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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

추천에 관련된 감상을 쓰는 곳입니다.



작성자
Lv.1 청섬
작성
04.01.03 22:15
조회
972

1. 들어가기에 앞서.

공학도로서 비평에 몸을 담은 지 어언 1년이 지났지만 필자에게 무협소설 비평은 아직도 버거운 무게감을 준다. 비록 단 내에서 무협소설 비평을 제일 많이 하기는 했지만(비평이라 할 수 없는 어설픈 감평문까지 4번) 그것은 필자가 무협소설을 쓰고 있다는 이유 단 하나에서였지 달리 특별한 사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본인이 무슨 전문 비평가도 아니고 더욱이 이쪽 문학 방면에 해박한 지식을 쌓고 있지도 못하다. 역사주의, 형식주의, 심리주의, 구조주의, 독자주의 등 비평에 관한 여러 갈래 등도 최근에 들어서야 알게 된 것들이며 그것 때문에 꽤나 골머리 싸맨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필자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 보았다. 무협소설에도 위에 거론한 전문 비평 용어들을 접목시킬 수 있는가?(여기서 비평이론은 텍스트라면 당연히 이루어져야 한다라는 원초적 논지는 잠시 접어두기로 하자) 대답은 ‘알 수 없다’였다. 우선 장르와 작가 층의 고유 특성상 역사주의 비평을 들먹거리기에는 아직 부족함이 많다. 허나 최근에 두드러지게 보이기 시작한 무협소설의 ‘다양화’ 현상 때문에 그 외-이를테면 심리주의, 구조주의 등-의 것들은 무협소설에도 그 통찰을 해볼 수 있다는 것이 필자의 지론이다(예를 들면 강재영님의 ‘위령촉루’는 문화사회학적 비평으로 해볼 수 있겠죠). 참으로 바람직한 모습이 아니라 할 수 없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인의 미천한 지식으로 인해 해볼 수 없다는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비평도 전문적인 공부가 필요함을 절실히 깨닫고 있다).

필자는 비평이란 무릇 ‘작품에 의한, 작품에 대한, 작품을 위한 비평’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 중 한 명이다. 때문에 ‘작가’를 위한 버그 리포트식 비평은 지양하는 편이며 ‘독자’를 위한 친절한 설명 식 비평 또한 많이 부족하다. 물론 이것은 나의 이상(理想)과 추구하는 목표(目標)일 뿐 현실은 이와 좀 다르다. 왜냐하면 아직 본인이 전문 비평가도 아닐뿐더러 아마추어 문학 사이트에서 비평의 최우선 기능은 ‘작품과 작가를 동시에 아우르는 것’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본인이 이렇게 구구절절할 정도로 불필요한 사설을 늘어놓는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필자의 비평 방향에 관해 불편하실 독자 분들을 위한 최소한의 예의 정도로 생각해 주시면 감사하겠다.

2. 본

(1) Emotion, 정(情).

W.H. 허드슨(William Henry Hudson, 1841~1922, 영국의 소설가)에 따르면 비평의 의의는 작품의 ‘해석’에 있다고 한다. 그에 따라서 당연히 비평가에게 요구되는 자질 중 하나로 <작가가 작품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주제를 바탕으로 독특한 해석을 끌어낼 수 있는 독창적이고 창의적인 안목>이 꼽힌다. 여기서 필자가 본 <해결사>를 관통하는 하나의 단어는 바로 ‘정’이다.

추몽인님의 <해결사>는 과거 중원 최고 전투집단이었던 암흑전단에서 쟁쟁한 살명을 날리던 진권을 중심으로 스토리가 흘러나간다. 그는 암흑전단이 해체되기 직전 찾아간 암흑전단 1호에게서 ‘인세로 나가 사람간의 향기인 정을 느껴 보라’는 말을 듣는다. 예전부터 아버지처럼, 대형처럼 1호를 따르던 진권이였기에 그는 그 말을 듣고 새로운 삶을 살기로 결정한다. 7년 간 북경에서 신분을 감추고 자칭 ‘해결사’로 온갖 잡일을 하며 지내던 그에게 어느 날 자신의 미래에 중대한 영향을 끼칠 의뢰가 들어온다.

