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소설을 읽으며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더라"는 말이 피부에 와닿는 경우가 간혹 있다.
물론 사람마다 작품을 고르는 취향이 다르고 작품에 대한 기대치가 각각 다른데서 기인하는 문제겠지만, 작품과 독자의 궁합만으로 치부하기에 곤란한 '어떤' 문제점이 해당 작품 속에 분명 내포돼 있을 것이라는 것이 본인의 변함없는 생각이다. 단지 독자가 그것을 참아줄 만 하냐 그렇지 못하느냐의 문제일 뿐...
최후식의 '표류공주'는 이미 여러 독자들에게 '명작'으로 정평이 나 있는 소설이다.
그러한 독자들에게 몰매맞을 위험을 감수하고 이제부터 내가 표류공주를 읽으며 느꼈던 솔직한 감정들을 술회해 보려고 한다.
작품을 읽기 전 표류공주에 대해 가지고 있던 내 사전정보는 우선 감동적이고 재미있으며 로맨스가 아름다운 소설이라는 것, 그리고 몇몇 독자들이 '내 생애 가장 훌륭한 무협'이라 극찬을 아끼지 않을만큼 '뭔가가 있는' 작품이라는 정도였다.
그러나 막상 눈앞에 펼쳐진 작품의 알맹이는 너무 실망스러웠고 오히려 "이 작품이 이 정도일리 없는데..."하는 의아함마저 느끼게 해 줬다.
눈길을 사로잡는 흥미진진한 스토리도, 읽는이의 가슴을 저미는 애절한 러브스토리도(이 부분은 일부 반론이 예상된다), 복마전처럼 얽힌 사건전개가 주는 긴장감도, 주인공의 무위를 통한 통쾌함도 느낄 수 없었고, 오히려 어설픈 대사와 연기가 난무하는 한 편의 삼류영화를 본 뒤 느낄 수 있을법한 답답함과 지루함만을 가득 안겨줬다. (거듭 밝히지만 지극히 개인적인 독후감이다)
대체 표류공주의 어떤 부분들이 나에게 이런 혹평을 내리게끔 만들었을까.
1. 끝없이 되풀이되는 주인공의 고난에 대한 짜증
주인공 모진위는 얼굴도 흉측하게 생긴데다 다리도 휘었고 시각 청각 후각이 일반인에 비해 훨씬 떨어지는 장애인이다. 게다가 몸도 건강하지 못해 언제 죽을지 모르는 고질병을 항상 몸에 달고 살아간다.
여기서 독자는 앞으로 닥칠 주인공의 시련을 예감하고 지금은 미운오리새끼지만 그 모든 고난을 헤치고 아름다운 백조로 거듭날 주인공을 기대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면 표류공주의 모진위는 작품이 끝나는 그 순간까지 '그 모양 그 꼴'이다.
새로운 무공을 익혀도 좀처럼 강해지지 못하고 언제나 적에게 밀리기 일쑤고, 몸이 좀 건강해지는가 싶으면 어느순간 또 건강이 악화돼 곧 죽을 것 처럼 사경을 헤매 독자의 마음을 무겁게 한다.
작품의 종반부까지 주인공이 끝없이 무공수련을 되풀이하는 부분도 짜증스럽긴 마찬가지다. 무공수련을 마쳤을 때 주인공이 강해지는 것도 아니다. 적과 만나면 여전히 깨지고 목숨이 경각에 달한다. 이런 측면에서 표류공주는 차라리 무협소설보다는 '고행소설', '구도소설'로 평가하면 보다 후한 점수를 줄 수 있을것 같다.
