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명 : 이재일
작품명 : 쟁선계
출판사 : 시공사(드래곤북스)
쟁선계는 제가 최고의 한국무협으로 꼽기를 주저하지 않는 작품입니다. 비록 미완결이고 출판 주기가 매우 길어 작가에게 원망도 많이 하고 있으나 그것과는 별도로 작품 자체로 보면 더할 나위없이 훌륭한 작품입니다.
그 단적인 이유를 한 가지 들고 싶습니다.
요즘 난무하는 수십, 수백의 장르소설.
읽을 때는 재미있습니다.(물론 그 재미있는 작품도 요즘에는 별로 없더군요) 그런데 다 읽고 나면 전 주인공 이름조차 기억이 나지 않더군요. 그러니 주인공을 제외한 다른 등장 인물들은 잘 기억도 나질 않습니다.
요즘 장르소설의 주된 특징 한 가지는, 철저하게 주인공 위주의 이야기를 펼친다는데 있습니다. 복선이라고 해봐야 보잘 것 없는, 아주 조악한 것들에 불과하고 사건 전개는 대부분 단순합니다. 그렇다 보니 주인공 이외의 등장인물, 즉 조연의 활약 기회가 적고 모든 것이 주인공에게만 초점이 맞춰지는 것이 됩니다.
반면 쟁선계의 경우에는 주인공 석대원의 비중이 작품에서 그리 크지 않습니다. 한 권에서 석대원이 차지하는 종잇수는 1/3을 넘지 못하죠. 때문에 쟁선계를 꺼려하는 사람들은 이 점을 지적합니다. '대체 주인공이 석대원이냐? 아니면 제갈휘냐 그도 아니면 석대문이냐?' 하고 말입니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쟁선계는 사건 구도가 복잡해 지면서도 흥미롭습니다. A라는 사건과 B라는 사건이 서로 다른 지역 다른 때에 일어나지만 다른 C라는 사건을 쫓다 보면 그 안에는 A와 B가 녹아 있습니다. 읽다보면 절로 탄성을 내지르게 됩니다. 그렇다 보니 자연 주인공 외의 등장인물들이 부각될 수 밖에 없고 그들을 기억하게 됩니다.
또한 작가 이재일읠 경탄할 만한 필력도 이에 한 몫합니다. 이재일은 조연들을 너무나 개성있게 그려냅니다.
주연이 아닌 조연에 대한 묘사와 설명을 이렇게 기가 막히게 한 작품은 김용의 사조영웅전, 신조협려, 의천도룡기 등을 제외하곤 처음 봤습니다.
신주소가의 소철, 도정, 구양현, 무양문의 서문숭, 제갈휘, 좌응, 마석산, 비각의 이명, 문강, 연벽제, 석가장의 석대문, 개방의 우근부터 출연 비중이 극히 적은 무당파의 현학, 현유, 소림의 광비, 망아, 도사인 한운자, 매불 등등...
등장인물 개개인의 개성이 너무나 잘 살아 있기에 읽다보면 그들의 이야기가 더 궁금해질 때가 많더군요.
쟁선계는 마무리만 잘 지으면 분명히 한국무협사를 논 할 때 절대 빠지지 않는 최고의 작품이 될 것입니다.
마무리만... 잘 짓는다면 말입니다.
Comment '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