사실 <해결사>란 제목이 이 소설에 어울리나 의 여부는 쉽사리 단언 짓기 어렵다. 제목이 ‘글 전체를 하나의 함축적 의미를 지닌 단어로 압축한 것’이라고 풀이할 때 <해결사>란 제목은 필자의 고개를 갸웃하게 만든다. <해결사>는 분명 갈소영의 여정 호위라는 메인 이벤트를 주축으로 모든 흐름이 돌아간다. 그러기에 <해결사>라는 제목은 얼핏 그 상징성이 많이 취약해 보인다. 오히려 진권이 해결사 직을 하며 벌어지는 사건들을 중심으로 에피소드식 구성을 취한다면 위 제목이 어울릴 것이다.

무협소설에서 오랜 주테마는 ‘의(義)’와 ‘협(俠)’이었다. 그리고 그와 별도로 강호는 과연 ‘유정(有情)’인가 ‘무정(無情)’인가의 여부도 수없이 논해지곤 했다. 무릇 살인에 어떤 명분이나 타당한 이유를 갖다댈 수는 있다. 허나 결국 어떤 미사여구로도 그것이 ‘정당화’될 수는 없는 법이다. 이것이 바로 인간이라면 누구나 다 지녀야 할 ‘생명존중사상’과 무협소설에서 진리로 통하는 ‘의’와 ‘협’과의 충돌이다.

진권의 과거는 피와 살인으로 점철된 ‘무정’의 세월이었다. 그 후 7년 간 북경에서 숨어 지내며 그는 많은 이들과 교류하게 된다. 항상 티격태격하면서도 서로 상부상조하는 곽비연이나 의남매의 연을 맺은 설리향. 이런 이들이 모두 진권의 주변을 ‘무정’에서 ‘유정’으로 바꾸는 존재들이다. 후에 그는 암흑전단 시절 절친한 동료였던 단무정을 만나며 더더욱 과거의 껍질을 깨고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된다.

진권에게 있어 암흑전단 시절의 과거는 7년 전을 끝으로 단절된 죽은 기억이다. 그런데 단무정의 등장으로 인해서 그는 과거와 현재를 이어 줄 연결고리를 찾은 셈이 된 것이다. 그들은 서로의 변한 모습에 일면 놀라면서도 천천히 살아 숨쉬는 인간의 증거인 ‘정’을 느끼게 된다. 글쓴이가 심중에 지니고 있는 ‘유정강호(有情江湖)’가 보이는 순간이다.

갈소영의 호위임무를 띠고 남궁세가로 향하던 진권 일행은 정체 모를 무리들인 추혼조의 습격을 받고 격투를 벌이게 된다. 거기에서 갈소영은 무인으로서 첫 살인을 저지르게 되고 심한 정신적 공황에 빠져든다. ‘사람은 왜 같은 사람을 죽여야 하는가’라는 단순 명료한 질문.

바야흐로 강호의 이상인 ‘의’와 ‘협’에 파묻혀 있던 근본적인 문제가 고개를 든 순간이었다. 추몽인님은 진권의 입을 빌어 거기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강력하게 피력한다.

일반적으로 나올 수 있는 해결책 두 가지. 첫 번째는 자신이 존재하는 이유가 살인이 되도록 철저한 살수가 되는 것이다. 두 번째는 살인에 자기합리화를 위한 적당한 명분과 대의를 갖다 붙이는 것이다. 글쓴이는 위 두 가지를 모두 거부한다. 살인을 할 때에도 잔심(殘心), 즉 ‘정’을 남기라는 것이다. 과연 이것으로 강호에서 일명 ‘의’와 ‘협’이라는 미명 아래 행해지는 수많은 살인 앞에 떳떳할 수 있을지는 아직 알 수 없다.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무협소설의 영원한 테마 아닐까?