2. 비정상적인 인물들의 심리 설정이 주는 작위성
주인공에게 "나를 위한다면 비수로 목을 찔러 자결해달라"고 천연덕스럽게 요구하는 정혼녀 장여진이 왜 그렇게 악녀가 됐는지, 죽마고우 목선민이 왜 모진위를 배신하고 그의 연인인 채경량을 취했다가 버리는지, 그의 스승이기도 한 혈귀는 왜 그렇게 모진위를 죽여 없애려고 기를 쓰는지, 채경량은 왜 스스로 눈을 뽑고 코를 주저앉게 만드는 자해를 했는지, 또 그렇게 된 뒤 거리의 모든 건달들에게 몸을 허락하는 창녀가 됐는지, 모진위가 왜 시골마을에서 똥이나 치고 주민들의 시신을 수습하는 머슴으로 살아가는지...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다. 아니 대략 이유는 짐작이 가지만 그런 설정에 공감할 수 없다는 말이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특히 이 작품을 높게 평가하게 만든 부분으로 보이는 주인공 모진위와 채경량의 러브스토리는 지나치게 작위적이다.
자기의 죄업을 씻기 위해 채경량에게 헌신하는 모진위, 그런 그의 헌신적인 희생에 마음이 끌리는 채경량이라는 설정일텐데... 그 중간에 채경량이 목선민을 보고 마음 끌려할 정도로 모진위에 대한 사랑이 뿌리깊지 않았던 점을 감안하면 그 이후 그가 원수라는 사실을 안 뒤에도 그를 더더욱 사랑하게 됐다는 설정은 비현실적일 수 밖에 없다. 라스트신의 일월병승 부분이 그다지 감동적이지 않고 작위적으로 느껴졌던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3. 재미없는 스토리와 주제의식의 모호함
읽는 동안 재미있는 소설이 있고 읽고 나서 잔잔히 감동을 주는 소설이 있다. 표류공주가 후자에 속하는지는 독자 나름의 판단이겠지만 전자에 속하는건 절대 아니라고 감히 단언할 수 있다. 스토리를 연대기적으로 나열할 때 모진위의 용무관, 신검반 시절, 살수훈련, 희노애락 사부들과의 만남, 세외의 용병 객잔, 채경량에 대한 호위행, 환골탈태한 뒤 상관위로서의 삶, 목선민과의 최후의 일전, 마을 머슴으로서의 생활 등 어느 부분에서도 눈길을 확 사로잡는 재미를 발견하기 어렵다. 그나마 가장 재미를 주는 부분이라면 채경량에 대한 호위행에서 서로에 대한 애틋한 감정을 싹틔우는 장면 정도일 것이다.
무협에서 주제의식이 없다고 비판하는 것은 지나친 태클일 수 있다. 재미있으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표류공주에서는 그러한 속된 재미를 발견하기 어렵고 오히려 '흘러가는 빈 배'라는 제목에서 엿보이듯 작가가 작품을 통해 무언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있는 듯해서 이러한 질문을 던져봐도 좋을 듯 하다.
그렇다면 표류공주에서 도대체 작가가 하고 싶은 주제가 뭘까?
모진위처럼 아둥바둥 노력해봐야 나아질 것 없는 다람쥐 챗바퀴도는 인생이라는 인생무상을 말하고자 함인가? 아님 작품 종반부처럼 자신을 헌신해 남을 이롭게 하는 것이 진정한 가치라는 도덕적 가르침인가? 그 어떤 주제의식도 표류공주는 제대로 소화해 내지 못하고 있는 듯 하다.
사실 표류공주 자체를 놓고 보면 이 정도의 비판을 받을만한 졸작은 아니다. 본문의 서두에도 밝혔지만 작품에 대한 기대치가 컸기에 그에 대한 실망 또한 컸음을 부인할 수 없다.
이 작품을 여러번 읽었다면 다른 평가가 내려질 수 있을 것 같지만 지금 심정에서는 두 번 읽고 싶지는 않은 소설이라는 결론이다. 이같은 느낌이 들게 만든 무협은 조진행의 '천사지인'에 이어 두번째다.
그러고 보면 이 작품은 천사지인과 많은 점에서 닮았다. 주인공의 계속되는 시련이 그렇고 무능력하고 답답해서 짜증을 불러일으키는 주인공이 그렇다.
천사지인을 재미있게 보신 분이라면 이 작품 일독을 강력히 권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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