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명 : 조진행
작품명 : 향공열전
출판사 : 드림북스
책을 읽고 와서 머릿속에 생각은 많은데 하고 싶은 말이 다 정리가 안 된 채로 씁니다.
장르출판작가와 독자의 관계는 꼭 장기나 바둑, 또는 오셀로를 두는 상대와 같다고 느낍니다. 오셀로에선 돌 하나를 놓으면 한 줄이 검게도 변하고 희게도 변하는 것처럼 장르는 권마다 작가와 독자가 서로 소통합니다.
예를 들어 작가가 먼저 책을 내면 독자가 읽고 감상이나 비평을 하지요. 그럼 작가는 다음 권을 낼 때 독자의 글을 참고해서 출판합니다. 독자는 그 다음 권을 보고 작가가 어떤 점에 영향을 받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책에 대한 감상이나 비평을 다시 올리겠죠. 감상란이나 비평란이 여러 말도 많지만, 연재하지 않는 글에 대해 작가와 독자가 이렇게 직접적으로 소통할 수 있다는 면에서 좋은 기능을 한다고 여겨집니다.
특히나 향공열전 7권은 여러 가지로 말이 많았던 전권에 대한 독자들의 감상이 작가에게 분명히 영향을 줬다고 느꼈습니다. 그리고 이 느낌에서 한 발자국 더 나아가 작가분들이 감상, 비평란을 읽고 참고를 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어 조금 고무되기도 합니다.
어쨌든 본론으로 들어가서 이번 7권은 내용 면에서는 전권에서 독자들이 지적한 많은 부분에 대한 반박이나 설명이 주를 이룬 것으로 생각되고 이야기 진행 면에서는 클라이맥스로 가기 위한 준비단계라고 느꼈습니다.
이전, 많은 분이 언급한 독고휘의 죽음, 곤란함을 헤쳐나갈 충분한 능력과 지위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멍한 짓을 하는 주인공의 행태 등에 대해 작가는 7권 전체에 걸쳐 왜 그랬는지를 설명합니다. 여러 번에 걸쳐 자세히 설명해서 인지는 몰라도 에피소드 자체는 몇 개 안 되는데 주인공의 심경 변화와 설명으로 책 한 권이 됩니다. 더군다나 작가는 계속해서 독자를 유인합니다. '이제 곧 주인공은 복수를 할 거야. 조금만 있으면 분명히 힘을 보여줄 거니까 기다려.'라는 식으로 독자를 기다리게 하고 기대하게 합니다. 그러나 결국은 전 권에서 멍했던 주인공이 이번 권이 아닌 다음 권에 가서야 활약할 것이라는 것을 알게 합니다. 여기서 저는 작가의 자존심과 오기를 봤습니다. 왜 이번 권이 아니고 다음 권인가? 워낙 글을 잘 쓰는 작가이다 보니 줄이려고 마음먹었으면 충분히 줄이고 주인공이 진정으로 싸우는 장면을 쓸 수도 있었을 텐데 굳이 다음 권으로 넘겼을까를 생각해봤습니다. 그랬더니 개인적이고 졸렬한 생각이지만 전권에서 안 싸웠다는 말을 들었다고 다음 권에서 바로 싸운다는 것이 제가 생각하기에도 참... 아무튼, 그런 이유로 작가의 오기를 본 것 같고, 싸움다운 싸움이 없었던 7권이라 생각되어 더욱 8권이 기대됩니다.