한 가지 아쉬운 대목이라면 너무 진부했다는 것이다. 갈소영의 질문에 대한 진권의 답과 그 후 갈소영이 가치혼란에서 빠져나오는 과정이 뻔히 그려질 정도로 식상했다. 바꿔 말하면 누구나 흔히 생각하고 유추할만한 평범한 진행이었다는 것이다. 글쓴이의 주제의식을 피력하는 무대로 굳이 신출내기 무인의 첫 살인을 잡았다는 것은 글쓴이의 작위성이 듬뿍 묻어나는 부분이다. 그러기에 작가의 뜻은 충분히 알면서도, 별로 공감이 가지 않았다. 진정 독자들에게 마음으로 통하기란 이렇게 어려운 법이다. 이심전심(以心傳心)이란 단어가 주는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다.

(2) A basis, 글의 기본이 부족하다.

<해결사>를 비평하면서 도저히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이 부분이다. 극 초반부를 벗어나면서 보여지는 비문은 거의 매 쪽마다 한번씩 등장하고 있으니 이건 심각하다 아니 할 수 없다. 처음에 필자는 그러려니 하고 비문을 하나씩 체크하다가 종내 에는 포기해 버리고 말았다. 체크가 무의미할 정도로 그 수가 많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자면,

- 그들이 멈춰선 곳은 북경의 어둠의 환락의 대명사 일컬어지는 비밀주점 밀집지역, 견불견물로의 초입이었다.(‘해결사’ 본문 중에서)

위 문장은 조사 반복, 조사 불일치로 말미암아 나온 비문이다. 저 문장 외에도 주어반복, 동일접속어구 반복, 동일문구 반복, 주어와 서술어를 구분 지을 수 없는 안은 문장 등 수없이 많은 비문이 소설 곳곳에 들어있다. 필자가 더욱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추몽인님이 왜 저지경이 되도록 글을 방치했나 하는 점이다. 단지 퇴고 두세 번만 거쳤어도 충분히 80%는 잡아낼 수 있는 것들이다.

본인 같은 경우는 한편 연재할 때마다 적어도 퇴고 열 번 이상은 거친다. 이 비평문만 해도 퇴고를 십 수 번이나 거쳐서 완성된 평문이다. 그런데도 종종 못 잡아내는 오탈자나 비문이 있다. 그래서 필자는 항상 글을 온라인 상에 올리고도 수시로 다시 읽어본다. 이렇게나 퇴고를 꼼꼼히 하는 이유는 물론 더 좋은 글을 쓰기 위한 이유도 있지만 읽는 독자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를 갖추기 위함이다. 소설을 작가와 독자간의 쌍방향 통신이라고 생각할 때 이런 심각한 수준의 비문은 독자들의 기분을 상하게 할 수 있다. 적어도 읽기에 부담 없이 술술 읽혀야 하지는 않겠는가? 추몽인님은 이 부분에서 완벽한 우를 범하셨다. 글쓴이에게 진지한 반성이 필요한 시점이다.

게다가 무협소설에서 쓰여서는 안될 현대외래어도 글의 기본을 해치는 저해요소이다(예를 들어 리얼하다라는 어구). 같은 맥락으로 견불견물로와 중원치안관리부는 지나친 현대적 묘사로 인해 글의 사실성을 많이 떨어뜨린다. 중원치안관리부 내부 모습은 우리가 형사액션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파출소 강력계 모습이며 견불견물로 또한 마찬가지다.

또, <해결사>는 묘사에서도 상당히 취약한 모습을 보인다. 무협소설에서 제일 중요한 격투씬 묘사는 눈에 잘 그려지지 않으며 설명 또한 억지스러운 부분이 많다. 물론 묘사에도 여러 가지가 있다. 배경묘사, 인물묘사, 심리묘사. 언뜻 보기에 글쓴이는 묘사부분에 많은 노력을 할애한 것처럼 보인다. 허나 그 시기와 양 등이 적절치 않으며 대부분 상투적이고 진부한 수식어구들이 판을 친다. 그 중 인물묘사는 그나마 글쓴이가 신경 쓴 흔적도 많이 보이며 꽤나 재치 있는 장면이 몇 있었지만 다른 부분의 부족함으로 인해 그 빛이 많이 바래 버렸다.

