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작가는 풍종호이다. 그의 작품은 하나 하나 흠잡기 힘들정도의 완성도를 보이며, 두 번 세 번 다시 읽어도 질리지 않는 흔치 않은 무협소설들이다. 그중 경쾌한 재미의 측면에서는 -광혼록-이 으뜸인듯 하다.
광혼록은 절세의 뚱땡이였던 조수인 공자가 겪는 강호유람기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조수인 공자의 경쾌하다 못해 해학적인 행보를 따라 흘러가는 가벼운 분위기. 하지만 조공자의 과거 몸무게만큼이나 결코 들뜨지 않는 필력. 즐기기 위한 고급스런 무협의 모든것을 갖추고 있는듯 하다.
1,2부 총 6권의 광혼록을 읽으며 가장 즐거워 했던 부분은 대사 하나 하나 사건 하나 하나에 녹아있는 살아움직이는 인물들의 개성이었다. 주연,조연,액스트라 할 것없이 글 속에 자신의 이름을 드러내는 모든 인물들은 모두 확연한 자아를 지니고, 작가가 직접적으로 자신에 대해 설명하는 것을 거부하고 글 속에서 스스로 자신을 표현하고자 하는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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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쪽 어깨를 벽에서 내밀고 커져버린 손아귀가 양노대를 덮치려는 그 순간에 양노대 역시 그냥 등 돌린 채로 의기양양해하고 있지만은 않았다.
뒤통수에서 얼굴이 솟고, 오른팔이 왼팔로, 왼팔이 오른팔로 바뀌는가 하더니 등이 가슴으로 변하고 발꿈치가 발가락쪽으로 뒤집어진 것 역시 순식간이었다.
검은 그림자의 허얀 눈구멍이 크게 확대되었다.
자신의 기습에 맞추어 양노대의 저 괴상한 변신이 이루어졌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가?
"죽어라!"
양노대의 입에서 한마디가 나오고 피잇, 가벼운 소리가 요룡에게서 울려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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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혼록에서 제일 좋아하는 대목이다. 단순히 몸을 돌려 반격을 했다는 단순한 설명이 양노대를 통해 이뤄지니 이같은 개성으로 나타난다. 양노대의 이 짧은 행동속에서 나는 반격이 이뤄지기 까지 꼼짝도 않는 음흉함?,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 "죽어라"라는 짧은 대화와 "요룡"이란 단어가 풍기는 분위기를 통해 그의 독랄함 을 엿볼 수 있었다.광혼록은 전체에서 각 인물들은 이같이 작가의 직접적 서술형식을 빌리지 않고도, 스스로의 대화,행동을 통해 자신의 개성을 표현하고 있다.
천개의 라면이 모두 동일한 맛을 내는 인스턴트식 무협에 질려버린 독자라면, 면발 하나 하나가 살아숨쉬는듯 개성이 넘치는 광혼록을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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