작가님의 전작들부터 쭉 생각을 해보면 초기작인 천사지인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인물들은 힘이 있지만 외유내유의 우유부단한 주인공, 고만고만한 악한 정파인, 악마 같지는 않지만 어쨌든 나쁜 놈들인 사파인, 고만고만한 놈들과는 절대비교불가의 카리스마 악당 두목들로 구분됩니다. 보통 글에선 정파나 사파인이라도 이류, 일류, 절정등으로 나눠서 조연도 서로 구분되는 무위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작가님의 책에는 정사의 구분이 없이 속가도 일대제자도 장로도 장문인도 다 고만고만합니다. 그들이 따로 활약하는 장면도 없거니와 그들이 나올때는 항상 주인공이나 카리스마 악당 두목에게 당하는 장면만 나와서 조연끼리 비교가 안되기 때문입니다. 마치 일곱살과 열살의 차이는 환갑의 할아버지 앞에서는 어차피 도토리 키재기인 것과 같습니다. 이렇게 너무 차별되는 무위로 인해 큰 줄거리를 통쾌하게 끌어 내려면 주인공이나 악당을 움직여야 하는데 여기에 문제가 있습니다. 바로 주인공이 우유부단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힘을 보여주는 장면에는 주인공보다 악당을 선호하게 되고 감정이입이 안된 악당이 아무리 힘을 보여준들 독자는 주인공 때문에 답답해지기만 합니다.
다른 점에서 생각해 볼 것은 우유부단한 주인공입니다. 주인공들이 정말 우유부단한지를 살펴 봤습니다. 작품들을 보면 작가의 주인공들은 대체로 살생을 꺼립니다. 득도했던 성불했던 어떤 공부를 익혔던 지와는 상관없이 공통된 면을 보입니다. 분명히 여기서는 상대를 죽여야 할 장면인데 넘어간다거나, 시비를 명확히 하고 징계를 해야 할 부분인데 그냥 용서해버리는 부분들이 많습니다. 작가님이 도경에 심취했는지는 몰라도 그 지식을 책 속의 주인공들도 영향을 받아 그 생각과 행동이 그야말로 무위자연과 무애함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자존과 자유한 주인공들이기에 앞과 같이 그 행동이 일반인과 다르고 또 상황에 대처하는 자세도 다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개연성이 안 맞고 답답해 보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우유부단한 것과는 다르지만, 일반적이지 않은 이런 면으로 말미암아 주인공이 기인이라고 좋게 받아들여지면 글의 개성이 되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에는 거부감과 반발을 사게 되는 것을 감수해야 합니다.
이런 살생을 꺼리는 작가의 생각은 서문영과 현천문의 싸움에서도 잘 나타나 있습니다. 서문영 측은 명분이 있고 능력도 있었습니다. 따라서 일의 주동자는 당연히 처벌을 해야 할 것이고, 더욱이 무림이라는 특수한 환경을 생각하면 훗날을 대비해서 현천문을 멸하던가 해체하는 것이 당연하게 보입니다. 그러나 명분이 없을 때는 만들어서라도 싸우는 무림인데 서문영은 처음부터 싸울 마음이 없었습니다. 방문 인원도 단출했고 정작 싸움이 나기 전에 인질을 잡아 싸움을 피했습니다. 끝에 가서 피를 본 것도 본의가 아니라 어쩌다가 마음 가는 대로 검을 풀어놨더니 의외의 사태로 생긴 결과였을 뿐입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의도한 살생을 피하고 있습니다. 군인이었을 때도 적군과 싸움에서 먼저 나서서 죽이는 법이 없었던 것을 보면 작가님이 주인공의 살생을 꺼려하는 면을 잘 알 수 있습니다.
참, 어떤 면에서 보면 서문영은 싸울때 상대를 선악과 적아로 살인을 할지 결정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단지 모두가 다 죽이면 안 되는 똑같은 생명으로만 볼 뿐 입니다. 그런 면에서 저는 철저한 복수를 다짐하는 서문영이 어색해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또한 한 명의 사람이라는 점에서 이해되기도 합니다.
작가님의 글은 전체적으로 주인공이 살생을 꺼려서 통쾌함은 덜하지만 현기가 있어 일장일단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동안의 결과를 보면 장점이 더 두드러져 보였다고 생각됩니다.
결론으로 향공열전의 다음 권을 봐야 알 수 있겠지만 이런 점에서 서문영이 정말 피의 검을 휘두를 수 있을지, 그렇다면 어떻게 휘두를지, 궁금하기 이를 데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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