무협소설도 엄연한 문학의 한 갈래이며 예술의 한 경지이다. 좋은 묘사가 나오려면 글쓴이는 항상 자신이 하고 있는 행위가 예술임을 잊지 말고 문장 하나 하나에 자신만의 철학과 혼을 불어넣으려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하는 것이다. 지나친 문장 꾸미기와 기교 부리기는 글을 쓰면서 가장 조심해야 할 유혹이다.

진정한 기교라는 것은 흔히 구조조의 비평에서 말하는 언어의 기표(그릇)와 기의(뜻)를 이해하고 그것을 예술의 차원에서 재해석할 수 있어야 만이 비로소 나올 수 있다. 그러므로 글쓴이는 쓸데없이 묘사의 살만 불리기보다는 먼저 언어의 이해에 힘쓰고, 필요한 부분에 자연스러운 묘사를 할 수 있는 실용적 글 쓰기에 주력해야만 한다.

-휙

요란한 소리가 들리는 듯 했지만, 아무런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그들의 번개처럼 돌려지는 신형에 이런 소리가 묻어 나오는 듯 했다. (‘해결사’ 본문 중에서)

대체 위 문장이 무슨 뜻인가? 잠입을 하는 살수들이 몸을 돌리는 과정에서 소리가 나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그리고 글쓴이도 그것을 본문 중에서 설명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휙’이란 의성어를 삽입하고 말았다. ‘묻어 나오는 듯 했다’라는 한마디로 얼렁뚱땅 넘어갈 것이 아니다. 이런 것이 바로 글에 있어 불필요한 사족 같은 묘사인 것이다.

글에 있어 쓸데없는 문장이란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의성어 하나, 의태어 하나에도 자신의 혼과 철학을 담으려 노력하는 것이 바로 진정한 예술인의 태도다. 그래야 만이 추몽인님의 <해결사>는 비로소 떳떳한 문학작품으로, 그리고 살아있는 생명으로서의 소설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단지 죽은 글일 뿐이다.

(3) Cubic, 귀에 들려지는 등장인물들의 숨소리.

소설의 3요소 중 하나로 꼽히는 인물은 다시 입체적인 인물과 평면적인 인물로 나눌 수 있다. 처음 나오는 성격 그대로 유지되는 인물을 평면적인 인물(또는 전형적인 인물)이라고 하며 스토리 진행 중 성격이 차츰 바뀌는 인물을 입체적인 인물이라고 한다. 당연하게도 거의 대부분의 소설에서 입체적인 인물이 주연을 맡으며 평면적인 인물이 조연으로 쓰이게 된다. 흔히 독자가 소설을 읽으며 주인공에 감정이입을 하는 경우가 많다고 볼 때, 입체적인 인물은 독자의 흥미를 배가시키는 데 매우 중요한 요소라 할 수 있다.

물론 극히 일부 소설에서는 조연마저 입체적인 모습을 보일 때가 있다. 허나 그런 경우는 자주 있는 경우가 아니며 기법 상 상당히 어렵기 때문에 웬만한 작가들은 그렇게 하기를 꺼려한다.

<해결사>를 살펴보자면, 주인공 진권은 분명 입체적인 인물상을 지니고 있다. 과거 암흑전단 시절 돈과 명령밖에 모르는 무자비한 살인기계였던 그가 지금은 적의 목숨마저 살려줄 정도로 바뀌었다. 허나 자세히 살펴보면 고개를 갸웃하게 만드는 점이 보이는데 그것이 바로 진권의 유난히 여자를 밝히는 성격이다. 암흑전단 1호의 ‘사람의 정을 느껴 보라’라는 말  뜻이 여자를 품으라는 뜻은 절대 아닐 것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진권의 과도하리 만치 보여지는 성욕은 읽는 독자로 하여금 ‘7년 사이에 저 정도로 바뀔 수 있나’라는 의문이 들게 한다. 굳이 들춰보자면 그 이면에 성적인 이야기를 통해 독자의 흥을 돋우려는 작가의 의도가 보이기는 하다. 하지만 그렇다 쳐도 인물 성격 설정에 적절한 동기부여가 너무 적지 않았나 싶다.

