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후선생님의 “이능력자”를 읽고.
첫째 문장력에 관한 이야기.
원래 비평에 문체나 맞춤법 등의 요소적 비판을 하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진 않지만, 이례적으로 언급하겠습니다. 무척 괜찮고 가능성이 있는 글이지만, 이 요소적 부분이 글을 읽는데 방해가 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문장에 대한 사항을 언급하는 것은 가후선생님의 작품이 기본적으로 소설의 틀은 갖추어져 있으며, 이 부분을 극복한다면 무척 괜찮은 글이 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보기 때문에 기분이 상하실지도 모르겠지만, 요소적인 부분을 잠시 언급하도록 하겠습니다.
한 마디로 말씀을 드리자면, “옳지만 매력없는 글”을 쓰고 계십니다.
반지의 제왕을 잠시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흔히 장르문학을 좋아하시는 분들은, 반지의 제왕이 고전급으로 거듭난 이유가 톨킨의 장대한 묘사에 있다고 오해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국내 소설가가 노벨문학상을 타지 못하는 이유가 번역에 문제가 있어 그 맛을 살리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것과 비슷한 맥락입니다.
반지의 제왕 죽이죠. 하지만, 어째서 반지의 제왕이 좋은냐고 물으면 많은 분들이, 숲을 묘사하기 위해 한 페이지가 넘는 분량을 할애하고 전투씬으로 또 그 만큼을 할애하고… 마치 작품에 나오는 묘사가 그 작품의 가장 큰 가치인 것처럼 말을 합니다.
물론, 그것을 보는 전부가 그렇다는 것은 아니며, 그런 묘사 역시 대문호(저는 동의하지 않습니다만)라고 불리는 돌킨의 크나큰 업적이라는 것에는 저도 동의합니다. 하지만, 사실 이렇게 장대하고 아름답고 치밀한 묘사의 작품은 반지의 제왕 외에도 수도 없이 많습니다. 우리나라 작품에만도 무척 많죠. 그리고 일정수준의 트레이닝만 거치면 쉽지는 않지만 누구나 쓸 수 있는 글이죠.
반지의 제왕의 가치는 그 문장 보다는 권력에 대한 인간의 욕망을 매우 빼어난 글솜씨와 판타지라는(당시로서는 무척 독특한) 장르로 다루었기 때문입니다.
거기에 있어서 문장은 부수적인 것에 속하죠.
그런데 그렇다고 여기에서 문장을 버릴 수 있느냐, 그것은 절대 아닙니다. 반지의 제왕은 그런 문장이 반드시 필요했습니다. 당시 그 작품을 읽는 사람들은 돌킨이 그리고자 하는 것을 상상할 수 있는 힘이 결여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금에서야 영상매체나 그 외의 여러 가지를 통해 “엘프”라는 단어를 쓰면 그게 어떤 것인지 알고, “엘프숲”이라고 쓰면 대강의 이미지를 떠올릴 수 있지만, 그 당시에는 전혀 새로운 개념이었기 때문에 돌킨의 묘사는 필수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치밀하고도 아름다운 묘사를 했던 것이구요.
문장이란 이렇듯 작품의 메시지를 표현하기 위해, 그리고 작품을 읽는 독자가 거북함을 느끼거나 지루함을 느껴 흥미를 잃게 되는 일은 없게끔 “필요에 의한 기본”은 해야 합니다.
물론, 가후선생님의 문장이 기본이 안되어 있다는 말이 아닙니다. 다만, 너무 정석적인 문장을 나열하고 있죠. 그래서 제가 서두에 옳지만 매력이 없는 글을 쓴다고 말씀을 드렸던 것입니다.
나열된 문장을 하나하나 보면 문법적으로 옳은 글입니다. 문피아에서는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올바른 글을 쓰고 계십니다. 이것은 가후선생님이 본 작품 이전에 꽤 많은 글을 썼으며, 본 작품에서도 상당히 많은 퇴고를 거쳤기 때문이라고 보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노력을 기울였음에도 독자는 가후선생님의 문장에서 멀어집니다. 이것은 몇 가지 이유에서입니다.
첫째로 문장이 너무 지나칠 정도로 많은 것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마치 만화나 애니메이션을 보는 것처럼 등장인물의 동작 하나하나를 전부 묘사하려 하고 있습니다. 지나치게 친절하신 것이죠. 하지만, 이러한 친절함은 독이 되기도 합니다. 가후선생님의 묘사에 독자들의 상상력을 가둬버리는 꼴이 되는 것이죠.
문장이 이미지의 나열이나 묘사의 나열에 그치지 않고 독자가 문장 안에 참여할 수 있는 여지를 주어야 합니다. 문장에 의도적인 빈틈을 주는 것이죠. 이런 것은 제가 아는 근래의 작가로서는 김훈씨가 가장 독보입니다. 한 문장을 툭하니 던져주는 것 같지만, 독자는 그 문장으로 하여금 상상하게 되며, 자신의 상상으로 하여금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 이상을 보게 되죠. 이 것은 불친절 한 것이 아니라 언어가 태생적으로 수반할 수 밖에 없는 오류를 침묵함으로써 벗어나는 것입니다.
둘째, 위와 비슷한 맥락일 수도 있지만, 특정 수치가 너무 많이 등장 합니다. 이것은 가후선생님이 작품 내부에서의 치밀한 고민의 흔적 때문이겠죠. 그리고 아마 작품의 태생이 게임문학상이기 때문에 각 개체별 밸런스와 관계성 때문에 그럴 것이라 여겨집니다. 하지만, 소설화 시킨다면 조금 수정하는 것이 좋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소설에 있어서 디테일한 수치가 들어가야 하는 부분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리고 다음으로는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서술에 관한 부분입니다.
