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박현님을 좋아한다.
따라서 나는 박현님의 무림문파를 좋아한다.
결과적으로 나는 박현님의 두번째 작품인 하오배 추룡도 좋아한다.
나는 그렇게..
달리는 용(趨龍)에 매료되었다.
박현님은 무림문파에서 간간히 이지환의 일생을 회상하곤 하셨다.
그리고 하오배 추룡에서도 나는 추룡의 일생회상을 엿볼 수 있었다.
'과거'라는 키워드는 어찌보면 지루하고 재미없어질 수도 있는 단어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나는 무리없이 무림문파나 하오배 추룡을 읽을 수 있었다.
그것은 박현님의 글이 가지고 있는 하나의 매력으로 보아도 무방하리라.
하오배 추룡은 결코 선하거나 정의로운 인물이라고 말할 수 없다.
그러나 나는 선하고 정의로운 인물을 좋아한다.
따라서 나는 진즉에 이 소설을 덮었어야만 옳았다.
그런데 나는 왜 아직도 달리는 용의 앞에서 방황하고 있는 것일까?
그리고 왜 아직도 '자유롭게 살고싶다.'는 추룡의 말을 가슴속 깊이 새기고 있는걸까?
그것이 내가 박현님의 글을 좋아해서든,
내가 선망하는 인물상이 어느에선가 바뀌어서 그런 것이던간에,
나는 더 이상 생각치 않기로 했다.
추룡은 참으로 답답하다.
내가 남자라서 그런 것인지 몰라도, 아내에게 잡혀사는.. 그 공처가의 길이 한심해 보인다.
어떤때는 '남편의 카리스마(?)를 란란에게 좀 보여주어라! 이 머저리(?)야!' 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은 이루어질 수 없다.
나는 독자이지, 작가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그 모습이 보기 싫은것이냐?
그것이 또 그런게 아니다.
둘이 티격태격하면서도, 둘이 웬수처럼 싸우면서도,
서로를 사랑하여 (둘은 극구 부인하겠지만.) 것을 보면..
나도 모르게 가슴이 따뜻하게 데워지기 때문이다.
추룡의 독기는 가슴 떨리다.
될 성 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 라는 말이 나의 가슴에 푸욱 꽂힌다.
타소설의 주인공처럼 무공이 강하지는 않지만, 누구에게도 지지않으려는 패기.
그리고 무모해보이는 만용. 가끔은 여자를 위해서 몸을 바치는 행동.
그 모든게 어우러져 하오배의 추룡을 만든다.
추룡은 도데체 미워할 수 없는 자다.
이지환과 다르게 너무나 이상하게도 약점이 많은 하오배 추룡이지만..
이지환과는 다른 의미로 너무나 사랑스러운 그가 난 좋다.
영웅은 아니지만 스스로의 의지를 가지고 살아가는 자.
군자는 아니지만 스스로의 신념을 가지고 살아가는 자.
무공은 아직까지 영 아니지만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 자.
나는 그렇게..
달리는 용(趨龍)에 매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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