그래도 역시나 전체적으로 봤을 때 탁월한 인물설정이 이루어졌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진권 외에도 곽비연, 단무정, 갈소영, 화이수, 소취아 등 여러 등장인물들을 실감나게 이끌어 간 부분에서는 갈채를 보내고 싶다. 아까도 거론했듯이 <해결사> 곳곳에서 보여진 몇 몇 재치 있는 인물묘사는 <해결사> 전체적 분위기를 밝게 끌어올리는데 일조를 했으며 생동감 있는 인물군상 그리기에 크게 공헌했다.

다만 아쉬운 점이라면 빼어난 인물 스케치 위로 잘못된 물감 채색 부분이 보인다는 것이다. 작중 등장하는 화이수는 분명 환관이다. 환관이라 하면 남성이 생식기능을 스스로 절단하고 황궁에서 종사하는 사람들을 일컬음이다. 헌데 화이수는 아무리 제 딴에는 여장을 하고 진권 일행에 접근했다지만 혼자 생각할 때 마저 ‘호호호’란 웃음을 연발한다. 그리고 지나칠 정도로 보여지는 단무정의 ‘크크큿’이란 웃음소리. 단무정을 표현할 어구가 과연 저 하나뿐인가 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작중 진권 일행과 부딪치게 되는 추혼조도 마찬가지다. 소설에서는 패를 모르는 필승의 신화를 이루어 가는 살수집단으로 묘사되어 있다. 그런 것 치고 추혼조가 주는 무게감이 너무 부족한 면이 없지 않아 있다. 처음 진권 일행을 습격할 때 본인으로 하여금 헛웃음이 나오게 했던 유치한 연극 작전이랄지, 두 번째 진권 일행과의 대면에서 너무나도 카리스마 없어 보이는 대화장면. 이런 것들이 바로 모두 설정과 묘사의 불일치에서 나오는 불협화음이다.

더구나 <해결사>에서 무공의 경지 중 하나로 나오는 진아지경(무아지경의 반대말 식으로 설정되어 있다)이나 무림이대괴공이라는 흥분무공과 자극무공도 억지스럽고 부담스러운 면이 많다. 판타지나 무협소설에서 ‘새로움’이란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무조건 새롭다고 좋은 것은 아니다. 새로움을 ‘독특함’ 혹은 ‘황당함’으로 판가름하는 잣대는 바로 치밀하고 탄탄한 설정에서 기인한다.

(4) Showing, 작가의 목소리가 너무 많이 들린다.

소설에서 ‘Showing'(보여주기) 기법은 매우 중요하다. 물론 ‘Telling'(설명 식 주입) 기법도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기는 하나 보여주기 기법이야말로 독자의 몰입도를 높이고 감정이입을 도와주는 매우 효과적인 방법인 것이다. 그런데 <해결사>에서는 작가가 너무 친절하다. 친절하다 못해 손수 숟가락으로 밥을 퍼 독자의 입에 넣어주려 한다. 여러 곳에서 글쓴이의 무리한 억지개입이 눈에 띄며 소설 설정에 관해 이야기할 기회가 왔다 하면 글쓴이가 득달같이 달려들어 장황하게 늘어놓는다. 이래서야 이게 과연 독자를 위한 글인지 작가를 위한 글인지 알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린다.

예를 들자면 초반 부분 곽비연이 진권의 과거사를 떠올리는 장면. 일반적으로 볼 때 이미 자신이 알고 있는 사실을 저렇게나 구구 절절히 떠올릴 필요는 없다. 딱 보기에도 작가가 무리하게 진권의 과거사를 독자에게 설명해주려는 의도가 보이지 않는가?  

