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수집가 렌
작가 : 서가연 님
총연재분량: 16화
출판사: 문피아 연재작(자유연재란)
신비한 능력을 가진 보물들을 수집하고 그것을 사용하는 ‘수집가’ 들과, 수집가 렌과 얽히게 된 셀리아라는 몰락 귀족 아가씨, 그리고 그 동료들의 이야기입니다. 현재 프롤로그 포함 16화가 연재가 되었고요. 너무 이른 시기에 비평문을 작성하는 것이 아닌가 싶지만 약속을 하였기에… 감히 써 봅니다.
전체적으로 설정이 참신하고 여러 군데에서 작가가 보여주고 싶어 하는 것들이 많다는 것이 눈에 띕니다. 마술의 정의를 명확히 하고 등급을 색깔로 구분한다거나, ‘수집품’에 얽힌 여러 가지 떡밥이 앞으로의 전개를 기다리게 하는군요. 그러나 그것이 너무 짧은 분량 안에 너무 많이 풀려야 하다 보니까 이야기가 터무니없이 급전개가 되었습니다.
우선 인물을 이야기해 보죠. 우리의 주인공 렌은 ‘아발론’ 조직 내에 상당히 많은 인간관계를 가진 것으로 보입니다. 초반에 만나는 ‘링’도 ‘아발론’의 일원으로 보이고요. 그런데, 렌은 처음에 어떠한 공격을 받고 (아직은 공격자가 드러나지 않았습니다.) 기억상실에 걸린 채로 셀리아에 의해 구출됩니다. 그런데 이 ‘기억상실’ 이라는 것이 채 몇 화 가지도 못하고 모조리 기억을 찾고 완전히 이전 궤도의 삶을 다시 살게 되지요. 기억상실이라는 요소로 짜낼 수 있는 여러 이야기와 고난을 생각하면, 아까운 일입니다.
게다가, 여기서 또 다른 중요 인물인 셀리아의 위치가 흐려지게 됩니다. 셀리아는 여기에서 두 가지(그 이상일지도 모르지요) 역할을 수행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중 하나, ‘기억상실을 맞은 주인공을 이끄는 ’세계의 안내자‘ 역할’ 이 사라지게 됩니다. 따라서 이 세계에 대한 소설을 쓰는 작가는, 독자들에게 세계관을 설명하고자 할 때 건조한 설명문의 어투를 한 문단씩 끼워 넣을 수밖에 없게 됩니다. 작중에서 예를 들자면 아발론이라는 조직을 설명할 때처럼요. 기억을 상실한 렌에게 셀리아가 가르치거나, 아니면 렌이 실수를 하는 식으로 ‘보여줄’ 수 있었던 세계관이 약간 매끄럽지 못하게 설명되게 된 거지요.
그러나 기억을 일찍 되찾게 한 것은 작가의 의도이니 제가 더 이상 긴말은 하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렌이 기억을 금방 찾는 원래 스토리를 따라간다고 해도, (세계관의 설명이라는 견지에서)셀리아의 두 번째 역할은 ‘세계를 설명받는 자’ 의 역할이 될 수도 있었지요. 대중적인 판타지 소설 중에서 예시를 들자면, 시골에서만 자랐던 주인공 후치가 나오는 ‘드래곤 라자’ 가 있을 수 있겠군요. (여기에서 ‘세계의 안내자’는 카알 헬턴트가 되겠죠)
유용하게 쓸 수도 있었던 주요 인물들이 이런 식으로 낭비되면서, 결국 셀리아는 적어도 현재 연재분까지는 내내 주인공을 쫓아다니는 귀찮은 부속물 정도가 되어 버립니다. 물론 작가분도 이것을 인지하신 것으로 보입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셀리아에게 저택의 설계도를 그리거나, 귀족가에 대한 여러 정보를 제공받거나…… 하는 일을 맡기는 정도의 장치를 구사하셨습니다만, 안타깝게도 렌은 귀족가나 심지어 제국의 황제(!) 같은 높으신 분들에 너무나도 익숙한 아발론의 핵심 멤버라 이것도 조금 빛이 바래는군요. 그러나 저는 작가분이 앞으로 셀리아를 활약하게끔 할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 외에 주인공의 적대 조직으로 짐작되는 ‘트럼프’나, 렌을 공격하여 의식을 잃게 만든 검사, 그리고 로스터 후작 등 여러 인물이 등장합니다만 아직 그들이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풀어가지 않았기 때문에 여기서는 쓰지 않겠습니다.
