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명 : 너와같은꿈
작품명 : 같은꿈을꾸다
출판사 :
"오! 캡틴! 마이 캡틴!"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의 클라이 막스를 장식하는 대표적 문구입니다. 키팅 선생님을 마음 속으로 배웅하는 제자들의 외침이자 이 세상을 살아감에 있어 당신의 가르침을 마음에 새기고 이정표 삼아 살아가겠다는 서약 같은게 아니었나 생각해 봅니다.
이 글에 대한 감상문을 써 보고자 생각이 들었을때, 딱 이 영화가 떠올랐습니다. 난세에 의가 땅에 떨어진 상황에서 뜻있는 자들이 수한을 만나 감화되는 과정이 제자들이 키팅에 감화되어 가는 과정과 닮아 있어서 그렇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저는 이 글을 평하는 여러 댓글 중에서 좋게 보지 않는 단어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말빨'이라는 단어입니다. 저 단어 안에는 상대가 가진 언변의 근거를 그가 가진 학식에서 찾지 않고 단지 기술로써의 말재주로 폄하하려는 의도가 있지 않나 의심이 들기 때문입니다.
사실 편견이란 것이 사람의 눈을 가린다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는 상식입니다. 다만 많은 사람이 알지 못하는 사실은 편견의 벽을 깨기 위해서는 그것을 가려 볼줄 아는 지식에 기반한 성찰과 가려보려는 배려심이 요구된다는 겁니다.
내가 가진 비틀린 시선으로 인해 글에 대한 오해를 풀어놓게 되는 건 아닌가 하는 경계심도 들고 편견에 기반한 다른 독자의 오해가 있지 않을까 하는 우려입니다.
저에겐 이 소설을 접하면서 겪게 된 어려움이 하나 있었는데, 그건 바로 작가님이 서술하시는 고사성어와 한학, 그리고 삼국지에 문외한 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옳은 비유를 하시는지 적절한 인용인지에 대해 평을 할 수 없는 처지에 있었습니다. 다만 다행인것은 평소 책읽기를 그다지 소홀히 하지 않았기에 어렵사리 작가님의 해석을 쫓을 수 있다는 겁니다.
위의 이야기를 늘어놓은 이유는 이 소설엔 수많은 고사와 학문과 사상이 서술되는데 이를 단지 지식의 나열로만 이해한다면, 준경이 재사와 무장들을 영입하는데 있어서의 설득 과정을 지루하게 여길 수 밖에 없는 수순을 따르게 되기 때문입니다. 우선 여기서 하나 눈여겨 보아야 할 점이 있는데 그것은 각각의 무장들과 재사를 영입하는 과정에서 준경이 제시하는 고사나 경전들의 문장은 중복되는 것이 거의 없다는 겁니다.(아예 없을지도 모르나 하나하나 따져보지 않았기에 '거의'라는 말을 덧붙였습니다.) 준경이 일관되게 주장하는 사상은 매번 나옵니다만, 그를 뒷받침하는 사료에 있어서 만큼은 그때마다 새롭습니다.
그런 이유로 같은 과정의 반복이란 말은 마땅치 않습니다.
또한 앞으로도 각 제후들이 이합집산 하는 과정이 계속 이어질 터이고 이 삼국지라는 것이 그러한 가운데에서 벌어지는 여러 인간 군상들의 이해와 갈등과 협력과 모략이 주가 되는 이야기란 점에서 보았을 때 준경과 그를 따르는 사람들간의 상세한 논쟁 과정은 필수 불가결한 요소라는 것입니다. 논쟁 과정에서 제시되는 이론과 실증의 예시는 준경의 학문이 박하지 않음을 보여주었고, 그 시의 적절함이 그가 현명한 사람임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행동으로 실천을 보이면서 그들은 충성을 맹세하게 됩니다.
논증으로 그들의 몸이 움직이게 했고, 실천을 보임으로써 마음을 얻게되는 두 번의 과정은 작품상에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만큼 그 과정이 중요하다는 것을 작가는 나타내 보여주었다고 봅니다. 이것은 앞으로 이들 인물들이 중요 선택지에서 충성을 택하느냐 배신을 하느냐 하는 것의 가장 큰 근거가 될 것이고, 이 소설에 정당성을 부여해 줄 것입니다.
각 제후들과의 관계에서는 물론이고, 상대 진영의 재사나 장수들의 반응에 있어서 까지 그러한 과정의 연장선상에 있기때문에 작가는 단순한 설정이 아닌 설득력을 얻게 되었다고 평하고 싶습니다.
일례로 유비의 등장 시점에서부터 아니 그 이전부터 준경의 역할 모델이 혹 유비가 아니냐는 지적이 많았습니다만, 작가는 처음부터 그것에 염두를 두지 않을 수 없었는지, 유비 캐릭터의 설정에 많은 공을 들인 것으로 보여집니다. 원술에 대한 묘사는 다른이의 관점을 들어 설명한 부분이 많은 것에 반해, 유비에 대해서는 직접 관찰한 것과 언변, 그리고 행동을 자세하게 서술함으로써 준경과는 어떻게 다른지 독자가 느끼게끔 해주고 있습니다.
