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잔잔한 수묵화를 보는 기분이 드는 작품이 많다.
기분좋은 일이다. 정형성에 가로막혀 제 갈길을 못가던 무협이 이제야 자기의 자리를 잡는가?
무턱대고 칼질잘하고 아무생각없이 날뛰는 글은 이제 그만. 이란 소리다.
(어쩌면 주제넘은 소리이지만, 반면에 좋은글들도 있다는데 안심하는 필자다.)
학사검전은 특이한 소재와 특이한 문장의 일관성있는 모습으로 한 사람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학사라고 하는 특이한 설정과 평소 볼수없던 세밀한구성등은 보는이로
하여금 흥미를 유발시키며 그의 세밀하고 잔잔한 묘사는 독자를 문장 하나하나에
바짝 붙여버려서 헤어날수 없게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무협이 꼭 치고 받고 대가리
깨지는 액션들로만 가득차야 하느냐? 그것이 없어도충분히 흥미로울수 있다는 것을
그는 잔잔한 서술로 알려주고 있다.
평소 필자는 샌님들이 갑자기 기연을 얻어 어쩌구저쩌구 미녀랑 어쩌구 적들이 어쩌구
하는 무협들을 무협지라고 부르며 싫어한다. 읽어봐야 시간과 돈과 정신적인 공황으로 인한
피해만 오는 쓰레기란 말이다. 작가들이야 모 협과 쾌도난마같은 질주와 힘을 보여주는
것이 무협이지 않느냐 며 자기 위안을 삼겠지만, 과연 그게 전부인가?
그 책들에서 나는 알맹이를 발견하지 못했다. 쥐어짜는 눈물(주인공과 주변인들을
왜그리 일부러 쥐어짜는지..)과 허술한 설정, 그리고 선악에 대한 판박이 같은 정체성
없는 사고 들은 정말이지 내가 다른 무협을 보고있는것인지 10년전에 보던 와룡강의
3류 포르노 무협을 보는 것인지 의아하게 만들뿐이었다. 아무리 무협이 허구의 문학에
가깝고 상상의 나래야 작가맘이라지만, 스스로의 설정마저 마구 깨가며 정신 못차리는
주인공이 과연 제대로된 인간으로서 독자에게 다가올수 있는 것인가? 예컨데. 그리려면
작품을 그릴것이지 왜 다른그림을 고대로 배껴서 나 창작 잘하지? 이쁘지? 하고 있느냐는 거다.
화나는 것은 그럴수록 찍어내는 편수가 많다. 묵념..잠시....
그러던중 나에게 기쁘게 다가오는 글들이 많으니. 이래서 난 고무림에 매일 수십번
들락날락 할수밖에 없는가 보다. 탁한 습지속에서도 맑게 피어나는 연잎처럼 그렇게
몇몇 착품들이 나를 기쁘게 하지 않는가?
학사검전은 유일하게 라니안에 가서 보고있는 작품이다.(고무림에서 연재가 되는지는
잘모르겠다. 그냥 습관적으로 라니안을 두들길 뿐.)
작가는 세밀한 구성과 촘촘한 서술, 그리고 시를 쓰는듯한 잔잔한 목소리로 나에게
한 문인의 발걸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이는 법, 그렇게 학사검전의
주인공은 차분하고 잔잔하게 한걸음 한걸음 내딛고있었고, 그의 욕심없는 모습에
어느새 나는 이끌리고있었던 것이다. 아아 통재라. 어찌 이리도 나의 시간을 점령하는
글들이 늘어간단 말인가. 좋구나.
어쩌면 아주 어려운 논리로 굴러가는것 같지만 결코 그렇지 않게 작가는 잔잔함속에
호기심이란 화두를 던지며 최대한 절제도니 목소리를 선보인다. 그저 필자는 그가 과연
다음에 어떤 말을 꺼낼 것인가 하는것에 대한 궁금증으로 한편한편 올라오는것을
지켜보게만 하는 것이다. 화려하고 격렬한 액션 없이도 무협이 이리도 박진감을 나타낼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정도. 아. 그의 글은 막 지나치는 이를 본 방울뱀의 그것처럼
팽팽한 긴장감을 자연스레 유지하고 있었다. 삼류무사의 문장이 격렬함과 잔잔함의
조절로 보다 몰입도를 더해간다면 학사검전의 그것은 최대한의 절제된 목소리와 덤덤함으로
그 몰입도를 한층 높이고 있는것이다.
화려하지도 않다. 격렬하지도 않다. 그저 덤덤하고 잔잔할 뿐. 석양을 지켜보는 어부의
안타까움어린 눈빛이 이런것일까? 자칫 잘못하면 어찌될지 모르는 길을 우려하지만
걱정은 되지 않는 그런 절제된 긴장. 그것이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삼류무사가 동중정의 미학을 지니고 있다면 학사검전은 정중동의 미학을 지닌다고
말해도 될지 모르겠다. 필자의 식견은 매우 낮은 것이어서 그저 감상적일 뿐이라
용어의 선택이라던지 느끼는 바들이 대개 추상적이기만하다. 하지만 한가지 확실한것은
학사검전은 충분히 매력적이고 흥미진진한 글이라는 것이다.
다른 많은 작가들이 이런저런 시도와 이런저런 훈련과 이런저런 고뇌 속에서 무협이란
장르를 발전시키고 있다. 학사검전은 그런가운데서 독특한 미학을 완성해 나가는 과정.
그저 그렇게만 보일뿐이다. 주인공 운현의 검이 언제 어디서 어떻게 나타나며 휘둘러
질지는 모르겠지만, 그의 발걸음을 지켜보는 이들은 점차 더해가는 긴장감속에서
작가의 덤덤한 목소리에 동화되어 있는것이다.
스러지는 노을. 낚시대를 바라보는 어부의 안타까움이 깃든 눈길. 그리고 잔잔한
파문을 보이는 바다.
내가 바라보는 학사검전의 이미지이다.
다만...
한가지....
바라는바가있다면....
날이갈수록 더해가는 극악의 절단마공.
어찌하여 멋진 작가들은 그리도 절단마공을 능수능란하게 휘두르는 것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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