도 합니다. 또한 그냥 죽어 버리기에는 아까운 재능의 소유자라는 생각이 들게 만들죠. 거기에 더해서 그간 읽었던 어떤 전쟁 소설에서도 보지 못했던 잘짜여진 군영 정비 모습과 적전 교란 및 게릴라 전술 묘사에서는 작가가 가진 역량을 한껏 드러냈다고도 보여집니다. 3권 후반부와 4권 전체를 아우르는 전쟁준비와 전투 및 전술 운용, 심리전은 그 깊이가 남다른데가 있다고 봅니다.
작가가 7,8권 쯤엔 결말이 지어질 것이라고 밝힌바가 있지만, 이 소설에서 가장 염두에 두고 읽어야할 주인공의 내적 갈등과 변화는 정말 기대가 되는 부분입니다. 그리고 인간의 성장은 청소년이 자라 성인이 되면 종결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됩니다. 그가 어떻게 내적 성장을 이루어 좋은 친구, 좋은 아빠, 유능한 사회인으로 자리매김 할지는 지켜보아야 할 문제입니다. 그리고 어떠한 형태로 결말을 내게 될지도 큰 관심거리 입니다.
여기 저기 하는 말들 중에서 양판소 소설이 판/무 시장을 어지럽힌다고 말들이 많습니다. 이러한 가운데서 이만한 소설이 등장했다는 것에 대해서 독자로써 기쁜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든이에게 두루 사랑받았으면 좋으련만, 그 가치를 폄하하는 사람도 많더군요. 하지만 독자에게 그저 설명으로 모든걸 이야기하지 않고, 상황과 주변인과 사건으로 이해시키려하는 대단히 수준 높은 작품이라고 평하고 싶구요. 그렇게 공감하는 사람도 많기를 바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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