그럼 다음으로는 배경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보았으면 합니다. 설정상 가르틴 제국의 인구는 ‘수십억’ 이라는 표현이 명백히 본문에 나옵니다. 네, 최고조로 발달된 농경기술과 의료기술을 가진 현대 국가 어디에도 그런 나라는 없습니다. 게다가 그런 거대한 국가를 유지하려면 반드시 필요한 것이, 고도로 발달된 행정시스템과 그것을 뒷받침해 줄 빠른 통신, 이동 수단이죠. (제국주의는 전신과 철도의 발달과 함께했습니다.) 작중에서 그것을 해 줄 수 있는 수단으로는 ‘수집품’이나 ‘마술’ 정도가 있겠습니다만, 둘 다 ‘수집가 렌’의 세계에선 굉장히 희귀한 것이죠. ‘억조창생’ 같은 비유적 표현이시라면 제가 잘못 이해한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그리고 수십억의 인구를 가진 나라치고는 렌과 셀리아가 이동한 경로가 너무나 짧게 묘사됩니다. 13억 인구의 중국조차 남과 북이 쓰는 말이 전혀 다른데, 무언가 차이가 있어야 하겠지요? 그렇지 않다면, 다시 말해 그러한 세계관 장치를 통해 보여주고 싶거나 그래야만 할 것이 없었다면, 굳이 납득이 되지 않을 정도로 거대한 세계관을 설정할 필요가 있었나…… 하는 기분이 독자로서 드는 건 사실입니다.
또한 가르틴 제국의 황제…… 는 주인공과 친분이 있으니 그런 대처를 할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저는 거침없이 황성에 들어가서 황제에게 막말을 하고 그걸 옆에서 보며 분노하는 공작과 또 그걸 괜찮다고 하는 황제를 보면서, 마치 이 세계가 렌만을 위해 준비된 세계가 아닌가 하는 의심을 강하게 느꼈습니다. 주인공 말고 다른 인물들도 각자 자기의 신념과 가치관을 바탕으로 행동하는 세계였으면 하는 것이 저의 바램입니다. 뭐, 배경은 차차 설명될 테니, 저는 그것을 기다려 보겠습니다.
한 가지 더 덧붙이자면, 수집품이 나오는 공간의 불가사의함을 이야기하는 대목에서 '진공 상태' 인 것과 '시간이 지나지 않는 것'은 엄연히 다른 개념이 아닌가 싶군요. 진공 상태라는 것과 식료품의 보존은 그다지 상관이 없는 문제니까요.
그럼 다음으로는 사건 전개와 묘사입니다. 사건은 대강 이런 순으로 전개됩니다. 주인공 렌은 셀리아의 사정을 듣고 은인을 돕는다는 동기로 그녀를 돕습니다. 그래서 악덕 영주를 습격하거나 제국의 황제를 만나기도 하지요. 그런데 이것은, 분명 동기는 셀리아의 가문에 씌워진 누명을 벗긴다는 것이었습니다만, ‘크로노스의 낫’이라는 이름의 수집품과 얽히면서 ‘트럼프’ 라는 조직이 언급되고 조금 더 사건이 다변화됩니다. (스포일러가 될것 같아 간단히 썼습니다) 셀리아의 일이 아니라 아발론의 일, 렌의 일처럼 보이는 거지요. 물론 이것 자체는 장편소설로서 괜찮은 전개입니다. 주인공들의 각자의 동기가 엇갈리며 이야기가 전개되는 것은 복수 플롯의 구성으로서 좋은 짜임새죠. 문제는 사건들이 너무 급하게 전개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주요 인물 중 하나인 렌의 친구 링을 만날 때, 저는 세 번을 반복해서 읽어야 했습니다. 다음은 소설의 본문입니다.
일목요연한 설명에 렌은 별다른 질문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셀리아와 대화하고 있던 렌)
“헤에~ 과연, 네 녀석이 왜 이곳을 왔나 했더니 영주를 암살할 생각이었어?”(어떤 설명도 없이 튀어나온 링의 대사)
이질적인 음성을 접한 셀리아의 놀란 얼굴과는 달리 렌은 진작 알고 있었다는 얼굴로,
“링, 너야말로 뭣 땜에 쫓겼던 거야?”
(여기서 다음 화로 넘어가서)
새하얀 백발의, 호리호리한 체격을 가진 사내(링입니다)는 창틀에 다리를 꼬아 걸터앉곤, (후략)
‘ 이질적인 목소리’ 라는 것 말고는 대체 링이 하늘에서 떨어졌는지 땅에서 솟았는지 알 수가 없기 때문이죠. 인물이 갑자기 튀어나오는 효과를 주기 위해 대사부터 집어넣은 것도 하나의 연출 기법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그 뒤에라도 설명이 나와야 한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물론 렌은 그것을 알고 있었습니다만, 링이 어떤 특수 능력으로 그렇게 했다고 치더라도 독자들에게 놀랄 기회 정도는 주어야 하겠지요? 전체적으로 세심한 연출이 필요한 부분을 그냥 넘어간 부분들이 많습니다. 게다가 저 문장에서는 문장이 완결되지 않은 채 끝났습니다만, 그것에 대해선 문장을 이야기할 때 같이 서술하겠습니다.