- [목적지가 거의 다 보인다. 우리가 그들에게 보여준 그 어리석은 철수는 한 가지를 노린 노림수이다. 실패는 한번으로 족하다. 두 번은.....] (‘해결사’ 본문 중에서)

작중 추혼조 조장의 생각 장면이다. 이렇게 해서까지 글쓴이가 독자에게 일일이 설명해 줄 필요가 있을까? 좋은 글이란 자신의 옷을 쉽사리 열어제치지 않는다. 무리한 작가 개입보다는 세밀한 상황묘사와 일반적인 대화들로 복선과 인과관계를 보여줄 수 있을 때, 비로소 독자들의 감탄을 자아낼 수 있는 것이다.

이건 사족이지만 <해결사>의 스토리 템포는 너무 느리다는 느낌을 준다. 한 권 반 분량이 지나도록 진권 일행은 출발지인 북경으로부터 불과 십리를 벗어나지 못했다. 객잔에다 들렀다 하면 이틀 이상은 쓸데없이 머물고 간다. 여유도 보통 여유가 아니다. 북경 근처 야산에서 벌어진 추혼조의 첫 기습이나 화이수의 합류, 그리고 문휘연과의 만남 또한 급작스럽고 억지스러운 면이 많다.

또, 글 초반에 정신 없이 오가는 곽비혜의 과거사연과 진권, 곽비연의 현재 이야기는 뜬금없고 무언가 부자연스럽다는 느낌을 많이 준다. 작품 전체의 유기성이 조금은 아쉬운 대목이다.

(5) Interest, 대중성이냐 작품성이냐.

<해결사>는 요즘 무협계에 태풍처럼 불고 있는 신무협류를 상당부분 많이 답습해 온 작품이다. 필자가 본 <해결사>는 신무협류 중 분명 개그 쪽에 승부를 건 작품이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게 또 성적 개그 중심이다. 그럼 여기서 중대한 문제 하나가 발생한다. 과연 <해결사>는 위에 거론했던 ‘유정강호’ 외치기에 포커스(focus)를 맞출 것이냐, 아니면 철저히 흥미도와 재미에 포커스를 맞춘 성적 개그 중심으로 갈 것이냐. 아직 추몽인님의 의중이 어떠실 지는 확실히 파악할 수는 없다. 이제 막 두 권 남짓한 분량으로 그것을 파악하기란 미천한 본인의 안목으로는 무리수가 따르기 때문이다. 단지 조심스레 추몽인님은 전자의 의도를 갖고 계시리라 기대를 가질 뿐이다.

물론 성적 개그 중심이라고 꼭 작품성이 떨어지란 법은 없다. 오히려 성적인 요소를 통해 인간 본연에의 탐구를 깊이 성찰한 작품들도 많다. 하지만 필자가 본 <해결사>에서의 성적인 요소란 단지 흥미와 재미만을 위한 기능일 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작품에 있어 대중성이란 요소는 확실히 중요하다. 출판 부수와도 직결되며 원래 재미라는 것이 원초적 부분에서 크게 기인하는 법이니까. 그렇지만 진정한 예술인으로서의 작품활동은 이와 다르다. 험난한 가시밭길이며 무수한 장애물이 눈앞에 존재한다. 이런 끊임없는 자신과의 싸움을 통해야만 비로소 정말 좋은 글이 탄생하게 되는 것이다.

단 것만을 좋아하다 보면 언젠가는 입안이 썩기 마련이다. 작품도 이와 마찬가지다. ‘작품’을 위한 성적 요소이어야지, ‘흥미’를 위한 성적 요소가 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바꿔 말해서, 무협소설에서 흥미도가 어느 정도 필요하기는 해도 그것이 궁극적 목표를 위한 도구적인 요소로 쓰여야지, 도리어 주객전도 식으로 그것이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같은 맥락으로 지나친 개그위주 식 진행으로 인해 무협소설에서 생명이라 할 수 있는 격투씬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는 점도 매우 아쉬운 점 중 하나다. 무협소설에서 독자들에게 제일 크게 흥미로 어필할 수 있는 부분이 바로 이 격투씬인 것을 감안하면 약간 아이러니 하다 아니 할 수 없다. 이런 점들은 자칫 <해결사>에 치명적 약점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3. 비평을 마치며...