처음 수춘에서 유비가 등장했을땐 천운이 자신에게 있다는 대화를 묘사해서 혹시 준경을 띄우기 위해 유비를 폄하하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품게 했었지만, 형주에서 만난 유비는 오히려 제후로서의 매력적인 모습이 자세히 묘사되어 글을 읽는 저의 입장에서도 매우 끌렸습니다. 정말 인물들이 글속에서 살아 숨쉬고 있음을 느끼고 있습니다.
유비에 대한 실제 모습이 저럴지언데 조조와 원소 그리고 손책등은 어떠한 모습으로 묘사될지 기대도 됩니다. 그에 반해 준경의 모습은 그 언변도 언변이지만 낮은 자세로 실천하는 모습이 주변 인물들의 감화를 이끌어내는 것으로 묘사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차이점은 대단히 큰 것이라 생각되고 독자의 이해를 이끌어 내는데 상당한 공을 들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평범한 현대인이 삼국지의 세계로 투사되었을때 가장 자연스런 모습이 아닌가 나름 판단하고 있습니다. 왕후장상의 씨가 아니기에 제왕학을 공부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현실에서도 평범한 직장인의 삶을 살아왔던 이가 제왕의 풍모를 보이지 않고, 장군의 신위를 나타내지 않음은 오히려 자연스러워 보입니다.
준경이 좀 더 그들과 부대끼고 크고 작은 성취를 이루어 가다보면 아주 자연스럽게 제왕의 모습을 보이게 될 것이고, 그렇게 변해가는 모습을 어찌 묘사해 주실지에 대해서도 기대가 큼니다.
준경이 글 속에서 두어번 언급하기를 자신이 개입하여 상황이 달라졌음에도 불구하고 형세 변화가 삼국지에서의 형세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했습니다. 그것으로 보아 작품속에서 이야기가 극적 변화를 일으키진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또한 준경측의 형세 변화에 맞추어 상대 진영의 형세도 어느 정도는 균형을 맞추어 가리라 생각해 봅니다. 따라서 독자가 작가의 담론을 가볍게 여긴다면 이 소설이 주는 재미가 반감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갖게 됩니다. 어짜피 큰 틀의 흐름이나 분쟁은 기존의 삼국지와 그닥 다르지 않을것이기 때문이지요.
그러한 이유로 빠른 전개나 자세한 논담을 걸러내기를 원한다면 그건 작가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한 때문일 것이란 추측을 하게 됩니다. 딱히 그런식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지 않을 뿐 아니라, 이 작품의 매력은 그러한 깊은 서술에서 연유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개인적인 관점입니다만, 작가 스스로도 그러한 논담을 즐기는 듯이 보이고 이러한 연재란을 통해서 그런 욕구를 발산하고 있다고 보이거든요.
사실 저는 삼국지를 그닥 좋아하지 않습니다. 어릴적 집에서 소설 전집을 구입한 적이 있었습니다. 거기에 부록으로 나관중의 삼국지가 딸려와서 읽었는데 너무 재미 없었습니다. 적벽대전 즈음까지 읽고는 더이상 손대지 않았고, 그 이후 여러 번의 기회가 있었지만 나랑 맞지 않다고 생각해서 포기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접한 '너와같은꿈'님의 삼국지는 매우 흥미롭고 재밌습니다. 어려운 고사가 많이 나오지만 작가님의 풀이도 너무 와닿고 상황에 부합된다 여기기에 이해도도 높구요. 그저 지적 허영심을 만족시키는 것이 될지는 몰라도 뭔가 배운것 같은 생각도 들고요. 설레발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이 소설이 완성이 되고 제대로 출판만 된다면 이문열의 삼국지 못지않은 반응이 있지 않을까하는 기대도 갖게됩니다.
실제 출판되고 많이 팔려서 부를 쟁취하신다면 독자된 입장에서 매우 뿌듯하게 여기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솔직히 글을 읽는 모든 시간이 지루하지 않았던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창을 띄워놓고 이리 기웃 저리 기웃 하다가 와서 다시 읽고 그랬습니다. 그래도 읽고 나면 다음편을 넘겨다 보지 않을 수 없는 마력이 숨어 있습니다.
이 소설을 읽다보면 어릴적에 만나보지 못했던, 역사를 재밌게 풀이해서 가르쳐 주시는 선생님을 모신듯한 생각도 듭니다. 준경이란 선생님께서 삼국지는 이래서 재밌는 것이고, 고사란 이렇게 많은 선경험을 하게 해주며, 철학이란 이렇게 풀어서 적용해야 하는 것이라는 본을 보여 주시는 것같습니다. 이러니 어찌 아니 찾아볼 수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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