이러한 식으로, 중요 인물에 대해 적절한 연출이 없으면 독자는 그 인물에 대해 별 중요한 느낌을 갖지 못하게 됩니다. 영화에서도 중요 인물은 클로즈업을 하고 스포트라이트를 비춰 주게 마련이지요. 내친 김에 묘사 부분을 같이 이야기해야 할 것 같군요. 초반에 렌이 습격한 악덕 영주도, 물론 중요 인물은 아닙니다만, 그의 집무실은 ‘호화롭게 꾸며진’ 이라는 수식어 외에 별다른 내용이 보이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의 이미지를 잡고 싶을 때에는 단지 그 사람의 외모뿐만 아니라 주변에 배치하는 소품도 많은 역할을 해 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그 영주의 성격으로 보건대 사람을 박제해서 걸어 놨다거나, 민가에서 잡아온 처녀들이 시중을 들고 있다거나…… 하는 것이 있을 수 있겠죠. 반대로 연출이 가벼워야 할(중요 인물이 아닌) 부분이 너무 무게를 잡은 부분도 눈에 띕니다. 까다로운 영주에게 실망하여 자신의 길을 고뇌하는 호위 단장 같은 경우가 그렇죠. 적어도 현재 연재분까지는 다시 안 나오더군요. 이 경우는 앞으로 나올 수 있을 테니 성급한 단정은 피해야겠지만요.
그럼 마지막으로 문장입니다. 이 부분은 제가 본문 일부를 베껴 왔습니다.
파트 1 수집가 06
문득 시야에 들어온 셀리아를 발견하곤,
“어, 어서! 저 계집년을 붙잡아라!”
서로 눈치만 살핀 채 선뜻 나서지 못한 그들도 절박함이 담긴 명령에는 어쩔 수 없이 따랐다.
- 여기에서, 맨 위 문장이 완결되지 않은 채로 끝났지요. 맨 위 문장의 주어는 ‘도적 두목’ 이지만 세 번째 문장의 주어는 ‘도적 두목의 부하들’로, 세 번째 문장은 새로 시작하는 문장임에도 불구하고 첫 번째 문장의 서술이 완결되지 않았습니다. 이런 서술은 독자들로 하여금 서술 대상, 그러니까 영화로 말하자면 카메라 시점을 헷갈리게 할 수 있습니다.
같은 편에서 이런 문장도 있습니다.
감쪽같이 모습을 감춘 사내를, 화가 난 병사들은 거침없이 욕설을 내뱉으며 분을 삭였다.
- 예. 물론 문맥은 이해할 수 있습니다. ‘사내를 향해’ 욕설을 내뱉었다는 이야기겠지요. 그러나 이 문장은 비문이군요. 물론 비문은 누가 쓰든 나올 수 있지만, 이런 형태의 문장이 꽤 자주 발견됩니다.
수집가 07
새하얀 백발의, 호리호리한 체격을 가진 사내는 창틀에 다리를 꼬아 걸터앉곤,
“군부의 명령을 받고 여기 영주를 몰래 조사하던 참이었어. 근데 웬 새 떼가 갑자기 날 쪼는 거 있지? 나 참, 기껏 저택 지붕에 올라가 막 정보를 얻을 수 있었는데. 아악-! 그놈의 새 떼들!”
열불이 난 링은 머리카락을 벅벅 긁적인다.
- 이것도 마찬가지지요. 링과 ‘새하얀 백발의, 호리호리한 체격을 가진 사내’는 물론 동일 인물입니다만, 이것은 합쳐 보면 이런 문장이 됩니다. ‘새하얀 백발의, 호리호리한 체격을 가진 사내는 창틀에 다리를 꼬아 걸터앉곤, 열불이 난 링은 머리카락을 벅벅 긁적인다.’ 역시 첫 번째 문장이 완결이 안 되고 다음에 또다시 주어로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또 작가분이 ‘뭣 땜에’ ‘암튼’ 등 축약어를 많이 쓰시는 것 같습니다. 구어체나 특수한 상황에서는 쓸 수도 있습니다만, 음, 아무래도 저에겐 몰입감을 떨어뜨리는 요소였습니다. 그리고 ‘나름’ 이라는 말을 단독으로 쓰시는 경우가 많던데, ‘나름’은 의존명사이기 때문에 ‘나름대로’ ‘나름으로’ 등으로는 쓸 수 있지만 혼자서는 쓸 수 없습니다.
으, 제가 별로 잘난 것도 없는데 쓸데없이 주구장창 이야기를 늘어놓은 것 같은 기분이 드는군요. 하지만 아이디어의 참신함이 돋보이고 작가님의 성장이 기대되는 글이라는 것은 분명합니다. 교학상장이라고 했지요. 피드백은 하는 사람과 받는 사람 모두에게 많은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요. 상부상조하는 의미에서 졸문을 써 보았습니다.
ps. 약속드린 시간보다 조금 늦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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