추몽인님의 <해결사>는 라이트리더를 지향하며 재미있는 표현과 정감이 가는 개그풍으로 독자들에게 쏠쏠한 재미를 주는 작품이다. 나름대로 뚜렷한 주제의식을 가지고 작품을 이끌어 가는 것도 글쓴이의 가능성을 기대케 하는 대목이다.

하지만 작품 내에 숨어있는 적지 않은 허점들로 인해 작품 전체 퀄리티와 중심 축이 많이 흔들려 버렸다. <해결사>를 읽은 한 명의 독자 입장으로서 걱정스러운 마음이 앞선다. 그렇다고는 해도 남겨진 몫은 누구의 것도 아닌, 바로 추몽인님 자신의 것이다.

몇 번을 뜯어 고쳐봐도 부족하기만 한 이번 평문이었다. 너무 내재적 비평만을 고집한 것은 아닌가 후회도 들고 비평가로서 좀더 예리하고 폭넓은 안목과 통찰을 가졌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과 자책도 많이 든다. 그나마 글쓴이께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 부분이 있었다면 필자는 그것으로 만족한다.

이제 <해결사>는 진정 ‘해결’해 나가야 할 것이다. 오랜 세월 후에도 독자들에게 잊혀지지 않을 무협명가를 위해, 또는 진정한 예술로서의 작품을 위해서.

이상 <해결사> 비평을 마치며 지금까지 졸문을 읽으시느라 고생하신 분들께 심심한 사과의 말씀을 올린다.

- 최고는 아니지만 최선을 다하는, 노력하는 비평단이 되겠습니다.

- 삼룡넷 비평단장 화랑의혼 배상.


Comment ' 3

  • 작성자
    Lv.39 불멸화
    작성일
    04.01.03 22:31
    No. 1

    화랑의 혼님 감사합니다....^^
    으음...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렸을 것 같군요.....ㅡㅡ;;;;
    저는 간단한 평을 부탁드렸었던 것인데.^^;;
    잘 읽었습니다.
    앞으로 많은 부분에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그동안 기다렸던 시간이 무의미한 것은 아닌 것 같군요..^^
    감기가 낫기를 바라며...
    비평하시느라 수고했습니다....^^

    피에스) 다음 번에는 조금 쉬운말로 해줘요...ㅡㅡ;;;;
    읽고 해석해야 할 정도로....음....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 청섬
    작성일
    04.01.04 00:05
    No. 2

    헉..올리자마자 댓글이..^^;; 우선 비평이 예정보다 늦어진 점에 관해
    진심으로 사과말씀 드립니다.(꾸벅) 아...도움이 되셨다니 저로서는 정말
    다행이네요.^^;; 음..그리고..-_-;; 저딴에는 쉽게 쓴다고 쓴 것이었는데..
    평문이 좀 어려우셨던 모양이군요.--;; 에구야..;; 아직 제 필력이 많이 부
    족한지라 그렇습니다.ㅜㅡ 죄송합니다~^^;; 아! 그런데 고무림에만 댓글
    달으셨네요~;ㅇ; 삼룡넷에도 달아주셔용~ㅋ.ㅋ;;

    새해 복 많이 받으시구요~! 앞으로도 건필하시기 바랍니다.^^ 화이팅!

    덧) 혹시 평문에 관해 기타 궁금하신 사항 있으시면 메일로 보내주세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20 흑저사랑
    작성일
    04.01.04 10:55
    No. 3

    누가 읽어도 같은 의미를 쉽게 알게 전달되도록 하는 것도 비평단의 노력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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