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명 : 강한성
작품명 : 개천에서 용 났다
출판사 : 디앤씨미디어
미리니름이 있으니 책을 아직 못 읽으신 분께는 권하지 않습니다.
0.
<개천에서 용 났다>는 현대 판타지, 그중에서도 하필 국가권력 중 하나인 사법계에서 활약하는 주인공을 활용한 글이다. 이것이 판타지일 수 있는 것은 주인공인 태국이 전생에 마법사였으며, 전생의 기억을 통해 마법을 익혀 활용하기 때문이다.
이 사회는 썩었다. 적어도 일반 국민은 거기에 동의할 것이다. 그중에서도 특히 썩었다고 회자되는 검찰, 거기에 몸을 던진 태국은 분명 우리가 바라는 검사의 모습이라 생각한다. 그것은 작가는 물론이거니와 본인을 포함한 독자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개천에서 용 났다>와 그 주인공인 태국을 바라보는 본인의 시선이 어떠한지, 이하에 기술한다.
1.
<개천에서 용 났다>는 범죄의 피해자에서 가해자를 심판하는 검사가 된 태국을 주인공으로 하는 소설이다. 그는 검사로서 '꼴리는 대로' 일하며, 권력에 아첨하지 않고 '거악'에도 거리낌 없이 맞선다. 죄가 없는 이에게는 전혀 해가 되지 않을 사람이며, 죄는 지었으나 형편이 안된 이에게는 법의 적용을 다소 느슨하게 하는 모습도 보인다.
적어도 외부에서 보기에, 그는 확실히 이상적인 검사다. 그런 검사만 있다면 세상이 이리 썩었을 리 없으며, 정말 살맛 나는 사회, 법이 빈부에 상관없이 공정하게 적용되는 사회가 되었을 것이다.
저자 강한성이 말하는 이상적인 검사상, 그것에 열광하는 것은 그만큼 작중에 반영된 현실이 이상에서 동떨어져 있다는 반증이다. 작중 인물은 물론이요, 독자들 역시 거기에 빠져드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노릇이다.
2.
주인공 태국은 분명 이상적인 검사의 모습을 보인다. 그러나 그가 외부에 보이지 않는 모습도 과연 이상적일까? 본인은 전혀 그렇지 않다고 주장한다.
그는 자신을 식물인간으로 만든 바 있는 이들을 법이 아니라 폭력으로 심판한다. 가해자들을 강제적으로 식물인간으로 만들어버리는, 그야말로 당한 그대로 돌려주는 식의 심판이다. 게다가 보상이라는 명목으로 돈을 받아내기까지 한다. 다시 식물인간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으면 돈을 가져오라는 협박도 서슴지 않는다. 그래도 이 과정에서 스스로 행위를 정당화시키려는 자조라도 보이니 그나마 낫다.
그는 '검사 월급만으로 살겠다'라고 말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친구를 통해 해외 명품에 간단한 마법을 걸어 무려 열 배의 가격으로 되파는 폭리를 취한다. 200만 원 남짓 되는 검사 월급만으로 살겠다던 다짐은 다 어디로 갔는가? 아들의 무죄를 증명해준 대가로 돈을 받으면서도 전혀 사양하지 않는 것은 과연 독자의 눈에 청렴해 보이겠는가?
목적이 정당하다면 수단의 부당함이 용서되는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는 검사로서 자격이 없다. 월급만으로 살겠다고 했으나 막상 검사가 되고 보니 그건 힘들겠는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최소한 몇 개월 빠듯하게 사는 모습 정도는 보여야 했다.
외부에 보이는 모습은 분명 이상적인 검사다. 그러나 내부는 실망스럽다. 스스로 한 말도 지키지 않는 소인배, 인간으로서도 '내키는 대로' 하는 잡배일 뿐이다.
3.
<개천에서 용 났다>에 반영된 현실은 그야말로 절망스럽다. 저자는 이 현실을 타파하는 모습에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하고 싶었을 테지만, 그 이면에는 더욱 심각한 절망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 매우 씁쓸하다.
태국은 도저히 입증이 불가능한 범죄를 입증하기 위해 피의자가 자백하게 만드는 마법을 쓴다. 이것이 무엇을 뜻하는가? 그런 방법마저 동원하지 않고서는 절대로 해결이 불가능한 사건임을 반증하지 않는가? 피의자의 자백이 아니고서는 입증이 불가능한 범죄가 억울한 피해자를 양산하고 있다는 현실은 그야말로 씁쓸한 노릇이다.
태국은 '검사 월급만으로 살겠다'라고 했으나 별도의 수입, 그것도 세무신고를 하지 않는 수입을 챙긴다. 이것은 검사 월급으로는 넉넉한 생활이 불가능하다고 반증하는 것을 넘어 검사들이 뇌물을 받는 것에도 '그럴 만하다'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받은 월급만으로 살겠다고 다짐한 사람마저 딴주머니를 차게 하는데, 마법을 쓸 줄 모르는 평범한 검사들은 어떻겠는가? 뇌물 말고 다른 방법은 없지 않겠는가.
4.
태국은 그야말로 '꼴리는 대로' 산다. 그것이 사회의 입장에서는 이익이 되는 방향일 뿐, 본질적으로 그는 법을 피해가며 '꼴리는 대로' 사는 천방지축 검사에 불과하다.
"이제, 그의 발아래 세상의 모든 위선자가 숨죽인다!"
<개천에서 용 났다>의 뒷표지에 쓰인 광고 문구다. 분명 위법자, 위선자는 숨죽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후의 이야기가 그리 흘러가더라도 마뜩잖다. 이대로는 위선자를 발아래 둬야 할 태국마저 위선자의 범주에 들어갈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대리만족으로는 괜찮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 이면이 매우 쓰다. 세상에 이런 검사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으면서도 그를 훌륭한 사람이라 여기기는 어렵다. 주장하는 바에는 대부분 동의하면서도 그것은 신념이 아니라 궤변으로 보인다.
모든 면에 철저했다면 재미가 떨어졌을 수도 있다. 재미를 위해 원칙을 다소 포기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자칫 그 재미마저 놓칠 수도 있다는 것을 저자는 반드시 명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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