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명 : 자청
작품명 : 시공천마
출판사 : 청어람
0.
<시공천마>는 어찌 보면 황당한 아이디어에 의존한 이계진입물로 생각될 수도 있는 글이다. 미래의 문명을 고스란히 지닌 채 명대 중국에 떨어진 특수부대 출신의 주인공, 모든 정보를 수집 및 분석할 수 있는데다가 어느 정도의 자체 판단마저 가능한 수준의 슈퍼 컴퓨터, 그리고 그러한 주인공에게 계속 놀라는 무협 세계의 인물들.
굳이 말하자면, 주인공은 그야말로 못 하는 것이 없으며 허무맹랑할 정도로 강력한, 쉽게 말하면 먼치킨이고, 어렵게 말하면 신을 흉내낼 정도의 초인이다.
이쯤 되면 한 번 쯤은 의심해봐야 하지 않는가? <시공천마>가 과연 제대로 된 소설인지, 아니면 완벽에 가까운 주인공을 내세우는 졸작인지를 말이다.
미리 결론부터 말하면, 소설로서의 가치를 논하라 하면 윗줄에 놓기는 차마 꺼려지는 글이다. 하지만 뛰어난 글이라 할 수는 없어도 독특한 글이라 할 수는 있다.
그에 대한 감상과 지극히 주관적인 평을 늘어놓으려 한다.
1.
<시공천마>는 2165년의 미래 지구에서 시작된다. 이 2165년이 어떤 시기인가 하면, 2150년에 발발한 기계와 인간의 전쟁으로부터 15년이 지난 시기다. 이미 인류의 대부분이 멸망하고, 소수만이 살아남아 기계와 전쟁을 이어나가는 시기.
주인공 이환은 그렇게 암울한 미래에서 살다 시공을 전이하여 약 800년 전의 중국에 떨어졌다. 시공을 초월했음을 인지한 주인공이 과연 무엇을 생각할까?
우리는 지금까지 과거로 이동한 현대인(또는 미래인)이 과거를 바꾸고자 하는, 흔히 말하는 '대체 역사물'을 심심찮게 접할 수 있었다. 그러한 글에서, 주인공들은 보통 문명을 일찍 전파하거나, 서양의 침략 세력에 흔들리지 않는 동양(또는 과거의 한반도)을 만들어내고자 하였다.
현실에 불만을 가진 주인공이 개혁을 외친다- 라는, 일반적 소설적 인물론에 부합되는 행동이기 때문에, 현재의 동양(또는 한반도나 조국)에 불만을 가진 주인공이 과거를 바꾸어 부강한 현대로 탈바꿈시키는 것은 지극히 명쾌한 결론이었다.
하지만 <시공천마>는 주인공이 현실을 개혁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음을 시사한다. 어차피 기계가 지구를 뒤덮으리라는 사실은 과거를 아무리 바꾸어도 어찌할 수 없는 것임을 알기 때문에, 결국 주인공은 아주 소박한 꿈을 꾸게 된다. '지쳤다. 이대로 평화롭게 늙어 죽자'라고.
소설적인 면에서 볼 때, 굉장히 치밀한 동기 부여라 할 수 있다. 또한 이 설정은 이후에 '어째서 신이 인세에 강림했는가'에 대한 대답도 된다. 독창적인 설정은 결코 아니나, 이 흔한 설정이 이후의 주인공의 심리에 미친 영향과 맞물려 독창적으로 보이게 하고 있다.
2.
<시공천마>의 주인공은 사건을 일으키고자하는 동기가 없다. 그는 '평화롭게 살다가 늙어 죽는 것'을 추구하고 있으며, 평화롭게 살기 위해 사람들과의 접촉을 피하고 분란의 발생을 막기 위해 노력한다. 다시 말하면, '현재의 평화로운 상태'를 유지하고자 하는 의지가 주인공의 행동력의 원천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시공천마>의 주인공에게 있어서, 현실은 개혁해야 하는 것이 아니다. 현실이야말로 자신이 가장 추구하는 것이며, 그것은 '바뀌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조금 더 소설적인 입장에서 말하면, 현실은 계속 바뀌려고 하며, 주인공은 그런 현실이 불만스럽기 때문에 바뀌지 않게 개혁하고자 하는 것이다. 현실이 불만스럽기 때문에 바꾸고자 한다- 라는 일반적인 소설적 인물론에서 조금 비틀려 있기는 하나, 엄밀히 말해 소설적인 구조에 충실하다고 할 수 있다.