본 작품의 서술 방식은 “지역해방전선”, “신대한민국 임시정부”, “EOA”, “유일신교”, “이생물체”, “원더러스” 등으로 대변되는 집단과 그 집단 내부의 개인의 갈등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그런 집합체들의 갈등에서 여러 가지 관계성이 얽히고 있죠.
이것은 무척 무난한 서술 방식이며 가장 많이 사용되는 방식이기도 합니다. 집단의 갈등이 개인의 갈등으로 전이되는 모습이나, 이러한 집단의 갈등과 개인의 갈등이 영합하지 못한 부분에서의 괴리감, 그리고 그런 괴리감을 가진 사람들의 외적 갈등과 내적 갈등은 어쩌면 일반적으로 소설의 거의 모든 소재라고 보아도 무방 하겠죠.
다만, 문제는 이것이 어느 정도로 복잡하게 얽혀있으며, 어떻게 풀어가느냐 하는 것입니다.
보통 소설에서 대립집단은 세 종류를 넘어가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넷 이상의 대립집단이 구성되어 버리면, 거기에서 파생되는 개인의 양상까지 포함하게 되어 무수히 많은 변수와 인물이 등장하게 되어 독자에게는 그것이 이야기 구조의 복잡성을 넘어 뭐가 뭔지 모를 혼란으로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런 혼란은 독자가 작품과 멀어지게 되는 결과를 야기하죠.
이것은 소설뿐만이 아니라 거의 모든 스토리텔링에 적용되는 사항입니다. 제가 지금 참고 자료가 없어 명확한 인용구를 가져올 수는 없지만, 쉬운 예로 그 유명한 반지의 제왕이나 헤리포터, 왕좌의 게임 등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반지의 제왕은 다들 아시다시피 백과 흑의 갈등이며, 헤리포터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왕좌의 게임은 크게 스타크 가문과 라니스터가문, 타르가르옌 가문의 갈등입니다. 여기에서 와이들링이나 나이트 워치, 도트락인들은 그 세 집단의 싸움에 영합되는 부수적 등장세력이죠.
이렇게 두 세 가지의 대립만으로도 거기에 참여하는 등장인물에 갈등이 확산 되기 때문에 무수히 많은 사건사고가 나타나게 됩니다.
그런데 본 작품에서는 그런 갈등 구조가 무척 다양해 독자에게 혼란을 가중합니다. 물론, 이것이 꼭 약점이 되기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건 이야기가 풍부해질 수 있는 밑거름이 되기도 하죠. 하지만, 이렇게 다양한 등장인물과 세력의 이야기를 맛깔나게 풀어가려면 그 등장인물 각각에게 독자가 몰입할 수 있게 만들만한 필력이 필요하죠, 만약 그렇게 될 수 있다면, 이런 다양한 관계성은 약점이 아니라 어마어마한 강점으로 다가옵니다.
하지만, 가후선생님의 “이능력자”는 그 부분이 다소 약합니다. 게다가 설정을 이야기 속에 집어 넣으려 하다 보니 독자로써는 글을 읽어나가기가 버거워 집니다.
위에 언급한 왕좌의 게임 소설 같은 경우는 그 많은 가문과 특수한 설정이 존재함에도 이야기 자체에 그 설정을 끌어들여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런 설명형 서술은 이야기의 흐름을 끊기도 하며 독자가 이야기 속으로 편입되는 것을 턱턱 가로막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잘 쓰여진 책들은 설정을 따로 설명하지 않고 이야기를 따라감으로써 자연스레 알게 되게끔 장치를 해 놓죠.
진정한 필력이란, 문장력이 아니라 이렇게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힘을 말합니다.
간단히 쓰려했는데 무척이나 길어졌네요.
더 많은 것을 말씀 드리고 싶지만, 여기서 줄여야겠습니다.
크게 두 가지를 언급했지만, 이것은 아마 가후선생님의 작품이 원래 게임 시나리오로 쓰여졌기 때문에 발생하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게임에서는 제가 위에서 언급한 내용들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시스템화 되어있기 때문에 플레이어는 그냥 따라가면 되기 때문이죠. 하지만, 이것이 소설에서 구현이 될 경우에는 많은 부분이 보완 되어야 합니다.
쉽게 말해 잘라낼 수 있어야 하죠.
하지만, 이렇게 잘라낼 수 있게 글을 쓰기 위해서는 그에 따른 필력이 요구 되어야 하구요.
그래서 쉽고 명확한 글을 쓰는 것이 그리 어렵습니다.
더 드리고 싶은 말씀은 무척이나 많지만, 지면이 너무 길어지기도 했고, 시간 소요도 너무 많아 이만 줄이도록 하겠습니다.
언제나 드리는 말씀이지만,
본 비평(이라고 쓰지만 그저 감상일 뿐이죠)은 작가님이나 작품을 폄하하기 위한 의도가 전혀 없습니다. 다만, 비평이라는 것의 특성상 혹여나 작가님의 기분이 상하실 부분이 있을까 걱정이 되네요.
혹 그런 부분이 있었더라도 부디 너그러이 양해 부탁드리겠습니다.
좋은 글 감사히 읽었습니다.
앞으로도 더 재미있고 좋은 이야기를 기대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카프카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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