3.
<시공천마>의 주인공은 바로 그러하기 때문에 노력해야 한다. 자꾸 바뀌려는 현실을 붙들어 두기 위해서. 그걸 위해 강해져야 하며, 또한 자신을 감추려고 한다. 신을 사칭하여 경외를 받는 것은 물론이고, 추종자들과 거리를 두어 경외심을 유지시키고자 한다. 외부인의 유입을 막고, 유입된 외부인은 유출되지 못하게 막는다.
이 모든 행위의 원천은 '자신의 평화'를 위해서다. 지독히 이기적이며, 독선적이다. 그러나 여전히 주인공은 말한다. 지쳤다, 그러니 쉬고 싶다. 이대로 평화롭게 살다가 늙고 싶다- 라고.
그러나 그의 평화는 쉽게 유지되지 않는다. 주인공이 속한 장가촌은 엄연히 사람 사는 마을이기에 외부인의 출입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수많은 사람이 들어오고 나가며 벌이는 사건, 그리고 신의 존재에 대한 외부인의 시각, 그러한 것들에서 주인공이 추구하는 평화는 바람 앞의 등불과도 같은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주인공의 이상을 방해하는 뒤틀리고 부조리한 현실이다. 바뀌지 말아야 하는데 자꾸 바뀌어 주인공의 평화로운 휴식을 방해한다.
소설적인 구조가 또다시 뒤틀려 있다. 현실을 개혁하고자 움직이는 주인공을 그려내는 것이 소설인데, <시공천마>는 움직이지 않으려는 주인공을 향해 현실이 달려들어 소설적으로 내용을 전개시킨다.
뒤틀려 있다. 그러나 뒤틀림으로써 정상적인 구조를 이루었다. 참으로 어처구니 없으면서도 감탄할 만한 일이다. 현실 개혁을 부정하는 주인공을 내세운 소설이 정상적으로 흘러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진행되어야 하는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하겠다.
4.
구조적으로 아무리 교묘하게 정리되어 있다 하더라도, <시공천마>는 엄밀히 말하여 '허무맹랑한 글'이다. 좋은 의미가 아니라, 그 반대의 의미로 말이다.
자신의 100배의 속도로 움직이는 허상을 상대하는 주인공을 보며 인간이라는 생물의 반사신경의 신호 전달 속도와 근육이 물리적으로 움직이는 속도를 떠올리는 것은 잘못된 일일까? 전기라고 하는 전자의 이동 현상을 '기(氣)'로서 흡수하여 환골탈태를 이룬다는 것은 또한 어떠한가? 진법으로 감춰진 지형을 인공위성으로도 찾아내지 못하는 것도 역시 허무맹랑하기 짝이 없다.
그러나 저런 어처구니 없는 소재들이 그리 큰 흠이 되지 않는 것은 역시 <시공천마>가 과학적 근거를 내세우지 않는, 지극히 가벼운 글이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소재의 흠보다는 글의 구조와 전개의 탁월함이 더 크게 비춰지기 때문이기도 하다.
5.
<시공천마>는 '퓨전 무협'이라 소개되어 있다. 이 글은 단순히 무협으로 바라보기엔 너무나 황당하고 어처구니가 없는 글이다. 배경과 사건은 무협, 인물과 소재는 SF, 저자가 내용을 전개시키는 감각은 판타지에 가깝다. 그야말로 '퓨전'이라는 말이 잘 어울리는 글이 아닐 수 없다.
감각적으로 훌륭한 글이기에 조금은 아쉽고 두렵기도 하다. 주인공이 추구하는 것이 바뀌고 글의 구조가 일반적인 소설의 것으로 돌아갈 경우, 역설이기에 오히려 정상임을 외치는 <시공천마>의 장점이 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주인공은 신을 사칭하고 있으나, 그 이면에서는 자신이 인간임을 되뇌고 있다. 어쩌면 이는 암시일 수 있겠다- 라고 여겨진다. 그렇기에 이 불안이 더 커지는 것이다. <시공천마>가 가진 장점이 사라지면 흔해 빠진 이계 진입물로 전락할 수 있기 때문에.
본인의 우려가 기우이기를, 이후에도 <시공천마>가 여전히 재미있기를 희망해 본다. 저자가 준비한 이후의 이야기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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